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성의 야구칼럼] 일본을 이긴 한국인

  • 천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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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9-14 16:05  |  수정 2026-09-15 20:29  |  발행일 2026-09-15
천보성<전 삼성라이온즈 선수·전 LG트윈스 감독>

천보성<전 삼성라이온즈 선수·전 LG트윈스 감독>

1980년 5월 28일, 일본 프로야구 롯데와 한큐의 경기가 열린 가와사키 구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롯데 장훈 선수의 3,000안타 달성이 걸린 순간이었다. 마운드는 야마구치 다카시. 당시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강속구 투수였다. 1회에 이미 안타를 쳐 2,999안타를 기록한 장훈은 투수가 만 39살의 노장인 자신에게 변화구를 던지지는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오직 빠른 직구다, 그리고 정말 직구가 들어왔다. 손맛이 좋았다.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 3,000안타의 순간이었다. 이 기록은 46년이 지난 지금도 깨어지지 않는 전설이 되었다.


지난 10일 일본 통산 최다 3,085개 안타의 주인공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 선수가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90년 역사의 일본 프로야구지만 '안타제조기' 장훈 선수와 비교할 만한 선수는 868개의 홈런을 친 오 사다하루(왕정치) 선수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장훈 선수의 기록은 불멸에 가깝다. 그리고 그 기록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불운과 역경을 딛고 이룬 것이라 더욱 값지다.


장훈은 경남 창녕군에서 1939년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 장상정과 어머니 박순분 사이 2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이후 히로시마의 강가 판자촌에서 성장한다. 4살에 강둑에서 고구마를 구워먹다 후진하는 트럭에 떠밀려 모닥불을 손으로 짚는 사고를 당한다. 오른쪽 엄지와 검지가 붙어 버리고 새끼손가락이 반으로 잘렸다. 그 때문에 오른손잡이였던 그가 후일 좌투좌타의 왼손 야구선수가 되었다.


5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원폭에 피폭을 당한다. 전신에 화상을 입은 큰누나가 "아프다, 뜨겁다"며 울다가 하루 만에 숨을 거뒀다. 그는 어머니가 품에 안아 폭풍을 피했다. 등에 수많은 유리파편이 박힌 어머니의 흰옷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이후 그는 강한 아이가 되었다. 조선인으로 멸시를 당하면 분연히 싸웠다. 야구를 하지 않았다면 야쿠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도 사고를 쳐서 히로시마에서 받아주는 고교가 없자 형의 도움을 받아 오사카 나니와상고를 갔다.


이후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치고 은퇴 후 '야구의 전당'에 입성도 하였지만 솔직하고 직선적인 성격에다 귀화를 하지 않은 그에게 감독직을 제의하는 팀은 없었다. 그래서 방송에 나가 연예인 못지않은 입담을 과시하며 해설가로 활약하였다. TBS 선데이모닝 프로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에게 모조리 '떼끼(일본어 가츠)'를 날렸다. 그의 떼끼에 당하지 않은 야구인이 없을 정도였다.


장훈은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탄생과 발전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KBO총재 특별보좌역을 역임했고 LG구단을 비롯한 여러 구단의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아 지도를 했다. 멀리는 백인천에서 가까이는 이승엽까지 그의 도움을 받은 선수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 재일 운동선수로는 최초로 영예의 무궁화대훈장을 받았다.


필자가 코치 시절 한번은 그의 선수를 보는 눈에 탄복을 한 적이 있다. 당시 LG에는 신인으로 서용빈, 류지현, 김재현 트리오가 있었다. 장훈이 서용빈을 가리켰다. "체격도 좋고 왼손잡이에다 스플리트 타법이라 크게 될 친구다, 당장 오더에 넣어라"는 것이 그의 강력한 권유였다. 서용빈은 오더에 넣자마자 바로 날아올라 1994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되었다. 될성부른 재목을 바로 알아보는 그의 안목은 신에 가까웠다.


장훈의 어록 가운데 가장 유명한 말이 "국적은 종이 하나로 바꿀 수 있지만 민족의 피는 그럴 수 없다"는 말이다. '일본을 이긴 한국인'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그랬는데 2024년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일본에 귀화했다고 고백했다. 한사코 귀화를 거부했던 그가 왜 그랬을까. "한국의 어느 정권이 자이니치를 무시하였습니다. 자이니치들은 그들이 원해서 일본에 간 것이 아닙니다. 강제로 일본에 와서 밑바닥에서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았습니다. 엉뚱한 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지금 나의 국적은 일본입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어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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