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광복절이 있는 8월에 대중문화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이었다. 배우 하영이 8월7일에 방송된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증조할아버지가 당시 한양에서 서양 의학 전문 의원을 가장 먼저 여신 분 중 한 분"이라며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이야기하면서 시작됐다.
방송 직후 그 증조할아버지가 친일파 의사 안상호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하영의 소속사는 친일 이력을 부인했지만 거센 비난 끝에 결국 인정, 소속사와 하영이 순차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광복절과 맞물려 이 사안은 일파만파 확산됐다. 현재 누리꾼들 사이에선 자신의 조상의 친일 이력 여부를 확인하자는 흐름까지 나타나고 있다.
구한말에 김익남, 안상호 등은 국가의 지원으로 일본에 가서 신식 의료를 배웠다. 그 후 김익남은 귀국해 조선에서 신식 의료진을 양성하다 나라를 빼앗기자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나섰다. 반면에 안상호는 조선 대정친목회 평의원 등으로 식민지 조선에서 승승장구했다.
대정친목회는 민족반역자인 이완용, 송병준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로 일제의 '내선융화' 선전에 활용됐다. 안상호는 특히 '일선동화'의 모범사례였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완전히 내지화된 의사 안상호씨의 가정'이라는 기사에서 그는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한다.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완전한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집안에선 전적으로 일본어만 사용하며 조선 사람과는 교류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일제의 민족말살은 조선인들을 물리적으로 몰살하는 게 아니었다. 조선인의 물리적 생명은 그대로 두되 독자적인 문화를 말살하는 것이었다. 문화가 사라지면 조선인의 정체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안상호는 조선말, 조선옷, 조선음식 등 조선문화를 버리고 일본문화에 동화됐다고 나서면서 민족말살 정책의 선전판 노릇을 한 것이다. 그렇게 살면서 상당한 부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런 역사가 정확하게 정리, 단죄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2002년에 하영의 아버지는 한 중앙일간지에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우리 집안은 몇 안 되는 의료 명문이다"라며 조상 이야기를 썼다. 친일의 역사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방조국에서 친일 조상을 거론하며 명문이라고 자칭하는 기사가 실릴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하영도 자랑스럽게 집안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한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집안을 언급했다고 한다.
그렇게 친일 조상을 대놓고 내세운 것에 누리꾼들이 공분한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고 시비를 가리는 것은 좋다. 문제는 그것이 하영에 대한 단죄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건 과열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친일파는 하영의 4대조이지 하영이 아니다. 하영은 증조할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잘 몰랐었다고 주장한다. 친일파라는 걸 알면서도 과시했다면 문제가 심각하지만 몰랐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인터넷 일각에선 하영이 친일 당사자라도 되는 것처럼 공격하는 흐름이 나타난다.
친일파의 후손이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는 걸 막으면서 오히려 친일행적이나 일제를 정당화한다면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렇지 않고 진실을 겸허히 인정하는 데도 죄인 취급하는 건 과도하다. 중요한 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지 후손 단죄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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