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 행정통합, 대만 ‘다중심’에서 길을 찾다④] 핑둥현 객가문화지구의 문화자치

  •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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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04 18:08  |  수정 2026-09-04 20:49  |  발행일 2026-09-04
지역 독립기구 만들어 중앙예산 요구 ‘상향식 문화자치’ 완성

객가기본법·언어발전법 제정

법·행정적 테두리 내로 포용

지자체 스스로 문화행정 결정

문화지구도 행정지구처럼 작동

"지역 다양성·특수성 보장할 때

지방정부 수용성·소속감 확보"

대만에는 객가인이라는 한족집단이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핑둥현의 네이푸향은 남부의 객가문화가 잘 보전되고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네이푸향의 객가인 가옥의 모습.

대만에는 '객가인'이라는 한족집단이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특히 핑둥현의 네이푸향은 남부의 객가문화가 잘 보전되고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네이푸향의 객가인 가옥의 모습.

지방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수도권 일극 체제에 맞설 광역 경제권을 형성하기 위해 대구·경북 행정통합 논의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행정구역을 통합해 규제를 완화하고 대형 국책사업과 투자 유치를 이끌어낸다는 당위성 속에서 대구시와 경북도는 법적·행정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절차를 속도감 있게 밟아가는 중이다.


대만 전체 인구의 15~20%(약 460만 명)를 차지하는 한족 집단인 '객가인(客家人)'의 문화 보전 사례는 통합 대구·경북이 나아가야 할 정교한 다중심(폴리센트릭) 거버넌스의 길을 제시한다. 명·청 시대 이후 대만으로 건너와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유지해 온 객가인들은 중앙정부의 일방적 지휘를 받지 않는다. 대신 지자체 스스로 '객가사무처' 같은 전담 부서를 조직하고, 필요한 법제와 예산을 중앙에 역으로 요구하는 '상향식 자치 구조'를 완성했다.


같은 경상도라도 대구 사투리와 구미 사투리가 다르고, 영덕과 울진의 말씨가 다르다. 대구경북이 한 뿌리 안에서도 지역별 특수성을 지닌다는 뜻이다. 대만은 이러한 지역 고유의 다양성을 행정의 권한과 법적 테두리로 보장하고 있다. '객가기본법'과 '국가언어발전법'이 대표적 사례다. 지역별 다양성과 특수성을 보장할 때 통합 지방정부는 비로소 주민 수용성과 실질적 소속감을 확보하게 되며 단단한 구심력을 갖게 된다.


◆행정통합의 또 다른 구심점 '문화'


객가인은 전체 대만인구 중 15~20%인 약 460만 명을 차지하는 한족 집단이다. 중국 내륙에 살다 명·청 시대 이후 대만으로 건너온 이들은 독특한 문화와 언어를 유지하며,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갖고 대만사회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객가 문화는 법에 의해 보호되지만 그 바탕에는 객가인의 노력과 함께 지방의 자기 결정권이 있었다. 객가인은 자신의 말과 관습을 지키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지자체는 이를 지원한다. 또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을 중앙에 요구하거나 제안한다.


이 구조는 단순한 의견 전달이 아니다. 지역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지역만의 정책과 행정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특히 문화를 법과 행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온다는 점에서 문화가 행정통합의 또 다른 구심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만은 객가기본법과 국가언어발전법을 통해 소수 집단인 객가인의 언어와 문화를 법적·행정적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 과정의 핵심은 중앙정부의 일방적 지휘가 아닌, 지자체가 스스로 '객가사무처' 같은 전담 부서를 조직하고 필요한 법제와 예산을 중앙에 요구하는 자치 구조에 있다.


셰춘밍 핑둥현 객가사무처장이 객가기본법과 국가언어발전법 등 객가문화 보전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셰춘밍 핑둥현 객가사무처장이 객가기본법과 국가언어발전법 등 객가문화 보전에 대해 기자에게 설명하고 있다.

◆문화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행정


대만 최남단 핑둥현의 네이푸향(鄕)은 남부의 객가문화가 잘 보존된 지역이다. 이곳에서 만난 셰춘밍(謝俊明) 핑둥현 객가사무처장이 기자에게 펼쳐 보인 것은 길쭉한 핑둥현 지도였다. 지도에는 여덟 개의 객가문화중점발전지구가 색으로 구분돼 있었다. 그는 단순히 문화지구가 아니라 행정구역처럼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객가문화중점발전지구는 객가 인구가 3분의 1 이상인 향·진·시·구(우리의 구·군급 행정구역)에서 객가어(客家語)를 통행어(공용어)로 지정한 경우 선정된다. 이는 객가기본법에 의한 의무사항이다.


대만 객가위원회에 따르면, 2021년 대만 전국 조사에서 객가인의 객가어 듣기 능력은 2016년 64.3%에서 56.4%로, 말하기 능력은 46.8%에서 38.3%로 하락했다. 그러나 중점발전지구 안에 사는 객가인의 듣기 능력은 74.7%에서 72.4%, 구사 능력은 56.0%에서 52.6%로 비교적 유지되고 있는 편이다. 2019년 1월 제정된 국가언어발전법은 국가언어를 국민기본교육 각 단계의 교육과정에 넣도록 했다. 2022학년도부터 초등학교는 주 1회 필수, 중학교 7·8학년 주 1회 필수, 고등학교 필수 2학점으로 객가어 수업제도가 시행됐다.


자격증과 일자리로도 객가어 보전에 힘쓴다. 객가어 능력인증시험은 기초급·초급·중급·중고급·고급으로 나뉘고, 국적·연령 제한 없이 누구나 응시할 수 있다. 통과자에게 지급되는 장려금 액수는 중앙이 아니라 각 지자체가 정한다. 중고급 이상 인증을 받고 시·현 교육행정기관의 교학지원교사 인증을 거치면 초·중학교 객가어 교학지원인력이 될 수 있다. 또 2003년 7월에는 객가어 전용 방송채널이 생겼다. 이 역시 객가기본법에 따른 것이다. 법적 인정으로 문화적 기구와 예산이 마련된 셈이다. 셰춘밍 사무처장은 "언어는 조금씩 잃어가지만 객가인이라는 정체성을 밝히는 사람은 늘고 있다"며 "법적 지위가 부여된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 사이에 측정 가능한 '방파제'가 생겼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쩡메이링(曾美玲) 전 핑둥현 객가사무처장이 객가와 관련된 행정부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쩡메이링(曾美玲) 전 핑둥현 객가사무처장이 객가와 관련된 행정부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행정부처 조직하고 중앙에 지원 요구


'대만 객가사무기구 조직도'를 보면, 행정원(우리의 국무총리실) 아래 객가위원회가 있고, 그 아래 직할시·현시 정부가 놓인다. 그러면서도 '비(非)상하예속·지방자치체제 하의 협조·보조 관계'라고 덧붙여 있다. 객가사무처에 따르면, 객가위원회는 전국적 객가정책의 기획·조정·추진을 관장한다. 그러나 각 지자체의 객가 사무부서는 객가위원회의 하급기관이 아니라, 각 조직의 자주권에 따라 설치된 곳이다. 객가위원회는 지방에 경비 보조와 협조 역할을 한다.


객가기본법은 지자체에 전담기구 설치를 의무화하지 않았다. 핑둥현이 사무처를 세운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객가 관련 업무 요청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지방이 먼저 필요를 확정하고 중앙에 법제와 예산을 요구하는 구조다. 현이 대만 최초의 객가 취락 보존을 지정하고, 필요할 땐 중앙에 제안하고 보조금을 신청했다. 민간 협회는 행정에 무엇을 요구할지 목록을 만든다. 셰춘밍 처장과 함께 기자를 만난 쩡메이링(曾美玲) 전 핑둥현 객가사무처장은 "관련 지방 법규가 없으면, 현의 사무처가 중앙 객가위원회에 제안하고 절차를 밟는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의 행정통합도 대만 객가인 사례처럼 문화적 정체성을 보호하면서 정책을 수립한다면, 주민 수용성과 실질적 소속감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구와 경북은 지리뿐만 아니라, 언어를 포함한 문화를 보면 동질성 안에 특수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경상도 방언 중에서도 대구 사투리와 구미 사투리가 다르고, 영덕과 울진의 말씨가 다르듯 지역별 특수성이 있다. 동질성을 추구하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이 문화에서 다중심으로 가는 길이다.



중춘옌 핑둥현 취락영속발전협회 이사장 인터뷰

중춘옌 핑둥현 취락영속발전협회 이사장이 네이푸향의 객가문화 보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춘옌 핑둥현 취락영속발전협회 이사장이 네이푸향의 객가문화 보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중춘옌(鍾俊彥) 핑둥현 취락영속발전협회 이사장은 타이중에서 지역활성화 사업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정부가 객가문화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예전엔 수도 타이베이에서 보면 '너희는 다 지방'이라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중앙에서 대만이라는 섬 전체를 위해 일하자는 쪽으로 관념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가 그랬다"고 그 배경을 설명하면서도 "그 분위기가 법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객가기본법이 2010년, 원주민족언어발전법이 2017년, 국가언어발전법이 2019년 각각 제정됐다.


중춘옌 이사장은 "지금 핑둥의 초등생은 객가어를 배우고, 학교에서 향토교육 시간에 조부모를 인터뷰해 그 얼굴을 그리고 그 삶을 글로 옮긴다. 마을에서는 한국에서 김장을 하듯, 간장 담그는 법을 배운다"고 그 풍경을 전했다. 최근 협회는 새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중춘옌 이사장은 "이곳 황씨 가문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를 위해 가옥 마당에서 간장을 담그는 풍습이 있다. 돌잔치 때 가족이 다시 모여 그 항아리를 열고 함께 요리한다. 가옥 문화와 양조 전통을 결합해 '우리 집 브랜드 간장'을 만드는 기획"이라고 소개했다.


중춘옌 이사장은 "20~30년 전까지 대만 사람들은 자기가 중국인인지 대만인인지 혼란스러워했다. 배운 역사는 다 중국에서 들어온 역사였고, 지리도 중국 지리만 배웠다. 그러다 20년쯤 전부터 사람들이 '내가 사는 이 섬은 어떤 땅일까'를 파기 시작했다. 나는 객가인이다, 우리 조상은 장제스와 함께 온 사람이 아니라 300년 전에 배를 만들어 온 사람이다, 그렇게 정체성을 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글·사진=대만 핑둥현에서 박준상기자 junsang@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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