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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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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의 메타명리학] 나는 누구인가 (5)…수(水)로 태어난 사람
주자학은 인간을 천지자연의 본성을 가진 존재이지만 기(氣)에 바탕을 둔 물질적 존재(形質)로도 파악한다. 본성을 얼마나 잘 연마했는지는 그 사람이 지닌 기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본다. 이 인식 태도는 특히 중국 회화(繪畵) 독법(讀法)에서 잘 나타난다. 형이상학(形而上學)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중국에선 형태(形)를 넘어선 존재를 도(道)라 보았고, 그 도는 기를 통해 현실에 드러난다고 봤다. 회화는 외견적으로 하나의 형을 갖고 있는데 도를 추구하는 중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 형을 넘어설 때라야 도에 이른다는 생각이다. 그 이유로 육조시대(229~589년) 들어서면서 형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기를 표현한다는 사상이 문학과 회화세계에 침투한다. 이를 동양예술의 미학, 즉 '기운(氣韻)'이라 하는데, 이 시기엔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해서 작품의 대상이 얼마나 잘 묘사되었는가의 관점이 먼저 유행했다. 양의 수 임수(壬水)지상 생명활동 마무리, 휴지기 돌입육체보다 정신적 작용 활성화 단계트렌드 잘 파악 마케팅 업무에 탁월음의 수 계수(癸水)빗물·수증기처럼 순환…동적 특성순발력 으뜸, 土와 만나면 좋은 작용개인 사업보다 조직에서 실력 발휘◆중국의 기(氣) 의식이후 11세기 송나라에 가서는 기운생지(氣韻生知), 즉 그림에 표현된 기운은 그려진 대상이 아닌 화가의 기운에 의해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옮겨간다. 이를 토대로 중국에선 '문인화(文人畵)', 즉 그림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선비나 사대부들이 자신의 심중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기법이 발달한다. 육조시대를 풍미한 왕희지(307~365년)의 필체를 흉내 내려고 하거나 모사한 작품이 송나라에서 유행했던 것도 왕희지의 정신을 본받고자 하는 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필의 글씨를 익히거나 감상할 목적으로 모범적 글씨의 모사본을 책으로 만든 것을 '법첩(法帖)'이라 하는데, 중국의 여러 박물관에서 특별전시가 종종 열린다. 기의 사상에서 보면 같은 모습을 지닌 것은 같은 기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왕희지의 많은 모사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된다. 나는 이런 문화적 배경이 중국의 일명 '짝퉁' 문화와도 연관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진품과 거의 동일하게 만들어진 짝퉁은 비록 고유성은 없더라도 절대 하찮은 제품이 아니다. 즉 같은 형을 지닌 것은 같은 기를 품고 있는 것이므로 원본과 모본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오히려 훌륭한 원본을 만든 장인의 정신을 본받고자 하는 심리 기제(機制)의 발현인 것이다.◆기와 파동에너지명리학에서 말하는 목화토금수 오행도 기에 바탕한다. 하늘, 즉 우주에 존재하는 다섯 기운이 지상에 내려오면 현실의 물질세계가 구현됨을 뜻한다. 예컨대 목(木)은 하늘에선 생명의 탄생과 시작의 기운이다. 지상의 인간이 사주에 그 기운을 머금으면 인본(人本)주의 혹은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발현된다고 본다. 이런 접근법은 어떻게 보면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보른(1882~1970년)이 처음 제시한 양자역학(量子力學),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에서 모든 물질은 입자이자 동시에 파동(波動)이라는 파동·입자 중첩론과도 결이 닿는다. 고유진동수가 같다면 파동끼리는 공명을 하는데, 이는 입자가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어도 파동의 공명, 즉 일종의 '동기감응(同氣感應)' 현상에 의해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명리학이 서양의 과학이 아니라고 배척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할 대목이라 생각한다.이 정도로 정리해 두고 오행의 마지막 순서로 수(水)로 태어난 사주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양의 수인 임수(壬水)다. 바다나 호수 혹은 텅 빈 암흑의 공간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음양학에서 수는 생명이 지상 활동을 마무리하고 휴지기에 돌입한 상태를 의미한다. 당연히 육체보다는 정신적 작용이 활성화되는 단계다. 임수로 태어난 사람은 몸보다는 머리를 먼저 사용하는 유형이다. 물은 어디든 흘러가므로 세상사에 관심이 많고, 또한 여러 물줄기가 한곳에 모이기도 하므로 취미도 커피잔을 모으는 식의 컬렉션형이다. 대인관계 역시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다만 수는 다른 오행과 달리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은 덜 선명하고 대신 주변 글자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그래서 임수는 어떤 글자가 옆에 있는지를 중요시한다. 임수는 바다인데 거기에 좌표가 없다면 어디가 동쪽인지 북쪽인지 분간이 어렵다. 이 좌표에 해당하는 글자가 바로 큰 산(혹은 제방)을 상징하는 무토(戊土)이다. 임수 일간으로 태어난 사주에 무토가 있다면 직업적 특성에 활용하면 신출귀몰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큰 창고의 재고 파악 업무라든지, 혹은 경쟁 환경이나 트렌드를 잘 감지해야 하는 기업 마케팅 업무 등등. 한편 임수가 태양을 의미하는 병화(丙火)와 함께 있다면 바다에 태양이 비치고 있는 형상으로 바다의 수온, 즉 에너지가 높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지구력이나 인내심이 강하다고 본다. 장기 레이스를 요하는 직업을 선택하면 부귀할 확률도 당연히 높아진다. 이런 풀이법은 용신을 찾는 것과는 다른 방식인데 직업 선택에 활용할 여지가 크다. 다음은 음의 수인 계수(癸水)다. 임수는 바다 같은 물 혹은 텅 빈 공간이라고 했지만 계수는 고여 있는 물보다는 빗물이나 수증기처럼 순환적이면서 동적(動的) 특성을 갖는다. 10개의 천간 순서로 마지막이지만 만물의 출발점인 갑목(甲木) 바로 앞에 있어 준비만 되면 곧장 박차고 나갈 태세인 거다. 계수는 그래서 머리를 사용하는 순발력은 으뜸이다. 빗물은 땅을 비옥하게 하므로 계수는 토(土)를 만날 때 좋은 작용이 생긴다. 땅에 물이 흐르면 사람이 모이고 비싸지듯 말이다. 토(특히 己土) 일간이 계수를 보면 용어상 재성(財星)인데 자신의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가치를 높여주는 작용이 있음을 말하고, 반대로 계수 일간이 토를 보면 이는 관성에 해당하는데 자신이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일과 인연이 많음을 시사한다. 개인사업보다는 조직에서 실력 발휘 기회가 많다고 보면 된다. 물론 이것만으로 사주 전체를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지만 글자의 배합 구조만으로도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를 꽤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메타명리학이다. <사주공학연구소장 logoswater@hanmail.net>☞ 필자 이재호는 미국 뉴욕대(NYU)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미래에셋증권 상무, 숙명여대 멘토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 사주공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말&여행] 전북 진안 사양저수지…분수가 하늘 향해 물 뿌리면 물에 잠긴 마이산이 파르르 몸을 떤다
마이산은 꽃봉오리처럼 벌어져 있다. 그것은 물속에 잠기어 하나의 커다란 꽃 같기도 했고 아이가 신중하게 접은 나비 같기도 했다. 저수지는 생각보다 작았다. 마이산을 담은 수조라 할 만했고 혹은 그의 명경인가도 했다. 분수는 분수도 모르고 자꾸만 꽃잎을 흩트렸다. 해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 먼지 같은 햇살을 뿌리고 있었는데, 산봉우리에서 미끄러진 햇살은 저수지의 서안으로 쏟아졌다. 그곳에는 하얀 살로 피어난 갈대와 바짝 마른 몸의 포도나무들, 노랑과 주황의 활엽수 그리고 지붕이 뾰족한 소설 같은 집이 마른 수풀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가뭇없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가을 오후였다.마이산 북쪽 아래 1962년 완공 저수지햇빛이 비껴 간단 뜻서 사양제로 불려1억 년 전 즈음 호수였다는 진안고원7천만 년 전 역암층 솟아 마이산으로암·수 마이봉 사이 샘솟는 작은 샘물사양제 채우고 진안천 됐다가 금강 돼◆진안읍 단양리 사양동 사양저수지마이산의 북쪽 아래 단양리 사양동에 사양 저수지가 있다. 사양제(斜陽堤), 단양제(丹陽堤), 사양동 방죽이라고도 부르며 1957년에 착공해 1962년에 준공됐다.'사양'은 '햇빛이 비껴 간다'는 뜻이다. 북쪽으로 트인 골짜기라 빛 드는 시간이 짧았나 보다. 사양이라 할 만큼 짧은 태양의 하루이지만, 사람들은 해 질 무렵 서산에 걸친 햇빛이 마을에 비칠 때면 참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하여 '사양낙조(斜陽落照)'라 추앙했다. 하루 일을 끝낸 골짜기 사람들과 그들의 얼굴을 물들이는 석양빛이 떠올라 마음이 부푼다. 사양제 둑 사면에 한 여인이 포복해 있다. 급할 것 없는 평온한 오체투지의 끝에 들어 올린 얼굴이 맑다. "그게 뭔가요?" "고들빼기. 야생 고들빼기." 아, 나는 그 맛을 모른다.사양제 둑길에 바람개비가 팽팽 돈다. 코스모스는 모두 졌다. 벤치들은 파란 파라솔을 쓰고 세상 한량인 모습으로 앉아 있고 한 사내가 벤치를 쓱 닦으며 지나간다. 연인이 둑길을 걷는다. 멀리서 개가 짖는다. 분수가 하늘을 향해 물을 뿌리고 수면에 떠 있는 데크 산책로가 슬쩍슬쩍 들썩이고 물에 잠긴 마이산이 파르르 몸을 떤다. 1억년 전 즈음 진안고원은 호수였다. 호수로 쓸려온 모래와 자갈 따위가 물속에서 쌓여 2천m 두께의 역암층이 됐고 7천만 년 전쯤이 됐을 때 땅이 크게 흔들려 역암층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것이 마이산이다. 두 봉우리 중 풍만한 쪽이 암마이봉(해발 686m), 뾰족한 쪽이 수마이봉(680m)이다. 암마이봉 정상에서 쏘가리를 닮은 민물고기와 다슬기의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단다. 사양제의 물은 마이산에서 온 것이다. 물에 잠긴 마이산이 태초의 시간처럼 준동한다. 마이산은 신라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 조선 초기에는 속금산으로 불리다 태종 때에 이르러 마이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두 봉우리의 모양이 '말의 귀(馬耳)'를 닮았다 해서 마이산이다. 계절마다 이름도 다르다. 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두 봉우리가 쌍돛대를 닮아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 같다 해서 '용각봉(龍角峰)',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인다 해서 '문필봉(文筆峰)'이다. 특히 노령산맥은 용의 몸, 진안고원은 용의 머리, 마이산은 용의 뿔과 같다 하여 용각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래선지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용왕신에게 제를 모셨다고 한다. 일 년에 두 번 음력 정월과 7월 백중날에, 제방에 오방기를 세우고 4개의 호롱불을 켜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정오에 제를 올렸다. 그리고 정월 초하루부터 초나흗날까지 밤마다 불을 밝혔다. 그들은 이렇게 기원했다. "진안군 진안읍 사양동 마이산 밑의 제방이옵나이요. 어찌든지 금년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 무사고로 댕겨주시라고 금일 정오에 이렇게 바치오니 반갑게 받아주시고 반갑게 놀아주시기를…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집안에 어찌든지 정월 초하루부터 그믐날까지 무사고로 댕겨주시라고…." 그들은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안녕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마이산 북부 일원사양제 주변에는 진안홍삼스파, 산약초 타운, 역사박물관, 미로공원, 가위박물관, 연인의 길 등 진안의 대표 관광시설이 밀집해 있다. 이곳은 2013년 7월, 전라북도 동부권 신발전 지역 투자 촉진 지구로 승인받아 마이산 북부 예술관광단지로 거듭났다. 저수지 아래 아마도 옛날에는 논밭이었을 골짜기 땅은 지금 '마이돈테마파크'다. 진안은 흑돼지가 특산물이고 상표는 '마이돈'이다. 공원 곳곳에 돼지 모형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진안 홍삼축제도 열린다. 홍삼 역시 진안의 특산품이다. 공원 아래는 음식점 거리다. 돼지를 테마로 조성해 곳곳에서 웃는 돼지 얼굴과 마주친다. 그 아래 골짜기 입구 쪽에는 산약초 타운과 홍삼한방타운이 널찍하게 자리한다.마이돈테마파크 광장에서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진안역사박물관에 닿는다. 2006년에 문을 연 박물관은 구석기시대부터 현재까지 진안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용담댐 건설로 사라진 마을들과 이주민, 실향민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박물관 뒤편에는 미로공원이 있다. 2층 누각에 오르면 미로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마이산이 귀를 쫑긋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사양제 앞에는 마이산으로 향하는 '연인의 길'이 있다. '마이산 구 도로'라 불렸던 이 길은 과거 마이산 중턱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2002년경 '연인의 길'로 개칭됐고 북부 진입로 중 한 구간이 됐으며 지금은 차량을 통제하여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길은 약 1.9㎞로 마이산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갈라지는 곳까지 연결된다. 단풍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길이어서 가을이 특히 아름답지만 봄에도 연초록과 들꽃으로 가득하다. '마이 열차'라는 전기차도 운행하고 있다. 옛날에는 구룡 열차라고 불렀다 한다. 길 끝인 암마이봉과 수마이봉 사이에서는 작은 샘물이 솟는다. 그 물이 이곳 사양제를 채우고 진안천이 되었다가 금강이 된다. 멋지다. 누각에서 미로공원을 본다. 그 뒤로 단풍 든 숲이 희부윰하다. 숲으로 드는 연인의 길이 얼핏 보인다. 조선시대 학자 김종직은 '아름다운 봄 죽순 같은 자태를/ 서로 사랑할 뿐 기댈 수는 없구나'라고 노래했지만,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은 조금 떨어져 아무도 모르게 손을 꼭 잡은 듯하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여행 Tip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광주방향으로 가다 함양 분기점에서 35번 통영대전고속도로 대전방향으로 간 후 장수분기점에서 20번 익산방향으로 가다 진안IC에서 내린다. 진안IC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진안읍 쪽으로 가다 군하교차로에서 좌회전해 직진하면 된다. 진안홍삼한방타운 지나 식당가를 따라가면 왼쪽에 미로공원과 진안박물관이 있고 마이돈테마공원 끝에 사양저수지가 자리한다. 연인의 길 마이열차는 편도 3천원, 왕복 5천원이다.마이산이 고스란히 담긴 사양저수지. 1962년에 준공된 농업용 저수지로 부유식 데크 산책로, 분수, 구름다리 등이 조성되어 있다.저 멀리 사양제 둑길에 바람개비가 팽팽 돈다.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용왕제를 지냈으며 제방에 오방기를 세우고 호롱불을 켜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정오에 제를 올렸다고 한다.누각에 올라 미로공원을 내다본다. 단풍 든 숲이 희부윰하고 연인의 길이 얼핏 보인다.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은 조금 떨어져 아무도 모르게 손을 꼭 잡은 듯하다.저수지 아래 아마도 옛날에는 논밭이었을 골짜기 땅은 지금 '마이돈테마파크'다. 진안은 흑돼지가 특산물이고 상표는 '마이돈'이다. 공원 곳곳에 돼지 모형이 놓여 있다.
[이태원 참사] 외신, 이태원 핼로윈 참사원인 분석 보도
핼로윈을 불과 이틀앞둔 지난 29일 밤 발생한 서울 이태원 참사와 관련 외신들과 전문가들은 참사 원인을 보도하고 있다. 또 핼로윈을 앞두고 사전에 조치를 한 외국의 대응도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외신·전문가 참사 원인 분석도 보도주요 외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방역규제가 풀린 뒤 열린 첫 핼러윈 행사였다는 데 주목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29일(현지시간) 한정된 공간에 지나치게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사고가 초래됐다는 영국 잉글랜드 서퍽대 방문교수이자 군중 안전 문제 전문가인 G. 키스 스틸 교수의 분석을 소개했다. 스틸 교수는 "이른바 '집단 쏠림'(stampede)은 사람들이 달릴 공간이 있어야 발생하는데 이태원은 그런 사례가 아니다"라면서 "좁고 막힌 공간일 경우 군중 전체가 한 무더기로 무너지면 다시 일어날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도미노 효과와 같다"고 말했다 . 그는 이런 사고는 통상 인파를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밀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공황 상태에 빠져서 사람이 죽은 게 아니라 (깔린 채) 죽어가기 때문에 공황 상태에 빠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틸 교수는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으로 오랜 기간 외부활동이 제한됐다가 올해 관련 규제가 대부분 해제되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핼러윈 행사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군중 시뮬레이션과 바이오정보학을 연구하는 마틴 에이머스 영국 잉글랜드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대형 이벤트에는 군중을 관리할 수 있도록 적절한 기획과 훈련된 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에이머스 교수는 WP에 "일반적인 관점에서, 위험하게 높은 군중 밀집도를 예측·감지·방지하는 적절한 군중 관리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는 한 이러한 일들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사고에 휘말렸다가 살아남은 생존자의 증언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이 생존자는 "내 앞사람이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나도 밀려 넘어졌다 내 뒷사람들 역시 도미노처럼 넘어졌다"면서 질식할 뻔하다가 간신히 빠져나와 돌아본 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너무나 붐비고 시끄러운 탓에 불과 몇 m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 채 사진을 찍거나 화장을 하고 주점 주인과 언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CNN 방송 역시 좁은 거리에 인파가 빽빽이 몰려 움직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는 목격자 증언을 소개했다. 윌 리플리 기자는 3년 만에 코로나19 관련 제한이 없는 첫 핼러윈 행사였다는 점을 언급하며 "마스크 착용 의무도, 군중 규모에 관한 제한도 없었다.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는 확성기 경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 답변이 없는 큰 질문은 '왜', 그리고 '다른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WP는 '서울 압사사고는 어떻게, 어디서 일어났나'라는 제목의 별도의 기사에서는 이번 비극의 원인이 여전히 조사 중이지만, 현장 영상을 보면 좁은 거리와 골목길이 몰려드는 인파의 규모를 감당할 수 없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영국 BBC 방송도 이번 행사에 참가인원 제한이 없었던 점에 주목했다. 이 매체는 "안전기준과 군중통제 조처가 취해졌는지 등으로 관심이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미 축제현장 안전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울에서는 핼러윈이 어린이들이 사탕을 움켜주는 날로 널리 기념되지 않는다"며 "최근 몇 년간 20대 안팎의 이들과 그 외 파티에 가는 이들이 핼러윈을 특유의 복장으로 치장한 채 클럽에 가는 주요 이벤트로 만들어버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외국 사전 조치 눈길지난 29일 서울 이태원에 쏟아진 인파에 밀려 대형 압사 참사가 벌어진 가운데,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에 대비한 해외 각국의 사전 조치에 관심이 모아진다. 30일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매년 전국적으로 성대하게 핼러윈을 기념하는 미국의 경우 지역 곳곳엣 교통사고 위험을 낮추고자 차량을 통제하는 곳들이 있다. 일례로 미국 최대 도시인 뉴욕은 핼러윈 당일인 오는 31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맨해튼과 브루클린, 브롱크스, 퀸스 등지의 거리 약 100곳을 일시 폐쇄한다고 현지 타임아웃 등 현지 온라인 매체들이 전했다. 이웃집을 찾아다니며 '트릭 오어 트릿'(trick or treat)이라고 외치고는 사탕이나 초콜릿을 받아가는 핼러윈 풍습에 따라, 도심을 '차없는 거리'로 만들어 사고 발생 가능성을 낮추겠다는 취지다. 워싱턴 지역방송인 WUSA9가 분석한 2011∼2020년 통계를 보면 평상시에는 18세 미만 인구의 일평균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10명 안팎에 그치지만, 핼러윈 기간에는 40명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공유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도 핼러윈을 목전에 두고 강력한 사고 예방책을 시행 중이다. 에어비앤비는 지난 6월 주변에 주의를 주는 파티와 행사를 영구적으로 금지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2019년 핼러윈 기간 캘리포니아주의 한 숙소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져 5명이 숨진 뒤 잠정적인 파티 금지 조치를 내렸는데, 이를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코로나19 창궐 직후인 2020년 8월 모든 파티에 대한 금지 조치를 미국에서 전 지역으로 확대 적용했고, 이후 파티 관련 신고가 44% 가량 줄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연합뉴스지난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일어난 압사 사고 영향으로 대구 남구 앞산 카페거리 공영주차장에서 열리던 '2022 대구 핼러윈축제'가 30일 취소됐다. 사진은 행사장 앞에 설치된 이태원 압사 사고 희생자 애도 현수막. 연합뉴스30일 강원 강릉시 명주예술마당에서 열린 전국생활문화축제장이 이태원 압사 참사 여파 등으로 공연이 취소돼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사설] 파행으로 점철되는 국감, 이럴 거면 왜 하나
국정감사가 여야 정쟁의 장으로 변질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특히 심하다. 질의도 하기 전 말꼬투리를 잡아 고성, 막말이 오가며 정회가 선포되는 등 파행의 연속이다. 국정감사란 국회가 국정에 관한 조사를 행하는 것으로,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기능 중 하나다. 국정 전반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특정 사안에 국한된 국정조사와는 다르다.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할 모처럼의 기회지만, 여야는 문제점 지적 및 해결에 머리를 맞대기보다 '문 정부 책임론'과 '윤 정부 실기론'으로 각각 전선을 형성해 실익 없는 헛심 공방만 벌인다.외교통일위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문재인 전 대통령 서면 조사 등을 놓고 첫날부터 대립했다. 법사위에선 추미애 전 장관 아들 공방전으로, 교육위에선 김건희 여사의 논문표절 의혹으로 국감 중단 등 파행을 빚었다. 환경노동위의 경제사회노동위 국감은 이념 대결장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이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란 김문수 경노위 위원장의 발언이 발단이 돼 국감 중단 및 김 위원장 퇴장으로 이어졌다.입법부의 권한을 행사해야 할 국감에서 여야가 정쟁에 골몰하면 정작 국감은 소홀히 진행될 수밖에 없고 피해자는 국민이 된다. 방대한 정부 조직 구석구석을 훑어보기에 3주는 너무 짧다. 그런데도 국감이 정쟁의 장, 국민 분열의 장이 되자 "이런 국감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국정감사를 준비하기 위해 피감기관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나. 또 얼마나 많은 혈세가 투입됐나. 남은 열흘만큼이라도 취지를 잘 살린 민생국감, 생산적 국감이 되기를 촉구한다.
[정문태의 제3의 눈] 죽은 기자의 사회
"당신이 미카 야마모토를 잘 안다고 하던데?" "그저 몇 번 만났을 뿐." "미카 남편은?" "사토 카즈타카도 마찬가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만난 게 다였다."엊그제, 전선기자의 죽음을 취재한다며 난데없이 찾아온 한 오스트레일리아 다큐멘터리 감독이 내 옛날 기억을 끄집어냈다. 일본 언론인 미카와 사토를 만난 건 25년 전 아프가니스탄전쟁 취재 때였다. 그 뒤 서로 연락이 끊겼다가 꼭 10년 전 이맘때 미카가 시리아전쟁을 취재하다 총 맞아 숨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취재 현장에서 맺은 인연 가운데 목숨 잃은 열두어 번째였다. 한데 오스트레일리아 감독 기대와 달리 나는 별 도움을 못 줬다. 미카를 잘 모르는 판에 마치 전선기자 대표선수마냥 주절대기가 몹시 거북했던 탓이다. 이념도 목적도 저마다 낱낱이 다른 전선기자를 하나로 뭉뚱그려 말할 재주도 없거니와 자칫 입을 타고 무용담으로 변질되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했으니. 오래 전 한 출판사가 미카 유고집을 내면서 내게 부탁한 추천사를 정중히 거절했던 것도 같은 뜻이었다. 그렇게 미카를 달고 온 오스트레일리아 감독은 전쟁으로 이야기를 넓혀가며 두어 시간이나 나를 붙들어 맸다. 그의 화두는 직유든 은유든 내내 "전쟁터 취재가 두렵지 않나"였다. 마치 로봇임을 자백하라는 듯! 늘 들어온 말이었고 늘 대꾸하기 마땅찮았던 나는 또 뻔한 말로 둘러댔다. "세상에 전쟁 안 무서운 놈 있겠나. 직장이라 여기고 가는 거지."서먹서먹한 자리 끝에 "미안하다. 내가 전쟁 취재하다 죽어본 적 없어 속 시원한 답을 못 준 것 같다"며 헤어졌지만 하루 내내 맘이 무거웠다."전쟁 취재하다 죽을 확률이 교통사고보다 낮다."전선기자들이 대물림하며 입에 달고 다닌 말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예컨대 미국의 제2차 이라크 침공(2003~2011년)이 좋은 본보기다. 그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이 4천507명인데 살해당한 언론인이 자그마치 283명에 이른다. 비무장 시민인 언론인 죽음이 미군 전사자에 견줘 5%나 된다. 이런 전시 언론인 사망률은 전사를 눈 닦고 찾아봐도 없다. 이라크전쟁이 다가 아니다. 시리아전쟁(2011년~현재)에서도 언론인 153명,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도 언론인 27명이 몫몫이 살해당했다. 1992년부터 오늘까지 전쟁과 분쟁에서 살해당한 언론인이 2천168명이다. 해마다 어림잡아 70명 웃도는 언론인이 죽어 나간 셈이다. 집계에 잡힌 수만 따져도 그렇다는 말이다. 실종이나 알려지지 않은 희생자까지 다 찾아낸다면 그 수는 몇 배에 이를 게 뻔하다. 전쟁을 먹고 사는 군인을 빼면 그 어떤 직종보다 많은 이들이 살해당했다는 뜻이다.내 경험에 따르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전쟁에서 살해당한 기자는 흔치 않았다. 거의 오인 사격이나 오폭에 걸려 목숨을 잃는 경우였다. 목적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어딜 가나 기자를 사냥감으로 여기고 과녁 삼아 공격하는 건 2000년대 들어 벌어진 현상이다. 바로 세계시민사회에서 '쓰레기 기자'란 말이 나도는 이 언론불신의 시대와 한 궤를 탄 사실을 눈여겨볼 만하다. 온갖 정파들이 저마다 언론을 향한 불신감을 기자 살해로 보복한 꼴이다. 먼저 간 기자들이 쓰레기인지 아닌지 알 순 없지만 적어도 나처럼 살아남은 모든 쓰레기들 대신 희생당한 것만큼은 틀림없다. 동료 기자들을 죽인 나쁜 놈들을 욕하다 나를 돌아본다. 정신이 번쩍 드는 아침이다.국제분쟁 전문기자국제분쟁 전문기자
[박규완 칼럼] 표절과 곡학아세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입체주의 창시자 파블로 피카소의 어록이다. 본인도 많이 훔쳤다는 고해성사일까. 훔친다? 기실 '훔치다(steal)'엔 다양한 함의가 있다. 이성의 마음을 훔치면 성공한 연애가 되고, 첨단 전투기는 하나 같이 스텔스(stealth) 기능을 장착한다. 야구에서도 주자가 베이스를 훔치는 데 성공하면 안타 없이 2루도 가고 3루도 간다. 심지어 홈스틸까지. 물론 실패하면 아웃이다. 피카소는 '훔치는 기술'을 말했을지 모른다. '표절의 기술'일 수도 있겠다. 그대로 베끼면 표절이지만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면 창조적 모방이니까.공자도 논어에서 은근히 모방을 권유했다. '서술하되 새로 짓지 않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 이 말을 신봉했을까. 한나라 문인 양웅은 논어를 모방해 법언(法言)을 짓고 주역을 본떠 태현(太玄)을 편찬했다. 조조는 고대 병법가의 저술을 연구하고 발췌한 주석을 손자병법에 붙여 '위무주손자'란 병서(兵書)를 만들었다. '오마주' '패스티시' 같은 용어도 인용·모방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웅변한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박사가 명쾌하게 정리했다. '완전한 창조는 신의 영역이다. 인간의 발명·창작은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데서 나온다'.아마도 김건희 여사는 '훔치는 기술'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논문 표절 의혹의 여진(餘震)이 이어진다. 국민대 재조사의 적정성이 논란의 진앙이다. 국민대는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과 학술지 논문 3편 등 4편의 논문에 대해 3건은 연구부정행위가 없었고 나머지 1건은 검증불가라는 결론을 냈다. 노골적으로 면죄부를 헌정한 셈이다. 국민과 학계는 국민대 판정을 도무지 못 믿겠다는 입장이다. 온라인 댓글엔 '희대의 날조심사' '방탄 심사'란 조롱이 쏟아졌다. 사립대교수연합회 등 13개 교수·연구자단체는 '범학계 국민검증단'을 구성해 김 여사의 논문을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세태에 그나마 경종이 될 법하다.숙명여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건희 여사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를 심사하고 있는 숙명여대는 지난 3월 예비조사를 마치고도 5개월째 본조사를 뭉개고 있는 상황이다. 숙명여대 교수들은 "김건희 여사의 석사 논문 표절률이 48% 이상"이라고 밝혔다. 국민대는 논문 재조사 결론이 떳떳하다면 재조사위원회 명단과 회의록, 최종보고서를 공개해야 한다. 왜 공개하지 못하나. 구닥다리 국정원 원훈처럼 음지에서 심사하고 양지를 지향하겠다는 건가. 국민대가 도이치모터스 주식 30만주를 사들인 것도 수상쩍다. 김건희 여사-국민대-도이치모터스 커넥션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교육부의 대응도 민망스럽다. 국민대 입장을 존중하겠단다. 차라리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하는 게 낫지 않나. 존중할 게 그리도 없나. 온 국민이 의혹의 시선을 보내는 논문 재조사 결과를 존중하다니. 부실심사 여부를 감사(監査)해도 모자랄 판에. 5세 취학에 이은 '영혼 없는 교육부' 2탄이다. 불륜과 사랑, 투기와 투자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표절과 모방의 경계는 꽤 명확하다. 남의 논문을 따오고 싶으면 인용했다는 각주를 붙이면 된다. 출처를 밝히지 않고 베끼는 건 자기 연구인양 위장하겠다는 후흑(厚黑)이다.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국민대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니 5년 동안 김건희 여사의 논문 검증을 유예하자"고 제안했다. 한데 대통령 영부인 논문이 곡학아세로 왜곡된다면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있겠나.<논설위원>논설위원
[기고] 백두대간 자생식물 이야기 <13>가래나무 이야기
가래나무(Juglans mandshurica Maxim)는 가래나무과, 가래나무속 낙엽활엽교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일반적으로 산호두나무, 토종 호두나무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호두나무와는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호두나무는 고려 시대에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종이지만 가래나무는 우리 고유의 자생 식물이다. 우리나라 지역명을 살펴보다 보면 '가래골'이라고 불리는 곳이 종종 보이곤 한다. 가래나무가 많이 자라는 골짜기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그만큼 우리나라 곳곳에 많이 자생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얼마 전 필자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탐스럽게 열매를 맺고 있는 가래나무를 본 적이 있다. 아마 가래나무를 모르는 분들도 우리 생활 주변에서 한 번쯤 스쳐 지나갔으리라고 생각된다.가래나무라는 이름은 가래나무 씨앗을 갈라보면 가래라는 농기구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속담에 나오는 그 가래다. 재밌는 것은 연못이나 논에서 자라는 '가래'라는 식물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가래'와 '가래나무'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흡사 '생강나무'가 우리가 향신료 등으로 식용하는 '생강'과 다른 것과 같다.한국의 민속식물 전통지식과 이용(국립수목원)에 따르면 가래나무는 뿌리를 찧어서 냇가에 풀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고, 종자는 경련성 소화기 질환, 감기에 좋고 수피는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열매는 술로도 담가 먹고, 줄기는 재질이 좋아 가구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고도 한다.이러한 가래나무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위치한 경북 봉화군에도 많이 자생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겨울이 지나면 고로쇠 수액처럼 가래나무도 수액을 채취해서 음용하기도 하는데 가래나무 수액은 식약처 식품원료목록에 등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식용으로는 주의를 요하고 있다. 식품 원료목록에는 가래나무 열매만 식용 가능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진은 2017년부터 이 가래나무 수액을 채취해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수액 속에 단맛을 내주는 설탕, 과당, 포도당 등과 칼슘, 칼륨 등 미네랄 성분이 풍부하게 함유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앞서 언급한 것처럼 식품 원료로는 아직 사용할 수 없는 원료이기 때문에 활용도 증진을 위해 가래나무 수액을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기 위한 연구를 수행한 결과 피부 보습 및 주름 개선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이용하여 특허 등록을 하였고 경북도 내 화장품 기업에서 정제수(물)를 대신하여 가래나무 수액을 이용한 미스트 및 크림 제품을 생산하기도 하였다.우리나라 바이오산업에 있어 원료에 대한 수입 의존도는 약 80% 이상으로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진들의 노력이 모이면 언젠가는 바이오산업계에 수입 의존도가 낮아지고 우리나라만의 특별한 자원을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어 본다.김영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물자원부 산업화 연구실장)김영수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물자원부 산업화 연구실장)
[기고] 금호강을 금호강답게
대구 수성구청이 금호강 대구유역 상류인 팔현마을에서 남천 합수부까지 4.3㎞에 '사색 있는 산책로'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1차 사업으로 매호천까지 2㎞ 구간 공사를 하고 있다. 고수부지에 산책로를 조성하기 위하여 일부 구간은 강 호안에 높이 2.6m의 콘크리트 구조물의 석축 옹벽 조성공사를 진행하여 심각한 환경파괴를 자행하고 있다. 여러 지역의 강 둔치에 여가시설 체육공원 혹은 경작을 위하여 넓은 고수부지를 조성하는데, 강의 생태계를 무시하고 인간 위주의 개발방식에 치중하고 있다.강을 강답게 보존함이 생태계의 기본이며 홍수 등 자연재해에 하천 스스로 대응하고 치유하는 길이 열려 있다. 2002년 태풍 루사로 김천 감천이 범람하여 고수부지와 도로가 유실된 적이 있다. 수해 현장을 망연히 바라보는 노인이 하신 말씀이 기억난다."원래 물길이 저 길이여." 도로가 유실되어 홍수가 범람한 부분이 원래 감천의 물길이었다는 말씀이다. 결국, 사행천(蛇行川)이 강물의 속성임을 무시하고 진행한 직수직강(直水直江)의 고수부지 조성사업은 결국 환경파괴와 재해의 원인이 됐다.2000년 대구 동구청장 재직 시, 금호강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공사명을 ' 강을 강답게, 금호강을 금호강답게' 사업이라 명명하였다. 인터불고호텔 건너편 화랑교에서 율하교까지 친환경적이고, 인간과 강이 하나가 되는 친수공간으로의 둔치 정비 사업을 추진하여 지금의 생태하천이 되었다.콘크리트 구조물이나 시멘트 한 포대 사용하지 않고 둔치를 조성하는 신공법을 적용하였다. 콘크리트 구조물 대신 돌망태를 만들어 굵은 돌과 잔 돌을 넣고 수생식물 씨앗이 포함된 진흙으로 채워 강 호안에 설치하여 사행천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고수부지를 조성하였다. 당시 건설과 공무원들의 일부 우려도 있었지만, 외국 사례 검토와 일본 도쿄대 교수의 초청 강연, 기술자문 등으로 친환경적 조성공사를 공공근로자들의 노력으로 함께 시행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이 성과로 2001년 국토공원화 사업 대통령상을 수상하였고 다른 지자체 강변 조성사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수성구청의 '사색 있는 금호강 산책로 사업'은 금호강 생태계에 '죽음의 쇠고리'를 덧씌우는 사색(死金+索) 사업이므로 즉각 중지하고, 바로 건너 강변에 있는 친환경 생태적 공법을 도입할 것을 긴급제안한다.안심습지는 금호강 생태계 유지의 허파다. 기존 동구 측 생태공원과 조수 보호구역, 안심습지 등을 잘 보전하여 금호강을 모범적인 생태공원으로 유지해 금호강 하류의 생태적 둔치 조성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금호강은 안심습지 유역까지 맑은 2급수가 유지되다가 경산 남천 합수부를 지나면서 4급수로 떨어져 아양교 지역을 지나간다. 경산지역 축사의 오·폐수 특히, 인 성분이 정화되지 않은 상태로 금호강과 합수되어 수질이 급격히 악화하는 것이 그 원인이다.여기에 다시 수성구 지역의 금호강 하천변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위는 금호강에 죽음의 쇠고리를 채우는 길이다. 수성구청장은 즉각 현재 방식의 고수부지 조성사업을 중단하기를 제안한다. 홍준표 신임 대구시장이 추진하는 금호강 르네상스 시대 개막을 위한 친수공간 개발프로젝트도 맑은 물이 흐르고 수생식물과 물고기 떼 그리고 백로가 어울려 무리 짓는 금호강이 금호강다운 생태계가 유지될 때 실현 가능할 것이다.임대윤 전 대구 동구청장임대윤 전 대구 동구청장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우크라이나의 김 시장
우크라이나의 남부 도시 미콜라이우는 이번 전쟁의 격전지 중 한 곳이다. 이 시의 시장은 비탈리 김(41)이라는 고려인 4세다. 그는 미사일 포격으로 찢길 대로 찢긴 이 도시를 사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혀 시민들이 크게 감동했다. 이 도시는 넉 달 전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아 시민들이 불안에 떨자 그는 매일 인스타그램으로 시민들을 다독였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담화는 러군에 대한 조롱과 위트가 섞여 있어 국민에게 용기와 위안을 주었다.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이 우크라 국민을 말살하려고 할 때 꼭 필요한 것은 강철 같은 의지입니다. 무기만으로는 전세를 뒤집을 수 없습니다. 의지가 필요합니다.' 지금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주목받는 항전의 대명사이며 차세대 우크라이나 지도자 물망에도 오른다. 지난 3월 말에는 시청사가 크루즈미사일 공격을 받아 38명이나 죽었으나 그는 간발의 차로 살아남았다.김 시장이 태어나서 자란 이 도시는 크리미아 반도에서 멀지 않고, 서쪽으로 조금만 나가면 오데사가 있다. 러시아는 흑해 연안을 차지하려고 끊임없이 이 도시를 두들겼다. 시장이 이끄는 군과 민도 죽을 각오로 러군의 오데사 진격을 막아 우크라이나 남해안 점령을 저지하고 있다. 희생도 컸다. 시민 반 이상이 피란을 갔다. 수도가 끊기고 남은 23만도 직장 없이 의식 문제를 대부분 구호단체에 의존한다. 그의 용기와 침착성은 "민주적으로 엄격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농구 코치였던 아버지는 그가 태권도수련으로 강인한 정신을 기르도록 가르쳤다. 아버지는 크리미아의 심페로폴 대학에서 아내를 만났지만 이 도시에 와 김 시장을 낳았다. 경북대 명예교수·시인경북대 명예교수·시인
[주말&여행] 경주 양남면 나아해변, 젖먹이 탈해왕 건져낸 전설 속 바다…하늘보다 더 새파란 물빛 눈이 부셔
해변은 커다란 활처럼 완만한 곡선이고, 그 절반 이상은 월성원전에 속해 있다. 그래서 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저 희끄무레한 회색 덩어리는 늘 눈꼬리에 걸린다. 원전은 지척이지만 어쩐지 환영 같다. 바닷가에 솔밭이 넓다. 솔밭은 원전의 남쪽까지 짙게 퍼져 있다. 마을과 인접한 솔밭 역시 울창하지만 들어설 수 있는 솔 그늘은 아주 작은 부분이다. 가느다란 줄로 경계 지어진 울창한 솔밭에 예약한 사람만이 사용 가능하다는 테이블들이 보기 좋게 놓여 있다. 도로가 휑한 솔밭에는 '백종원 클라쓰' 촬영지라는 안내판과 함께 당시의 집기들이 정물처럼 남아 있다. 이 정물들 사이는 거닐 수 있다. 이곳은 '나라의 큰 아이 태어난 곳'이라는 나아리(羅兒里)다. 바다가 깜짝 놀랄 정도로 파랗다.알에서 태어난 탈해왕 사연 담긴 곳조선 헌종 때 세운 유허비각도 자리철기에 능통·신라 태평성대 이룬 왕원전 세워지기 전 4개 자연마을 존재탈해왕 거둬들였단 수아마을만 남아나아해변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보면귀여운 청룡 등대 바다 지키며 우뚝활처럼 휘어진 해변에 원전이 지천희끄무레 회색 덩어리 눈꼬리에 걸려◆ 나아해변 옛날 신라의 동방에 용성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전한다. 용성국의 왕과 왕비가 자식을 얻기 위해 기도했는데 왕비가 임신한 지 7년 만에 알을 낳고 말았다. 일관과 신하들이 상서롭지 못한 징조라고 하자 용성국의 왕은 왕비가 낳은 알을 비단에 싸고 궤에 넣어 바다에 띄워 보냈다. 붉은 용의 보호를 받으며 바다를 떠돌던 궤는 먼저 금관국에 닿았지만 사람들은 반기지 않았다. '인연이 있는 곳에 가서 나라를 세우라.' 금관국 사람들은 기도를 드린 뒤 궤를 다시 바다로 띄워 보냈다. 마지막으로 닿은 곳이 신라의 동쪽 포구 아진포(阿珍浦)였다. 어느 날 아진포에 사는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는 노파가 포구에서 해초를 거두고 있다가 궤를 발견한다. 궤 주위에는 수많은 까치들이 울며 호위하고 있었다. 기이하게 여긴 노파가 궤를 열어보니 허리에 칼을 찬 사내아이와 보물이 있었다. 아진의선은 아이를 거둬 정성껏 길렀다. 그리고 까치 작(鵲)자에서 새 조(鳥)자를 날려 보내고 석(昔)자를 성으로 삼고, 궤를 열고 알을 깨치고 나왔다 하여 이름을 탈해(脫解)라 하였다 한다. 그 아이가 신라 4대 왕인 석탈해 왕이다. 탈해왕이 건져 올려진 아진포가 지금의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앞바다라고 한다. 아진포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이후 사라져 전설적인 지명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다 1985년경 나아리 주민들에 의해 나아천 하구의 홈바위 언덕에서 조선 헌종 때 세운 '석탈해왕탄강유허비각'이 발견됐다. 탈해왕의 사연이 새겨져 있는 비다. 현재 유허비각은 월성원전 남문 앞의 넓은 공원에 자리해 있다. 나아천은 현재의 나산천인 듯하다. 나산천은 봉길리 서쪽의 상라리에서 발원해 나아리 서쪽의 나산리를 지나고 나아리 솔밭 사이를 흘러 바다에 닿는다. 나아해변에서 물길은 잘 가늠되지 않는다. 알에서 태어나 무럭무럭 자란 아이는 왕이 되었고, 그는 재임 시절 철기를 최대한 활용해 태평성대를 구가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탈해왕은 철로 농기구를 만들어 농업을 진작하고 철로 병기를 만듦으로써 훗날 삼국통일을 이루는 힘의 바탕을 마련했다고 전해진다. 나아해변에는 '제철왕(製鐵王) 석탈해'를 소개하는 조형물들이 늘어서 있다.나아리에는 4개의 자연마을이 있었다. 그중 석탈해가 자란 언덕이라는 '장아(長阿)', 작은 고개와 보리밭이 있었다는 포구인 '모포(牟浦)', 소나무가 많았던 마을 '송하(松下)'는 월성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헐리었다. 그리고 신라 석탈해를 거두어들인 곳이라는 '수아(收兒)'만 남았다. 예전에는 '나아천 남쪽 나아리 당수 나무가 있는 지역'으로 구분되었지만 지금은 나아리에 사람의 자취가 있는 모든 땅이 '수아'다. 옛날 나아리 사람들은 대부분 물고기를 잡거나 벼농사를 했다고 한다. 더러는 소와 돼지를 키웠고 계절 따라 감이나 엄나무를 내다 팔며 생활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수아'에는 원전 건설 이후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리고 주민의 8할 이상이 원자력 관련 종사자이거나 상업에 종사한다. 2천년이 흘러도 이 땅은 여전히 먼 곳의 사람들을 거두어들이는 '수아'다.◆ 죽전마을 나아리 남쪽에 죽전(竹田)마을이 있다. 과거 마을 언덕배기에 대나무 밭이 무성했다고 해서 '대밭골', 즉 죽전이라 불렀다고 한다. 빼곡하던 대나무들은 6·25전쟁 때 북한군들에 의해 불타버렸고 이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죽전마을은 행정구역상 읍천리에 속해 있지만 나아해변의 모래사장이 죽전 포구에 닿아 있어 나아와 죽전은 하나의 마을로 느껴진다. 게다가 포구의 방파제도 북쪽을 향해 있어 걷는 내내 나아해변과 원전을 마주하게 된다. 방파제 벽에는 탈해왕과 아진포에 대한 그림들이 있다. 그래서 이곳을 아진포라 여기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방파제 끝에 서 있는 등대는 귀여운 청룡이다. 석탈해의 알이 담긴 궤가 바다를 떠돌 때 지켜주었다는 바로 그 용인가 생각했는데, 아니다. 죽전의 청룡은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겠다'고 유언한 문무대왕을 상징하는 것이라 한다. 청룡의 등 뒤로 원전이 정면으로 보인다. 기이하게도 나아해변에서보다 더 가깝게 느껴진다. 외항에는 여가 많다고 한다. 여는 물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 바위다. 바다에는 참전복, 소라, 해삼, 돌미역 등이 많아 수입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커다란 보릿돌도 있는데 옛날에는 그곳에서 소금을 구웠단다. 원전을 짓기 이전에는 정치망 어장이 성업이었고 그물을 건져 올리면 바다 전체가 멸치라고 할 만큼 풍어를 누렸다. 상어와 돔배기도 많이 잡혔다. 내항에 배들이 정박되어 있다. 물량장에는 이런저런 어구들이 자신들만의 규칙을 가지고 부려져 있다. 그 뒤로 바다를 향해 늘어선 집들이 보인다. 작은 마을이다. 한눈에 몹시 좋아지는 포구마을이다. 마을 언덕 위에 십자가가 보인다. 천주교 대구대교구에 속해 있는 양남성당으로 드라마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아담하고 깨끗하고 14처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다운 성당이다. 내항의 바다가 흔들린다. 해녀들이 물질을 한다. 그녀들과 가까운 바다에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섬처럼 쌓여 있다. 내항에 큰 암초가 있다는데 그 자리를 표시해 둔 것 같다. 들고나는 배들은 절대로 접근하지 않을 확실한 표식이다. 그녀들은 콘크리트조각들의 섬과 청룡등대 아래 테트라포트를 오가며 헤엄치고 있다. 무엇을 찾는 것일까. 무엇도 알지 못하는데, 평온함을 느낀다. 죽전의 모래밭이 노랗다. "몰러. 파랗던 풀이 그래 되더라고." 알지도 못하는데, 나는 노란 풀이 예뻤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경부고속도로 경주IC로 나가 직진한다. 배반네거리에서 우회전해 7번 국도를 타고 가다 감포, 불국사 방향으로 좌회전해 직진, 다시 감포 방향으로 우회전 해 4번 국도를 타고 간다. 토함산터널 지나 와읍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나가 대종천을 따라 가면 봉길리 문무대왕릉이 나타난다. 봉길리에서 봉길터널을 통과해 31번 국도를 따라가다 나산교차로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석탈해왕탄강유적지 지나 나아해변에 닿는다.죽전포구의 방파제는 북쪽을 향해 있어 걷는 내내 나아해변과 원전을 마주하게 된다. 방파제 벽에는 탈해왕과 아진포에 대한 그림들이 있다.나아해변에는 제철왕 석탈해를 소개하는 조형물들이 늘어서 있다. 탈해왕은 철기를 최대한 활용해 태평성대를 구가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인 양남성당은 드라마 '나를 사랑한 스파이'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2011년 설치된 죽전포구의 청룡 등대는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겠다'고 유언한 문무대왕을 상징한다.
[우도영의 삶과 도전 자동차디자인 .7] 자동차 디자인 프로세스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자동차 디자인의 근본 목적은 자동차의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에 있다. 미래에 사용될 멋있고 아름다운 차를 만드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조건이 충족된 미의 결정체를 창조하기는 절대 쉽지 않다. 수많은 요인과 고려되어야 할 그 과정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굉장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며, 생산까지는 몇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실제 자동차 회사에서는 어떻게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있는지 외장 디자인 중심으로 간략하게 그 과정을 소개해 보겠다." 디자이너만의 스토리 구성이 첫 단계…개인적 영감 자유롭게 스케치최종 아이디어 채택 후 3D 모델링…모델 4대 정도는 실제 크기로 준비마지막 CEO 리뷰 거쳐 한 모델 선택 후 최종 단계인 양산과정 진행엔지니어팀·마케팅팀과 양산에 어려운 부분 하나씩 풀어가면서 완성모든 자동차, 치열한 경쟁·많은 전문가들 협업으로 이루어진 결과물먼저 새로운 프로젝트가 처음 시작될 때 핵심적으로 고려되는 것은 그 자동차의 가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듯 하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히 설정돼야만 그다음 모든 일의 진행이 순조로워지기 때문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실질적인 아이디어를 전개하기 전에 미리 몇 년 후 소비자들의 생활 속에 어떠한 가치를 창출해 줄 수 있는지 미래의 삶을 그려 본다. 즉 자기만의 스토리 구성이 디자인 첫 단계라 할 수 있다. 특히 젊은 디자이너들은 이 과정에서 자유롭게 꿈꾸며 자신이 디자인한 자동차를 몇 년 후 도로 위에서 직접 볼 수 있을 거라는 흥분과 기대감 속에 스토리 구성을 전개해 나갈 수 있으므로 이 과정을 굉장히 좋아하기도 한다.그렇게 만들어진 스토리를 바탕으로 수집한 많은 자료와 취향에 따라 다양한 곳으로부터 얻은 개인적 영감들을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시작해서 다양하게 자기만의 디자인 세계를 전개해 나간다. 이 과정은 디자이너들의 창의력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이며 디자인 의도 및 콘셉트를 설명하는 이미지 보드, 초기아이디어 스케치 그리고 구체적으로 최종 디자인을 표현한 그림인 렌더링을 준비해 평가에 들어간다. 보통 이 과정에서는 한 회사의 모든 디자인 스튜디오가 참여하는데 스튜디오 간의 경쟁이 매우 심하며 자신의 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엄청난 열과 성의를 들인다. 많은 아이디어 스케치 중에 제일 핵심이 되는 새로운 콘셉트를 찾는 것이 리뷰의 주목적이 된다.전체 과정에서 보통은 여러 수십 장의 그림이 채택되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때에 따라, 특히 콘셉트 카(concept car)의 경우 수석 디자이너의 결정으로 한 장의 그림을 중심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경우도 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이 단계에서 디자이너가 꼭 지켜야 하는 한 가지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기초 도면인 자동차 사이드 뷰 패키지이다. 이것은 자동차를 구성하는 핵심 기본 요소로 자동차의 기본 사이즈를 결정짓기 때문이며, 또한 엔지니어 부서와 협업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산 차 프로젝트와 콘셉트 카 프로젝트는 준수해야 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개발 초기 단계에서 디자인 부서를 포함한 타 부서에도 가장 중요한 가이드 라인이 된다.그렇게 최종 리뷰를 거쳐 선택된 몇 가지의 아이디어는 다음 단계인 3D 모델링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지금까지는 디자이너만의 창의력으로 스케치와 렌더링이 완성되었다면 다음 단계부터는 팀이 구성돼 3D 모델링이 진행된다. 팀 구성은 디자이너와 모델러 그리고 엔지니어로 구성되며, 그 안에서 디자이너는 아이디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는 것과 동시에 팀의 리더 역할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디자인 방향으로 이끌어 진행해 나간다. 이 과정은 예전에는 공업용 점토인 클레이를 이용해서 직접 만들어 가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으나 요즘은 3D 모델링 전문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컴퓨터로 가상 모델을 만들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기도 하며, 두 방법을 적절히 효율적으로 활용해 개발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있다. 회사마다 편차가 있으나 먼저 여러 디자인의 4분의 1 스케일 모델들을 만든 후 중간 리뷰를 통해 다시 수정을 거쳐 70% 정도의 양산 조건이 갖추어진 모델 4대 정도만을 뽑아 실물 차 크기의 모델을 준비하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모델은 마지막 CEO 리뷰를 거쳐 최종적으로 한 모델을 선택하게 되고 양산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여기까지의 단계가 디자인 모델로서 의미라면 다음 단계는 선택된 최종 모델 양산을 위한 과정으로 넘어간다. 남아있는 여러 가지 디자인적 요소와 양산에 어려운 부분들을 엔지니어팀과 협업하에 하나하나 풀어나가면서 생산 가능성에 맞추어 그 완성도를 높여 나가는 과정이다. 기본적으로는 디자이너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지만 가끔 마케팅과 기획팀들의 의견도 수렴되어 타깃 방향이 조정되기도 하고 양산 불가능한 부분들은 엔지니어팀의 조언을 얻어 해결 방법을 함께 찾아가며 수정해 나가는 일이 주된 내용이다.이때 기본적인 엔지니어 지식을 가진 경험 많은 디자이너들이 일을 진행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며 다양한 부서와 협업이 무엇보다 필수적인 과정이다. 또 이 과정에서 램프류와 각종 디테일한 파트들의 디자인 개발도 동시에 진행되며 한층 더 세부적인 완성도를 높여간다. 수많은 인 하우스 리뷰와 초대된 타깃 유저들의 의견을 듣는 카 클리닉 이벤트 등을 통해 조율과정을 거쳐 완성된 최종 디자인은 다시 여러 차례 테스트 과정과 퀄리티 체크를 거쳐 상품화될 수 있도록 최종 점검 후 대중에게 소개되는 것이다. 회사마다 많은 차이가 있으나 디자인 과정만 놓고 본다면 대략 일 년 반 정도 소요되며 최종 완성되어 시판까지는 총 3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보면 된다. 이렇듯 하나의 자동차가 디자인되어 만들어지기까지 혼자서 작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팀으로 구성된 디자이너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나가며 동시에 여러 부서와 수많은 사람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모든 자동차는 그 어떤 제품보다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다.<중국 BAIC 익스테리어 디자인 디렉터>마즈다3 (C-segment) 2010년. 디자인 전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초기 아이디어 제작단계에 참여하여 디자인 콘셉트를 제공한 작품이다. 마즈다 모델 중 가장 대중적인 모델로서 특히 미국시장에서 대단히 인기가 좋았다. 해치백과 세단 모델이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제작돼 마즈다의 상징성과도 같은 스포티함의 추구를 기본 디자인 콘셉트로 삼고 있다. KODO 디자인의 개념을 그대로 가져와 패밀리룩을 완성한 것에 의미가 있다.중국 (BAIC 익스테리어 디자인 디렉터)
[사설] 대구 투표율 43%…풀뿌리 민주주의 근간 훼손 우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구의 투표율이 43.2%로 집계됐다. 가장 투표율이 낮았던 제3회 지방선거 때의 41.4% 이후 20년 만에 최저치다. 17개 시·도 가운데 광주에 이어 최저 투표율 2위다. 대구 유권자 약 204만명 중 88만명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후보가 당선 안정권인 50%를 득표했다고 할 때 유권자의 21.5%, 전체 시민의 18.5%의 지지를 받은 꼴이다. 이래서야 민의를 제대로 반영했다고 볼 수 있겠는가.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에 시민 참여가 이토록 저조하다면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 훼손이란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대구의 투표율이 특히 낮은 데는 여러 원인이 동시에 작용했다. 우선 무투표 당선인이 30명에 이르다 보니 이들 지지자가 꼭 투표장으로 갈 이유가 사라졌다. 맞설 상대 후보 지지자의 선택권도 원천 박탈됐다. 팽팽한 승부가 펼쳐진 대선을 치른 지 얼마 안 돼 유권자들의 피로도가 높아졌고 승부에 대한 절박성이 떨어진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존재감이 미미한 광역 및 기초의원 후보에 대한 무관심도 작용했다.무엇보다 예측 가능한 승부가 펼쳐진 점이 투표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다. '국민의힘 공천=당선'이란 선거 구도를 못 깬 때문이다. 따라서 여당에 대응할 중량감 있는 야당 후보도 등장하지 않았다. 시민의 뜻을 외면한 공천과 네거티브 선거에 실망한 젊은 유권자 상당수가 투표장을 외면했다.'투표하지 않은 자는 불평할 권리도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투표율 제고를 위한 제도 개선이 녹록지 않다. 투표시간 연장이 거론되지만, 이 또한 확실한 방안은 아니다. 결국 정치에 대한 국민신뢰 회복이 투표율 향상의 지름길이다.
[김상봉의 신파와 미학 사이] 드라마와 역사
반전이 없는 드라마는 재미없다. 물론 반전이 재미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깨달음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깨달음이 단순한 발견이 아니라 윤리적 자각인 한에서, 드라마는 우리를 도덕적으로 도야하고 훈육하는 학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의 도덕적 역할이 이런 일은 해야 하고 저런 일은 하면 안 된다는 명령과 같은 것이라면, 그것은 드라마로서도 실패한 것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 도야의 관점에서도 도움이 못 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드라마는 재미있어야 한다. 도덕적 명령은 추상적 법칙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드라마가 주는 깨달음은 이야기를 통해 주어진다. 이야기는 사건의 묘사와 재현이다. 그래서 훌륭한 드라마는 다른 무엇보다 재현되는 사건의 특별함을 통해 우리에게 재미도 주고 교훈도 준다. 물론 드라마가 재현하는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실이라면, 그것은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드라마는 사실을 재현하되 일어나지 않았던 사실을 재현한다. 그런 한에서 드라마의 창작은 상상력의 일이다. 하지만 인간은 무엇을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경험한 것을 가지고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상상한다. 그런 의미에서 상상력의 범위는 경험의 범위에 연동되어 있다. 그러나 경험이 언제나 개인의 직접적 경험일 필요는 없다. 아니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기억도 동경도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나의 기억과 동경은 언제나 너의 기억 및 동경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상상력의 토양이다. 왜냐하면 역사는 너와 나의 공유된 기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공감의 토대이기도 하다. 만약 완전히 다른 역사를 산 사람들이 있다면, 각자의 역사에 뿌리박고 있는 드라마는 서로에게 이해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의 보편적 공감 가능성은 드라마가 뿌리박고 있는 역사의 보편성과 무관하지 않다. 역사가 없는 곳에는 예술도 없다. 오직 비옥한 역사의 토양으로부터 아름다운 예술의 숲도 자라나는 것이다. 하지만 반전이 역사와 무슨 상관일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내 경우, '오징어게임'에서 기억나는 반전의 장면들 가운데 하나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사람들이 게임을 계속할지 말지를 두고 투표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 예상치 못한 반전에 너무도 놀랐지만, 동시에 이것은 작가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상상할 수 있는 반전이라 생각하고 깊이 공감했다. 게임을 하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살벌한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겁먹지만, 그 가운데서도 누군가는 주눅 들지 않고 나서 따지기 시작하고, 그를 따라 사람들이 총을 든 사람들에게 집단으로 항의하고, 결국 투표를 통해 자기들의 의사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상황은 아무나 떠올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반전이다. 하지만 작가가 그런 상황을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국가 폭력 앞에서 누군가 앞에 나가 항의하면, 한 사람의 항의가 만 사람의 함성이 되고, 끝내 투표를 통해 시민의 의지를 스스로 표현하게 된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룬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역사를 살아온 예술가가 그런 기막힌 반전을 상상하는 것도, 그리고 그런 역사를 살아본 적이 없는 예술가가 그런 상황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도 모두 다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을 사는 한국의 예술가들은 행복하다. 그들이 마음먹기만 한다면 그들은 마르지 않는 역사의 우물에서 남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온갖 놀라운 장면들을 길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가 예술적 상상력의 비옥한 토양이 되고 마르지 않는 샘이 되는 까닭은 단지 그 역사가 남들이 갖지 못한 고유성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는 세계사의 비극적 진리가 드러나는 장소이다. 이는 백 마디 설명 없이도 '미스터 션샤인' 한 장면이 잘 보여준다. 스물한 번째 에피소드에서 일본군 대좌 모리 타카시는 미군 대위 유진 초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제국주의자잖아. 넌 스페인과 전쟁을 했고, 미국은 필리핀을 가졌지. 일본도 일러전쟁을 승리하고, 조선을 가지려는 것뿐이야. 필연적으로 우등한 국가는 열등한 국가를 실망시켜. 미국은 필리핀을, 영국은 인도를, 일본은 조선을 실망시키지." 그뿐이겠는가. 지금도 중국은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실망시킨다. 그러니 지금까지 역사는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그렇게 제국주의 국가들이 폭력으로 약한 민족을 침략해 온 역사였다.그런 역사 속에서 한국은 특별한 자리에 있다. 왜냐하면 한국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제국주의적 침략의 교차로에서 갈가리 찢기면서 그 제국주의적 침략에 저항해 왔기 때문이다.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우리가 선 자리를 이런 의미에서 '세계사의 하수구'라고 불렀다. 그 하수구를 정화하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을 치유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정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에 한국사가 지닌 세계사적 의미도 있다. '미스터 션샤인'은 한국의 역사가 지닌 이런 세계사적 보편성이 드라마를 위해 얼마나 비옥한 토양이 되는지를 모자람 없이 보여준다. 그 드라마는 남의 역사가 아니라 자기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만으로 세계사의 비극적 본질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그 비극적 역사를 넘어갈 수 있는 전망을 열어준다. 그것은 침략과 저항의 역사를 대비시키면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역사의 법정으로 불러내지만, 그 법정의 판관은 법률이나 추상적 정의가 아니라 아름다움의 거울이다. 폭력과 권모술수가 아름답기는 어려우나, 사랑과 희생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미스터 션샤인'은 구한말의 의병 전쟁을 단지 가해자의 폭력과 피해자의 대항 폭력의 대립이 아니라, 폭력과 사랑의 대립으로 그려낸다. 이로써 그것은 역사의 숨은 본질을 열어 보인다. 왜 아니겠는가. 동학혁명도, 3·1운동도, 5·18도 폭력과 사랑의 대립이었던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폭력이 지배하는 세계의 한복판에서 다만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저항하고 희생하는, 그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다만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향해 나아가도록 고무한다. 국적과 신분을 초월해 그들이 서로 사랑했던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전남대 철학과 교수전남대 철학과 교수
[오늘의 경기] 프로야구= KIA-삼성(대구)
프로야구= KIA-삼성(대구) kt-NC(창원) 롯데-SSG(인천) 두산-한화(대전) 키움-LG(잠실·이상 18시30분)골프= 코리안투어 KB금융 리브챔피언십(블랙스톤 이천GC)프로탁구= PO 1차전 남자부 상무-미래에셋증권(14시) 여자부 삼성생명-대한항공(18시·이상 광교씨름체육관)여자축구= 수원FC-세종스포츠토토(16시·수원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 창녕WFC-화천KSPO(창녕스포츠파크) 인천현대제철-서울시청(인천 남동아시아드) 경주한수원-보은상무(경주 황성3구장·이상 18시)육상= 전국실업경기시리즈(8시·익산 종합운동장)테니스= 제58회 바볼랏 전국남녀중고등학교대회(양구테니스파크)볼링= 제3회 900글로벌 우먼스 챔피언십 결승(13시50분·안산 더킹볼 볼링경기장)
[주말&여행] 경남 통영 서피랑, 바람이 천 개의 골목 훑고 오른 언덕…문인 향기 함께 흐르네
서피랑은 수많은 골목의 꼭대기. 골목골목 천 개의 모서리를 후려치며 날아오른 바람이 '퓌-' 휘파람 소리를 내며 흩어지는 언덕이다. 마루에 오르면 강구안을 중심으로 한 통영 전체가 펼쳐진다. 그리고 장군자리에 앉은 통제영 본부 '세병관'이 보인다. 세병관을 정점으로 통영성이 있었다. 그 동쪽에는 동피랑 동포루가, 북쪽에는 여황산 북포루가 번듯하다. 이곳은 세병관 서쪽 벼랑이라 서피랑이다. 서문이 있었고 서포루가 있었다. 성 끄트머리라 '성날'이라 불리기도 했고 서산(西山) 혹은 서문고개라고도 했다.수군통제영 본부건물 세병관 중심서쪽 벼랑은 서피랑 동쪽은 동피랑가장 가파른 벼락당은 음악정원 조성서포루엔 '돌아와요 충무항에' 노래비박경리·김춘수·백석 작품 배경되기도◆ 99계단과 뚝지먼당길뚝지먼당길 따라 서피랑을 오른다. 옛날 서문 안에 둑사(纛祠)가 있었다고 한다. 사투리로 '뚝사'다. '뚝'은 깃발을 의미하고 '뚝사'는 삼도수군통제사의 깃발 중 최고인 '원수 기'를 모셨던 사당이었다. 먼당은 산마루라는 뜻이니 '뚝지먼당길'은 '뚝사로 가는 멀고 힘든 길'과 같다. 뚝사가 있던 먼당은 일제강점기 공설운동장이 되었다가 지역 일대에 물을 공급하는 배수지가 되었다. 그 즈음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서문고개 근처에서 태어났고 인근 명정골에서 살았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충렬사가 있는 명정골은 우물이 있어 생긴 이름이다.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과 김춘수의 시 '명정리(明井里)'가 이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 우물 앞에서 시인 백석은 통영 처녀 란(蘭)을 몇날 며칠 기다렸다지. 이제는 근대문화유산이 된 배수지의 높은 담벼락에 박경리의 문장들이 흐른다.서피랑 마루에 선 서포루가 지척으로 보이지만 부러 언덕의 목덜미를 타고 서쪽으로 에두른다. 거기에는 먼당으로 치고 오르는 높은 계단이 있다. 서피랑의 랜드마크가 된 99계단이다. 지금은 알록달록 단장되어 있는 이 계단을 옛날 동네 아이들은 '공포의 99계단'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대는 속칭 '야마골'이다. 광복이 되고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인근에는 상이군인을 치료하는 임시병원이 들어섰고 이곳에는 술집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 술집이 매춘에 나서면서 야마골은 집창촌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수산업이 호황이던 1980년대까지 야마골은 집집마다 붉은 알전구를 밝히고 뱃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그러다 뱃일이 차츰 쇠하면서 1990년대 후반 집창촌은 자연스레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민조차 찾기를 꺼려하는 소외된 동네였다. ◆ 음악정원이 된 벼락당99계단 옆에는 서피랑에서 가장 가파른 벼락당이 있다. 언덕 비탈면이 거의 직각인 벼락당에서 옛날 아이들은 연을 날렸다. 그러다 1999년 8월의 태풍에 벼락당이 무너져 내렸고 이듬해인 2000년부터 3년에 걸쳐 정비되었다. 2007년 동피랑이 철거마을에서 벽화마을로 거듭날 때까지, 서피랑은 변신을 위한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변화는 2013년부터다. 당시 통영보건소에서 '지역사회 건강조사'를 실시했는데 서피랑 언덕을 끼고 있는 명정동이 가장 낙후되어 있었고 그로인해 소외감과 자살충동을 많이 느끼는 지역으로 조사됐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마을주민들은 '건강위원회'를 발족하고 '웃음치료교실'을 열었다. '금연거리'와 '인사하는 거리'를 지정하고, 벽화를 그리고, 거리 곳곳에 예술 작품을 설치했다.벼락당에는 꽃을 심었다. 이어 2015년에는 피아노 계단을 조성하고 지휘석과 관람석을 만들었다. 벼락당은 음악정원이 되었다. 황소 형상을 한 200살 넘은 후박나무가 음악정원 관람석에 넓은 그늘을 드리우며 위용 있게 서 있다. 피아노 계단 옆에는 흰 사슴 한 마리와 꽃사슴 한 마리가 환영처럼 어슬렁거린다. 벼락당 아래 마을에는 통영출신 작곡가 윤이상의 초등학교 등굣길을 활용한 '윤이상 학교 가는 길'이 조성돼 있다.◆ 서피랑 공원과 서포루서피랑 정상은 공원이다. 공원을 만들면서 집창촌이 들어서있던 언덕 집들을 모두 철거했다. 대숲처럼 빼곡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집들과 아주 작은 구멍가게와 만화방, 연을 만들어 팔던 곳이며 아교며 쌀풀을 팔던 곳, 그리고 탁자 몇 개를 두었던 술집도 사라졌다. 대신 도로가 다듬어지고 잔디가 깔리고 꽃과 나무가 식재되었으며 공원 중앙에는 서포루가 복원되었다.서포루 근처에 '돌아와요 충무항에'를 기리는 노래비가 미륵산과 통영항 바다를 향해 서있다. 통영 출신의 가수 김성술이 작사하고 부산 출신의 피아노 연주가 황선우가 작곡한 노래다. 이 노래는 1970년 음반으로 발표되었으나 그 이듬해 김성술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이제 이 노래는 우리에게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더 잘 알려져 있다.통영이 내려다보인다. 전부 보인다. 남쪽으로는 통영항 여객선터미널의 지붕이 보이고 바다 건너 통영의 주산인 미륵산과 미륵산 내 루지 타는 곳, 그 아래 흉물이 된 봉평동 조선소 타워 크레인들이 보인다. 미륵산 케이블카가 보이고, 통영대교가 보이고, 또 멀리 도남동의 호텔과 리조트와 음악당과 요트장도 보인다. 그 앞의 주먹만 한 섬은 공주섬이다.해는 빠르게 진다. 하나 둘 불 켜진 중앙시장에서는 연신 맛 나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어둑해진 동피랑에는 지금도 가로등 아래 이방인들이 걷는다. 저기 일몰의 여운에 잠긴 명정골에는 박경리가 태어나고 란이 살았던 깊은 골목이 보인다. 또 그 옆으로는 '옛 장군님'을 모신 충렬사와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란을 기다리는 젊은 시인이 보인다. 강구안에는 고깃배들과 거북선이 정박해 있고 방금 오징어잡이 배 하나가 집어등을 켰다. 강구안 건너 남망산에 육중하게 앉아있던 시민문화회관이 짙은 속눈썹으로 눈감는다. 박경리는 밤배가 남망산 모롱이를 돌아갔다고 했는데,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온 백석은 저 모롱이를 돌아 온 것일까. 생각만 해도 저릿한 통영.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원방향으로 가다 신안 분기점에서 10번 남해고속도로 함안, 진주방향, 진주 분기점에서 35번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고 통영으로 간다. 통영IC에서 내려 통영대교, 한려해상국립공원 통영지구 방면으로 우회전, 미늘삼거리에서 시청방향으로 좌회전해 통영해안로를 타고 가면 강구안에 닿는다. 강구안 서쪽 언덕이 서피랑이다. 사방에 오르는 길이 있으나 99계단 옆 '명정동 공영 주차장'이나 '서피랑 공원 주차장'이 편하다.서피랑은 '세병관 서쪽 벼랑'을 의미하며 통영성 서문이 있던 곳이다. 서피랑에 오르면 강구안 일대가 훤히 펼쳐진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사진 찍기 좋은 명소다.벼락당의 피아노 계단과 200살 넘은 후박나무. 서피랑에서 가장 가파른 벼락당은 음악이 있는 정원으로 변모했다.미륵산과 통영항 바다를 향해 서있는 '돌아와요 충무항에' 노래비. 통영 출신 가수 김성술의 이 노래는 이제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더 잘 알려져 있다.뚝지먼당길 따라 서피랑을 오른다. 옛날 둑사가 있던 자리에는 일제강점기 배수지가 들어섰고 이제 근대문화유산이 된 배수지의 높은 담벼락에 박경리의 문장들이 흐른다.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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