신규용 대구 사월초 교사
동아리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킥런볼' 경기를 했습니다. 킥런볼은 럭비와 야구를 합친 뉴스포츠로 발로 공을 차고 베이스를 돌며 점수를 내는 스포츠입니다. 친구들과의 협력과 소통이 승패를 가르는 게임이라서 아이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도록 지도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늘 어렵습니다. 공을 놓치거나 실수를 하는 친구가 생길 때마다 날카로운 비난의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야, 너 때문에 점수를 내줬잖아!", "그걸 왜 못 잡아!" 서로를 탓하는 목소리가 커지면 경기를 잠깐 멈추고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야 합니다.
교실 안도 다르지 않습니다. 수업 시간에 한 아이가 발표를 하다가 주제와 상관없는 웃기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순간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고 말장난이 시작됩니다. 흐트러진 수업 분위기는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나중에 이런 일들을 반복하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어보면, 나쁜 마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아무 고민 없이 그냥 튀어나온 반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는 다른 친구들은 어떤 기분일지, 선생님은 어떤 기분일지에 대해 물어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대부분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 5학년 국어 교과서에 있는 양은정 시인의 '마음 저울'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이 시는 아이의 마음에 있는 양팔저울이 빵 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칭찬 쪽으로 기울기도 하는 심리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킥런볼 경기에서도, 교실에서도 아이들은 양팔저울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선택하지 않습니다. 자극이 오면, 깊은 생각 없이 반응이 먼저 나옵니다. 마음의 저울을 달아보기도 전에 행동이 이루어집니다.
물론 이런 충동성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발달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오랫동안 저울 그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간과하고 저울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만 강조해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동과 행동 사이에 멈춤이 없는 아이에게, 멈춘 다음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올바른지,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지만 열심히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저울 자체가 작동하지 않는 아이에게 올바른 추를 아무리 많이 쥐여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울이 없으면 추의 무게를 비교할 수도, 균형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교육철학자 존 듀이는 '질성적 사고(qualitative thought)'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질성적 사고란 논리적인 판단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작동하는 것으로, 상황 전체를 하나의 느낌으로 감지하는 사유의 토대입니다. 듀이는 이것이 있어야만 비로소,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반성적 사고가 가능해진다고 했습니다. 저울이 작동하는 느낌이 먼저 있어야, 그 위에 무엇을 올릴지 궁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에 필요한 것은 올바른 추를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먼저 마음의 저울을 꺼내어 작동시킬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저울이 작동하지 않는 문제는 글을 읽을 때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모르는 단어를 만났을 때 잠깐 멈추어 앞뒤 문장을 살피며 뜻을 짐작해 보거나 국어사전에서 뜻을 찾아보는 것, 이것도 저울을 꺼내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 멈춤 없이 얼버무리고 넘어가거나 오해한 채 읽어나갑니다. 문해력의 문제도 결국 저울의 작동에 있습니다. 저울이 작동해야 궁리가 시작되고, 궁리하는 자세가 쌓여야 반성적 사고가 깊어집니다. 문해력을 포함한 모든 사고력은 바로 그 '멈춤'에서 자랍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저 멈추어 생각하라고 말만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잠깐 멈추어 충동을 참아내는 것도, 글을 읽을 때 멈추어 생각하는 것도,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경험을 통해 배웁니다. 지각을 하거나 숙제를 하지 않았을 때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 친구에게 상처를 주면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 규칙을 어겼을 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고 반성하는 것, 이 모두가 저울이 실제로 작동하는 순간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가르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학교는, 아이들에게 책임을 묻지 못합니다. 교사에게 그럴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가 저울을 꺼낼 기회 자체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학교는 아이들에게 권리만큼 책임도 분명히 알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직접 경험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경험이 쌓일 때, 아이가 가지고 있는 마음 저울이 살아서 움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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