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향숙 산학연구원 기획실장
공항 앞을 지날 때면 이륙하는 비행기의 굉음과 떠나던 날의 설렘이 문득 되살아난다. 제주도로 떠나던 날도, 신혼여행에 올랐던 날도 대구공항에서 시작됐다.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는 비행기를 볼 때면, 마음도 함께 먼 곳으로 향하곤 했다.
수많은 출발과 귀환의 시간이 쌓인 공항. 이전이 현실화된다면, '공간의 흔적을 어떻게 보존하고 재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설은 떠나더라도 장소가 품어온 기억까지 지워질 수는 없다. 그곳의 역사와 장소성을 동구의 고유한 자산으로 이어가고, 그 위에 새로운 시간을 쌓아야 한다. 그 출발점은 공항의 상징인 활주로를 어떻게 남기고 활용하느냐에 있다.
K-2 군공항에는 두 개의 활주로가 놓여 있다. 도심 한가운데 이처럼 넓고 긴 공간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다. 최근 대구시는 기존의 '두바이식 개발' 구상을 재검토하는 가운데, AI 관련 산업을 후적지의 핵심 기능으로 삼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세부 토지이용계획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만큼, 무엇을 새롭게 채울 것인가에 앞서 공항의 어떤 자산을 미래로 이어갈 것인지 논의할 때다. 그 중심에는 공항의 역사와 장소성을 가장 선명하게 간직한 활주로가 있다.
필자는 기존 활주로 가운데 하나를 보존해 '활주로형 미래산업공원'으로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긴 활주로는 보행·자전거·마라톤이 이어지는 녹색 축으로 조성하고, 일부 구간은 시민 체험 공간이자 도심항공교통(UAM)·드론·자율주행·로봇 기술을 시험하고 실증하는 야외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문화와 휴식 기능까지 더하면, 활주로는 공항의 기억과 미래 산업, 후적지의 여러 공간을 잇는 중심축이자 동구의 새로운 도시 정체성을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베를린의 옛 템펠호프공항은 두 개의 옛 활주로가 남아 있는 넓은 부지를 시민에게 개방했다. 지금은 비행기 대신 시민들이 포장된 활주로 위에서 자전거와 스케이트를 즐긴다. 상하이의 쉬후이 런웨이 파크도 옛 룽화공항의 주 활주로를 바탕으로 보행로와 자전거길, 정원과 습지가 이어지는 선형공원으로 재구성했다. 기존 활주로의 콘크리트 패널 일부는 보행로로 보존하고, 철거된 조각은 휴식 공간 등에 재활용했다. 공항의 장소성과 기억을 새로운 도시 가치로 전환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도시의 선택은 무엇을 새로 세웠느냐보다 무엇을 남기고 누구와 나누었느냐에서 드러난다. 활주로를 걷어내고 아파트와 상업 시설을 채우는 개발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비행기가 오르내리던 길을 시민들이 걷고, 청년들이 창업과 문화, 미래산업의 가능성을 펼치는 무대로 되살려야 한다. 밤이면 공연과 미디어아트가 이어지는 열린 공간으로 조성해, 공항 인근 주민을 비롯한 시민들이 함께 누리도록 해야 한다. 개발의 성과는 부동산 가치만이 아니라 시민에게 돌아가는 공공공간과 기회의 크기로 평가해야 한다.
'활주로형 미래산업공원'은 공항의 역사와 장소성을 계승하고, 개발의 혜택을 시민과 나누는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우선 보존 구간을 정해 시민과 전문가가 함께 활용 방안을 논의하며, 단계적으로 그 가능성을 열어나가야 한다.
비행기가 오르내리던 활주로. 공항의 시간을 간직한 그 길은 시민의 일상과 새로운 가능성을 품는 공간으로 열려야 한다. 수많은 출발과 귀환의 기억이 쌓인 그곳에서, 대구 동구의 미래가 다시 이륙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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