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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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31 12:30  |  발행일 2026-10-31
임진왜란 명장의 충절 품은 380년 고택…도곡마을에 흐르는 ‘무의공 박의장’의 정신
박선이 맏형 박유 위해 1644년 건립…ㅁ자형 뜰집에 조선 중기 영덕 사대부가 건축 고스란히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자리한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전경. 임진왜란 당시 경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무의공 박의장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고택으로 건물 4동과 토지 1천941㎡가 2016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남두백 기자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자리한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전경. 임진왜란 당시 경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무의공 박의장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고택으로 건물 4동과 토지 1천941㎡가 2016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남두백 기자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마을 뒤로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고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오래전부터 '가마골'이라 불려온 이 마을 한쪽에 380여 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고택이 있다.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盈德 務安朴氏 武毅公派 宗宅)이다.


화려하거나 위압적이지 않다. 하지만 대문을 지나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사랑채와 안채, 사당으로 이어지는 공간 곳곳에서 조선 중기 영덕지역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건축미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집에는 임진왜란 당시 경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무신 무의공 박의장(朴毅長·1555~1615)과 그 후손들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종택은 건물 4동과 토지 1천941㎡ 규모로 2016년 4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임진왜란 명장 박의장의 후손들이 터 잡다


무안박씨가 영덕에 뿌리를 내린 것은 15세기 후반으로 전해진다. 처음에는 영해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했다. 이후 가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박의장이다.


박의장은 임진왜란 때 경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무장이다. 그의 후손들이 영해면 원구리에서 축산면 도곡리로 옮겨오면서 무안박씨 무의공파가 도곡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현재 종택은 박의장의 넷째 아들이자 서애 유성룡의 손자사위인 도와(陶窩) 박선(朴璿·1596~1669)이 맏형 박유(朴瑜·1576~1618)를 위해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1590년 무렵 이 일대에 터를 잡은 뒤 오랜 기간 집을 지어 1644년(인조 22)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도곡마을에는 박선이 1620년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도곡 충효당'도 남아 있어 무안박씨 가문의 역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경북 민속자료 제83호로 지정된 '도곡 충효당'은 원래 99칸의 규모로 지어졌으나 두차례의 화재로 지금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한 집의 역사가 곧 한 문중의 이동과 정착 과정인 셈이다.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으로 들어서는 대문. 대문간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규모로 부엌과 온돌방, 대문간, 헛간 등이 일렬로 배치돼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사랑채와 안채가 결합한 ㅁ자형 본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남두백 기자>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으로 들어서는 대문. 대문간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규모로 부엌과 온돌방, 대문간, 헛간 등이 일렬로 배치돼 있다. 이 문을 지나면 사랑채와 안채가 결합한 'ㅁ자형' 본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남두백 기자>

이 마을에 사는 박철기씨(80)는 "무의공 종택은 장군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집이라는 소리를 어른들로부터 많이 들었기에 마을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대문을 지나면 만나는 'ㅁ자형 뜰집'


종택을 제대로 보는 방법은 대문에서부터 천천히 공간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다.


집은 뒤쪽 야산을 등지고 앞쪽 들판을 바라보며 남향으로 앉았는데 정면의 솟을 대문 양쪽에는 한칸의 행랑과 두칸의 창고가 있다. 대문채를 통과하면 사랑채와 안채가 결합한 ㅁ자형 본채가 나타나고 그 뒤쪽으로 내삼문과 사당이 자리한다. 대문간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규모로 부엌과 온돌방, 대문간, 헛간 등이 일렬로 연결돼 있다.


종택 안마당에서 바라본 안채. 종택은 일반적인 ㅁ자형 뜰집보다 안채와 마주한 안마당의 폭이 5칸으로 넓은 것이 특징이다. 남두백 기자

종택 안마당에서 바라본 안채. 종택은 일반적인 'ㅁ자형 뜰집'보다 안채와 마주한 안마당의 폭이 5칸으로 넓은 것이 특징이다. 남두백 기자

안채에는 무의공파 14대 종부인 김화자씨(82)가 생활하고 있지만 병원진료가 잦아 기자가 방문한 이날도 문이 잠겨 있었다.


본채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안마당이다. 일반적인 ㅁ자형 뜰집에 비해 안채와 마주한 안마당의 폭이 5칸으로 상당히 넓다. 이런 공간 구성은 창수면 인량리의 영덕 충효당 종택과 유사한 특징을 보인다. 전문가들이 이 종택을 영덕지역에서 17세기 뜰집이 확산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로 평가하는 이유다.


문중 일을 챙기는 박동성씨(76)는 "문화청과 군에서 문중과 관련된 문화재를 잘 관리하고 있어 이미 많이 알려져 있고 이곳 종택은 우리 문중의 자랑이자 중심"이라고 말했다.


무의공파 종택의 사랑채. 남성들의 생활과 손님맞이, 학문과 교류가 이뤄지던 공간으로 안채의 맞배지붕과 달리 팔작지붕을 올렸다. 사랑대청 상부에는 연꽃을 형상화한 듯한 파련대공 등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도 확인할 수 있다. 남두백 기자

무의공파 종택의 사랑채. 남성들의 생활과 손님맞이, 학문과 교류가 이뤄지던 공간으로 안채의 맞배지붕과 달리 팔작지붕을 올렸다. 사랑대청 상부에는 연꽃을 형상화한 듯한 파련대공 등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도 확인할 수 있다. 남두백 기자

사랑채와 안채의 지붕도 차이를 보인다. 사랑채에는 팔작지붕을, 안채에는 맞배지붕을 올렸다. 안채 창문에는 과거 가운데 기둥을 세웠던 '설주'의 흔적이 남아 있고 사랑대청 상부에서는 연꽃을 형상화한 듯한 파련대공 등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채 대청 위에는 옛 종택의 이름인 청신구택(淸愼舊宅)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오랜 세월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지만 전체적인 원형이 크게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도 종택의 가치를 높인다. 대문간채는 1942년 다시 세워졌고 이후에도 보수가 이뤄졌지만 본채를 중심으로 한 전체적인 공간 구성에는 옛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종택 사당 앞에 자리한 수령 370년가량의 회화나무. 보호수로 지정된 이 고목은 종택과 비슷한 세월을 한자리에서 보내며 무의공 박의장 후손들의 삶과 문중의 역사를 지켜온 또 하나의 산증인이다. 남두백 기자

종택 사당 앞에 자리한 수령 370년가량의 회화나무. 보호수로 지정된 이 고목은 종택과 비슷한 세월을 한자리에서 보내며 무의공 박의장 후손들의 삶과 문중의 역사를 지켜온 또 하나의 산증인이다. 남두백 기자

◆사랑채에서 사당까지…살아 있는 종택


종택은 단순히 오래된 한옥 한 채가 아니다.


사랑채는 남성들의 생활과 손님맞이, 학문과 교류가 이뤄지던 공간이고 안채는 가족들의 일상이 이어지던 생활공간이었다. 여기에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별도의 영역을 이루면서 생활·접객·제례 공간이 하나의 집 안에서 질서 있게 구분된다.


특히 사당 공간의 독립성이 높은 것은 이 종택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국가유산청은 안마당의 확장과 사랑채의 돌출, 사당 공간의 높은 독립성 등이 17세기 사대부 주거건축의 변화와 영덕지역의 토착적인 건축 특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사당 앞에는 종택과 오랜 세월을 함께한 수령 370년가량의 회화나무도 있다. 보호수로 지정된 고목은 수백 년 동안 이 집에서 이어져 온 사람들의 삶과 문중의 역사를 지켜본 또 하나의 산증인이다.


문중 후손인 박삼락 영해향교 전교는 "어릴 때부터 봤던 종택의 기와집이 지금까지 잘 관리되어 있듯이 앞으로도 후손들에게 그대로 물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강하다"라고 말했다.


◆건물보다 오래 남은 '가문의 기억'


무의공파 종택과 함께 도곡마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곡 충효당. 박의장의 넷째 아들 도와 박선이 1620년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초 99칸 규모였으나 두 차례 화재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았다. 경북 민속자료 제83호로 지정돼 무안박씨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전하고 있다. 남두백 기자

무의공파 종택과 함께 도곡마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도곡 충효당'. 박의장의 넷째 아들 도와 박선이 1620년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초 99칸 규모였으나 두 차례 화재를 거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남았다. 경북 민속자료 제83호로 지정돼 무안박씨 가문의 역사와 전통을 전하고 있다. 남두백 기자

무의공파 종택의 문화유산적 가치는 건축에만 머물지 않는다.


가문과 관련된 문헌자료가 비교적 잘 보존돼 있으며 지금도 매년 3~4차례의 문중 제례가 이어진다. 문중의 대소사를 논의하고 구성원들이 모이는 장소로 사용되는 등 종택 본래의 기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국가유산청 역시 건축적 가치와 함께 이러한 생활·제례문화의 지속성을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의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그래서 이곳을 걷는 일은 옛집을 구경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대문채를 지나 사랑채와 안마당을 살펴보고 다시 내삼문 너머 사당으로 향하다 보면 17세기 어느 사대부 집안의 공간질서가 자연스럽게 읽힌다. 그리고 그 공간 곳곳에는 임진왜란을 헤쳐간 무장의 충절에서 시작해 형을 위해 집을 지었던 아우의 마음과 수백 년 동안 종택을 지켜온 후손들의 시간이 겹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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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두백

영덕을 대게 잘 아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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