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정치 이야기는 가족이나 친구와 하는 게 아니라는 말

  • 최하예 정치공동체 폴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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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19 14:28  |  발행일 2026-08-20
최하예 정치공동체 폴티 대표

최하예 정치공동체 폴티 대표

모 지자체 청년센터에 대관을 신청했다가 취소 통보를 받았다. 공공기관은 종교·정치·수익 행사를 금지한다는 이유에서다. 신청서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읽는다고 기재했다. 처음에는 승인이 났는데 이후 돌연 취소된 것이다.


6개 정당이 함께하는 정치토크를 준비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국민의힘부터 더불어민주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정의당, 녹색당 등 서로 다른 정당이 하나의 의제를 두고 토론하는 자리였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하나의 정치적 입장을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행사명에 '정치'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공공기관 대관은 쉽지 않았다.


"정치 이야기는 가족이나 친구와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는 '정치' 용어 자체를 금기시한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하거나 중도적 입장이라고 밝히는 편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와 정치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일까.


독일의 경우 '정치적인 것'과 '정파적인 것'을 구별하는 사고가 분명하다. 니더작센 고등행정법원은 지방정부 시설의 이용과 관련해 '일반적인 정치 토론 행사'와 '선거운동 행사'를 구별해 판단한 바 있다. 정치교육·토론·시민의 정치참여와 특정 정당·후보를 위한 선거운동 및 정파적 활동을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독일의 청소년센터 등 여러 공적 공간에서는 정치 관련 행사가 일상적으로 열린다. 교육이나 세미나, 워크숍 등 형태도 다양하고 지역 아이들이 행사를 직접 기획하기도 한다. 영국 등 정치 토론을 민주주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다른 국가들도 비슷하다. 정치적 중립성을 정치의 배제가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균형 있게 다루는 원칙으로 이해한다.


반면 한국 사회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정치를 제도나 일상에서 쉽게 배제한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시민이 공적 의제를 접하고 판단할 정치적 권리를 보장해야 할 공적 기반이다. 무엇보다 지자체장은 선거와 정당정치를 통해 시민의 선택을 받는다. 지역의 시정을 정치로 결정하면서 정작 지역 정치인들의 생각을 듣고 비교할 공적 공간이 부족한 정치문화는 커다란 문제를 낳는다.


먼저, 정치적 효능감과 정부에 대한 신뢰를 형성할 기회가 줄어든다. 실력 있는 정치인을 만나고 수준 높은 토론을 경험하는 유권자는 정치를 가능성의 도구로 느낀다. 정치제도와 정부의 역량을 평가하는 계기가 된다. 반대로 공적 공간이 부족하면 정치는 시민의 일상에서 멀어진다. 정치와 정부에 대한 판단은 직접적인 경험보다 미디어와 같은 간접적인 수단에 의존하게 된다.


또한 정치에 접근하는 비용이 시민에게 전가된다. 행사가 공공기관에서 열리지 못하면 사설 공간을 알아봐야 한다. 그 비용은 행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부담하게 된다. 정치인을 만나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혹은 정치인과 연결될 인맥이나 공간, 조직적 자원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정치에 접근한다. 결국 개인이 가진 경제적·사회적 자원에 따라 정치적 접촉과 참여의 기회에 격차가 생긴다.


"정치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 정치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정치를 통해 상대를 설득할 능력이 없거나 게으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정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치는 일상에서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정치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공적 공간이 많아질 때 정치가 일상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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