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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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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전북 임실 옥정호 붕어섬, 수몰의 기억 품었구나…처연히 아름다운 붉은 흙, 푸른 풀밭
종일 비라는 예보가 있었건만, 큰 산을 지날 때에만 소리 없이 앞 유리창이 부예질 뿐이다. 비가 좀 와야 할 텐데, 물안개는 단념해야겠다. 옥정호는 호수 같지 않다. 댐으로 생긴 호수지만 그저 너른 강 같다. 가물어서가 아니라 원래 지형이 그러하다. 호수를 오른쪽에 끼고 달리면 물길 너머 산자락이 손에 닿을 듯 가깝다. 지난 꽃 시절 이곳도 대단했겠다. 하늘을 뒤덮은 벚나무 가지가 한없이 이어진다. 그 사이 여러 가문의 비석들을 지난다. 전주이씨, 전주최씨, 천안전씨 등 가문의 세거지와 묘지를 알리는 비석들이다. 모두 댐 건설로 물에 잠긴 마을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국사봉 아래 관광버스 몇 대가 서 있는 주차장에 잠시 멈춘다. 멀리 강 같은 옥정호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보인다. 다리는 붕어섬에 닿아 있다. 붕어섬 가운데가 붉다.섬진강 상류 옥처럼 맑았다던 호수원래 지형 때문에 너른 강처럼 보여댐 세워지며 모두 18개 마을 사라져섬으로 변한 산등성이 붕어 닮은꼴뱃길 대신하는 출렁다리 올해 개장◆옥정호 요산공원옥정호는 섬진강 상류에 해당된다. 호수의 8할이 임실 운암면에 속해 있는데 예부터 이 지역의 섬진강을 운암강(雲巖江)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처음 댐이 건설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이다. 호남평야의 농사를 위해 운암댐을 짓고 호수를 운암호 또는 섬진호라 불렀다. 이후 1965년 운암댐 하류 쪽에 국내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을 완공했다. 수위가 더 높아졌고 호수는 더 넓어졌으며 운암댐은 물에 잠겼다. 운암면의 가옥 300여 호와 경지면적 70%가 수몰됐다. 대개 댐과 그로 형성된 호수는 이름이 같기 마련인데 섬진강댐과 옥정호는 다르다. 섬진강댐의 근처에 옥정리(玉井里)가 있다. 조선 중기 한 스님이 이곳을 지나다 옥처럼 맑은 호수가 들어설 것이라 해서 마을 이름을 옥정리라 했다 한다. 이 전설 때문에 운암호는 옥정호가 되었다. 그 스님 참 신통하다. 도롯가에 노란 비옷을 입은 안내요원들이 손짓을 한다. 비는 오지 않는다. 출렁다리 입구 매표소를 중심으로 식당 몇 개와 전망스탠드, 관리 사무소 등이 들어서 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호수로 가늘게 이어지는 벼랑의 땅이 꽃에 뒤덮여 있다. 꽃잔디와 튤립, 영산홍 등이 무섭도록 자신의 색을 드러내는 꽃밭을 가로질러 간다. 꽃들은 한껏 물오른 모습이고 축축한 흙 내음이 짙다. 벼랑 가 높직한 자리에 양요정이라는 조그마한 정자가 있다. 조선 선조 때 인물인 최응숙이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낙향해 지은 정자다. 양요정은 맹자의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智者樂水)'에서 왔다. 아래 강가에 있었던 것을 수몰되기 전 옮겼다고 한다. 지금도 이리 멋있는데 예전에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이곳은 정자 이름을 따 '요산공원'이라 불린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 9년간 꾸몄다고 한다. 땅 끝 가장 고지에는 망향탑이 서 있다. '1만5천여 실향민들의 아픔과 애환을 달래고, 운암의 영원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하며' 탑을 세운다고 새겨져 있다. 잿마을, 도마터, 어리골, 버들골, 학산들, 노리목재, 뱃마당, 사랑골 등 18개 마을 이름과 수몰 세대주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댐이 완공되고 43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수몰 세대주 명단을 기록하고 마을 이름을 하나씩 호명했다고 한다. 그 이름들이 정말 너무나 빼곡해서 그만, 목이 콱 막힌다. 주변으로 잘 관리된 무덤 몇 기가 봉긋하다. 망향탑 뒤편으로 물가를 따라 데크 산책로가 놓여 있다. 차르르 물소리, 꼬륵꼬륵 물고기 소리 들린다. 산책로 따라 유채꽃이 만발했고 몇 그루 박태기나무의 강렬한 분홍 꽃이 가지를 꽉 붙잡은 여린 모습으로 피어나 있다. 데크의 끝에서 붕어섬으로 가는 출렁다리에 오른다. ◆붕어섬 생태공원"가라! 가라!" 출렁다리 가운데에서 한 사내의 커다란 음성에 우뚝 선다. 처음 들어보는 소리다. 사냥꾼 우두머리의 외침 같고 장군의 호령 같다. "저기저기, 고라니다. 강을 건너네. 간다, 간다. 가라! 가라! 갔다!" 사내의 외침에 사람들이 일제히 서서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너무 놀라서인가. 나에게는 고라니가 보이지 않는다. 물줄기를 가로지르는 하얀 포말의 선만이 보일 뿐이다. 수위가 낮다. 붉은 흙과 푸른 풀밭이 드러나 처연히 아름답다. 붕어섬의 원래 이름은 '외앗날'이다. '날'은 산등성이를 가리킨다. '외앗'은 자두의 옛말인 '오얏'이 전라도 방언으로 발음된 것이라 한다. 자두나무가 많았나? 외앗날 마을은 옥정호에 잠기고 산등성이만 남아 섬이 되었다. 그리고 국사봉에서 바라보는 섬의 모양이 붕어를 닮았다 하여 붕어섬이 되었다. 섬의 남쪽 끝에 바위들이 줄지어 있다. 독재바위다. 예전에는 저곳을 독재라고 불렀다. 독은 돌의 지역 방언이다. 호수가 되기 전 독재가 돌고개였다는 뜻이다. 외앗날이 섬처럼 변하자 마을 사람들은 독재의 바위를 배가 다닐 수 있을 만큼 깨어냈다. 배는 호수 속에서 옛날의 고개를 넘나들게 되었다. 오늘 붕어섬은 섬이 아니고 독재바위는 독재다. 붕어섬은 수십 년간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요산공원과 붕어섬을 연결하는 출렁다리는 지난해 10월 완공되었고 올해 개장했다. 총길이는 420m, 폭은 1.5m다. 주탑의 높이는 80m로 붕어를 형상화했다. 붕어섬은 이제 생태공원이다. 고저가 다채로운 대지에 작약원, 수국원, 억새길, 단풍길, 배롱길, 메타세쿼이아길, 참나무길, 신나무 숲, 수변 산책길, 숲속 놀이터, 숲속 도서관, 광장, 쉼터, 정자, 전망대, 카페, 나루터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2017년까지 2가구 주민이 농사짓고 살았다고 한다. 생활의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지만 저 꽃밭과 저 물가가 삶의 터전이었을 것이다. 붕어섬 가운데의 붉은 빛은 '붕어섬정원'을 가득 메운 영산홍이었다. 영산홍 속에서 국사봉을 마주한다. 숲속도서관의 키 큰 소나무 아래 빨간 우체통이 산뜻하다. 소나무 사이로 국사봉이 보인다. 외앗날 전망대에서 국사봉을 올려다본다. 국사봉전망대 주차장의 정자도 보인다. 섬의 이곳저곳에서 국사봉이 보인다. 이른 아침 옥정호의 물안개를 찾아 국사봉에 오르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신비롭게도 옥정호의 물안개는 붕어섬 주변에서부터 시작되고 또 붕어섬에서부터 걷힌단다. 그리고 아침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붕어섬은 황금빛으로 변한다고 한다. 오늘 아침 붕어섬은 아주 잠시 황금빛으로 빛났다고 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Tip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순창IC에서 내린다. 27번 국도 전주방향으로 가다 운암대교 건너 우회전해 749번 지방도 국사봉로를 타고 가면 된다. 국사정이 있는 국사봉전망대 주차장을 지나 조금 더 가다 옥정호 출렁다리 방향 입석1길로 빠져나가면 된다. 길 따라 갓길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고 주차비는 무료다. 출렁다리 입구 왼편 망향정과 양요정 일대가 요산공원이다. 공원을 둘러보는 것은 무료다. 붕어섬으로 가는 출렁다리 입장료는 성인 3천원, 학생 1천원이다. 매주 월요일 휴장하며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요산공원이 꽃에 뒤덮여 있다. 벼랑의 고지에 망향탑이 서 있고 왼쪽 아래로 양요정이 조그맣게 보인다. 가뭄으로 드러난 붉은 흙과 푸른 풀밭이 처연히 아름답다.요산공원은 2009년부터 2017년까지 9년간 꾸몄다고 한다. 꽃잔디와 튤립이 어우러진 꽃밭 너머로 출렁다리가 보인다.섬의 남쪽 끝에 독재바위가 줄지어 있다. 외앗날이 섬이 되자 독재의 바위를 깨어내 배가 다닐 수 있도록 했다.붕어섬은 이제 생태공원이다. 고저가 다채로운 대지에 작약원, 억새길, 단풍길, 숲속 놀이터, 정자, 카페 등이 조성되어 있다.
[주말&여행] 경북 경산 서상길청년문화마을, 생활의 달인들은 떠나고…그리움 조용히 자리잡았네
그래, 그랬지. 이 길을 따라 청도로 갔었지. 옛 국도 25호 서상길. 길 이름은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이 길에 대한 기억은 도로명 주소가 생기기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로 도로 양쪽으로 일, 이 층 규모의 조막만 한 건물들이 따르르 늘어서 있었고 의상실, 요릿집, 금은방, 인쇄소, 수족관 등이 재야의 고수 분위기를 풍기며 조용히 자리해 있었다. 적산가옥도 더러 보였다. 많은 차가 오갔고 자주 서다 가다를 반복했으며 따로 인도가 없음에도 어깨를 빗기며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일 년에 한 번 이 길을 지난 것이 20여 년, 이후 2013년 국도 25호선이 경안로로 이전한 뒤로는 거의 잊고 있던 게 맞다. 수년 전 경산시장에 들렀을 때도 아주 대단한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단지 재야의 고수들이 많이 떠났구나 싶은 쓸쓸한 예감 정도랄까. 경산읍성 서문 밖 가장 번화했던 길市 승격 후 관공서 떠나가 점차 침체오래된 주택-소박한 상가 오밀조밀청년문화마을, 도시재생 마중물 사업국내 첫 '이발 테마' 전시관도 들어서젊음·향수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으로◆중앙이용원과 경산이발테마관요양병원, 경산시장, 장례식장, 청년회의소, 모텔들, 경산문화원, 여성회관 등 굵직굵직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서상길을 지나 장산로 너머로 다시 이어지는 서상길에 든다. 오른쪽으로 중앙이용원이 보인다. 중앙이용원은 1956년에 문을 열고 영업하다가 2014년 문을 닫았다. 창 너머는 깜깜하나 간판은 말쑥하다. 연립한 박스형 건물에 '경산이발테마관'이라 적혀 있다. 이곳은 경산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이 함께 기획하고 조성한 자료보존 체험형 전시관이자 이발을 테마로 한 최초의 전시관이다. 말쑥한 간판도 중앙이용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내걸었던 간판 그대로다. 테마관은 이발소 분위기의 작은 공간이다. 빙글빙글 삼색등이 돌고 으레 이발소에 한두 점씩 걸려 있게 마련인 '이발소 그림'들이 웃음을 자아낸다. 거울이 있고 가발을 써 볼 수 있는 이발소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각종 이발 도구와 신문 기사, 영상 자료가 이발의 역사와 변화상을 소개한다. 특히 1895년 단발령 이후 등장한 이용업의 역사와 1970년대 장발 단속을 비롯한 풍속도 엿볼 수 있다. 자료 가운데에 '이용 요금표'가 있다. 1966년 이발 요금은 70원, 이 요금은 당시 자장면 두 그릇 가격이었다. 이발사협회에 소속된 이발사 세 분의 인터뷰도 시청할 수 있다. "예전에는 손님 한 명에 대여섯 명의 종업원이 붙어 서비스를 했으니, 말 그대로 왕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을 거예요."(최상호 이발사)중앙이용원은 테마관과 연결되어 있다. 껌껌하다. 이발 중인 사람 모형은 유리벽으로 가둬 두었다. 정말 유물이 된 풍경이다. 이발 의자와 이발 가위, 이용업 영업 신고증, 이발 가격표 등 자료와 비품은 중앙이용원이 폐업할 당시의 것들이다. 흰색 각타일로 짜인 세면대와 펌프, 머리를 감을 때 쓰던 물뿌리개, 차례를 기다리며 놀던 장기판, 괘종시계, 물품 보관함 등이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옛날 중앙이용원 내외부의 사진도 볼 수 있는데 지금과 다른 것은 사람뿐이다. 동네마다 쉬이 볼 수 있던 이발소는 여러 해를 지나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가 이루어지고 미용실 수가 증가하는 등 시대에 부침하다 서서히 사라졌다. 내가 사는 동네의 명동이용소가 생각난다. 어르신은 멈춤에 가까운 슬로로 걸으시지만 지금도 매일 문을 열고 닫으신다. ◆경산의 원도심 서상동에 청년문화마을서상동(西上洞)은 경산읍성의 서문 밖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서문은 지금의 경산문화원으로 나가는 길목에 있었다고 한다. 서상길은 남천과 나란히 흐르며 마을을 가로지르는데 고려 시대부터 대구와 청도를 잇는 주요 도로였고 1905년 경부선 철도가 개설되면서 경산의 행정과 문화,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 길에 경산읍사무소, 경찰서, 등기소, 보건소, 농촌지도소, 우체국, 시장관사, 도서관 등이 들어서 있었고 오일장이 열렸다. 약 700m에 이르는 서상길 포장도로가 경산 최초의 아스팔트 길이었다니 그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경산에서 가장 번화했던 서상길은 1989년 경산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대부분의 관공서가 이전하고 경안로가 생기면서 점차 침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 중앙이용소에서 남쪽 경안로 합류 지점까지 서상길 일대를 '서상길청년문화마을'이라 한다. 오래된 주택과 소박한 상가들이 오밀조밀 머리를 맞대고 있고 인도가 있는 길은 깨끗하다. 서상길은 2018 도시재생뉴딜사업지구로 선정되어 근래 몇 년간 변화를 맞았다. 중앙이용원과 경산이발테마관은 서상동 골목의 기억을 보존하고 젊음과 향수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도시재생의 마중물 사업이었다. 청년창업플랫폼인 '코웍스페이스', 마을부엌, 어울림센터, 마을관리소 등이 생겼다. 이곳저곳에서 쌈지공원을 만난다. 우진솜공장은 오래된 가게라 한다. 양조장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떡 철공소방앗간'이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은 일본인이 운영하던 철공소를 매입해 방앗간으로 개조한 적산가옥이다. 지금은 서상상회라는 새로운 간판이 함께한다. 낡은 자전거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남부자전거'는 45년 이상 2대째 자전거 수리를 해 오고 있다는데 오늘은 셔터가 내려져 있다. 입구에 겹벚꽃 한 그루가 휘날리는 '종가집'은 서상길에서 소문난 맛집이다. 이 집은 1920년에 지어진 고택으로 약 25년 전에 식당으로 변모했다. 마당에는 우물이 있고 100년 이상 되었다는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무섭게 가지치기한 모습으로 우뚝하다. 경산이발테마관 옆에 자리한 카페는 경일백화점이 있던 자리다. 용성면 송림리 출신 김성운씨가 오래전부터 마을에서 생산되던 질 좋은 한지를 전국적으로 유통시키기 위해 1949년에 문을 연 경산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지금은 철근이 드러난 벽면에 경일백화점 다섯 글자만이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골목 안으로 들어선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파랗게 칠해진 대문을 종종 본다. 거기에는 '서상길 집수리 프로젝트'라 새겨진 목판이 걸려 있다. 낡고 불편한 집을 고쳐주는 프로그램으로 경산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진행했다고 한다. 목판을 12개까지 보았는데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소방차가 진입하기 곤란한 골목길에는 소화기가 설치되어 있다. 경산소방서에서 소화기를 기증하고 서상동 주민이 소화기함을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했다고 한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전혀 모르는 동네지만 애틋이 정겹다. 일관된 소박함과 고요가 있고 동요 없이 맞이하는 그리움 같은 것이 있다. 골목 저편의 남천 변에 오른다. 새봄이 왔고, 천변에는 노란 유채꽃이 맑게도 흐드러졌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Tip 달구벌대로를 타고 경산 방향으로 간다. 중산삼거리에서 경산역 방향으로 우회전해 직진, 경산역 앞 역전사거리에서 좌회전한다. 경산교 지나 100m 정도만 가면 오른쪽으로 서상길이 시작된다. 경산시장, 경산문화원 등을 지나 장산로와 교차하는 사거리를 지나면서부터 '서상길청년문화마을'이 시작된다. 사거리 건너 바로 오른쪽에 중앙이용원과 경산이발테마관이 있다. 경산이발테마관의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주말과 법정 공휴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중앙이용원과 경산이발테마관. 이발을 테마로 한 최초의 전시관이다. 1956년 개장해 2014년까지 운영한 중앙이용원을 보존시키고 옆에 있던 낡은 주택을 보수해 만들었다.중앙이용원 내부. 자료와 비품은 폐업할 당시의 것들이다. 흰색 각타일로 짜인 세면대와 펌프, 물뿌리개, 장기판, 괘종시계, 물품 보관함 등이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경일백화점은 1949년에 문을 연 경산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지금은 카페가 들어서 있고 철근이 드러난 벽면에 '경일백화점' 다섯 글자만이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포토스토리] 산불로 산림이 멍들어 간다
산불로 우리 주변의 산림이 멍들어가고 있다. 산림청의 10년간 지역별 산불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3월 27일 기준 경북지역에서 발생한 산불 건수는 48건, 피해면적은 300.33ha로 건수로는 경기도에 이어 두 번째, 피해 면적은 전국에서 가장 크다. 경북도는 지난해 울진 산불로 단일 산불로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와 피해, 최장기간 산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얻었다. 올해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산불 발생 건수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 10년 평균으로 넓혀 본다면 경북도의 산불 발생 건수는 89.4건, 피해면적은 2천63.871ha로 두 번째로 산불 건수가 많은 강원도(75.4건)보다 피해면적은 두 배에 육박한다.산불 피해는 해마다 커지고 있지만, 대형 산불 발생 원인은 '실화'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산림청의 10년간 원인별 산불 발생 현황을 보면 10년 평균 입산자 실화 건수는 177.4건으로 피해 원인을 특정하기 힘든 산불 특성상 기타(230.6건) 원인에 뒤이어 가장 많다. 올해는 쓰레기 소각으로 발생한 산불이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매년 봄철이면 산불 발생 소식을 접하고 있지만, 특히 올해는 그 빈도가 범상치 않다. 지난해 동해안 산불을 겪으며 산불의 위험성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매년 봄이면 그 기억이 사라지는가 싶을 정도로 똑같은 실화 또는 쓰레기 소각 등으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우리나라 산림은 일제 강점기 전쟁물자 조달, 6·25전쟁, 우리나라 특유의 온돌문화 등을 이유로 황폐해졌다. 지금의 푸른 산림은 1970년대에서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30여 년 동안의 녹화사업을 통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앞선 세대의 노력으로 누리는 푸른 산림을 산불로 인해 다시 30년의 세월이 걸려 복구한다면, 말 그대로 잃어버린 60년이 된다, 산불 면적의 크고 작음을 떠나, 시간만이 치유하는 산림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람의 시간을 뺏기는 것과 다름없다. 산림이 불탈 때마다, 사람의 시간이 줄어든다. 글·사진=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지난 20일 오후 경북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 야산의 산림이 산불로 인해 까맣게 그을려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지난 20일 오후 경북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 야산의 산림이 산불로 인해 까맣게 그을려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1060회 로또 1등 '3, 10, 24, 33, 38, 45'…1등 28명 '8억9천824만원’
로또복권 운영사 동행복권은 제1060회 로또복권 추첨에서 '3, 10, 24, 33, 38, 45'가 1등 당첨번호로 뽑혔다고 25일 밝혔다. 2등 보너스 번호는 '36'이다. 당첨번호 6개를 모두 맞힌 1등 당첨자는 28명으로 8억9천824만원씩 받는다. 당첨번호 5개와 보너스 번호가 일치한 2등은 96명으로 각 4천366만원씩을, 당첨번호 5개를 맞힌 3등은 4천593명으로 91만원씩을 받는다. 당첨번호 4개를 맞힌 4등(고정 당첨금 5만원)은 17만9천475명, 당첨번호 3개가 일치한 5등(고정 당첨금 5천원)은 256만6천118명이다. 서용덕기자 sydkjs@yeongnam.com
[정재형의 정변잡설] 무식하거나 사악하거나
'건폭'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 더 올라가면 전두환 치하 삼청교육대가 연관검색어로 올라올 것 같다. 일전 대통령께서 기득권 강성노조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일갈하자 국토교통부 장관이 버선발로 뛰어나오고 고용노동부는 노조 회계장부를 다 내놓으라고 으름장이다. 경찰은 물론 국군 방첩대까지 동원되어 노조를 공구고 일부 언론도 건폭이 뭔지 깨알같이 보도해서 국민의 혈압을 올린다. 건설현장은 매우 거친 곳이다. 거대 자본이 대형건설사와 함께 수십 단계의 하도급을 벌이고 정부와 자치단체가 인허가를 통해 엄청난 이권을 통제하는 판이 거기인데, 그 생태계 제일 밑바닥에는 흔히 '노가다'라고 부르는 건설노동자가 있다.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법외 수당 따위를 요구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말이다. 모든 일은 맥락이 있기 마련인데, 그 현장 노가다 몇 명의 조직에 몇조 원을 주무르는 건설자본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은 도무지 못 믿겠다. 그게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의 관리들 특히 검사님들은 이제껏 놀았다는 말이 된다. 그런 불법행위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면 무지한 것이며 노가다를 쳐서 지지율을 좀 올려보겠다는 속셈이라면 사악한 거다.학폭 사건으로 철회하긴 했지만 경찰 수사본부장에 전직 검사를 임명하는 일이 있었다. 작년 경찰국 신설에 대한 경찰의 집단반발을 무난히 진압한 후 자신감이 붙었으리라. 임명의 이유는 경찰 수사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함이라 하고 언론은 그 검사 출신과 대통령 사이의 인연을 강조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 한 모든 인사는 그 나물에 그 밥이기 마련이지만 참으로 배우지 못한 짓이다. 경찰 수사의 전문성을 높여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 방법이 수사본부장 자리를 검사 출신으로 채우는 것밖에 없진 않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쓰는 것도 조직 생리상 지당하겠지만, 그 자리가 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검사의 지휘를 받다가 겨우 수사권을 얻은 경찰조직이라면 다른 사람을 찾아봐야 맞는다. 갓 독립한 대한민국의 총리로 조선총독부 출신 일본인을 임명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임명이 조직을 무시하고 수사권 독립을 방해하려는 의도로 읽힐 것이라는 점을 몰랐다면 무식한 거고 알고 했다면 사악한 것이다."하늘의 그물은 엉성한 것같이 보여도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는 경구에서 '하늘의 그물'은 국민의 심판이라는 점을 잠시라도 외면하면 끝이 좋지 않다. 노파심에서 사악하거나 무식한 무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변호사정재형 (변호사)
[포토뉴스] "팔공산 미나리 드셔보세요"
팔공산 일대에서 향긋한 향과 아삭한 식감으로 겨우내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아 주는 봄의 전령사 미나리 수확이 한창이다. 2일 팔공산 미나리 재배농가에서 농민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제641회
■ 가로열쇠 1. ○ ○○ ○ 나무라듯. 3. ○○은 갈수록 줄고 말은 갈수록 는다. 5. 닭알(달걀) 지고 돌담 모퉁이엔 ○○ 못하겠다.(북한 속담) 6. 반반한 ○○은 부엌에 두어도 얽은 망은 방 안에 둔다. 8. ○○ 판에는 대부인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 10. ○○○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12. ○지○랭○에서 자개바람이 인다.(북한 속담) 13 떡 삶은 물에 ○○ 데치기. 15. 옹이에 ○○. 17. ○○ 새끼는 시골로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18. ○○ 못난 건 제집만 망하고 딸 못난 건 양 사돈이 망한다. 19. 내 ○○이 진정 ○○이냐. 20. ○○ 마당 벌어진 데 솔뿌리 걱정한다. 21. 나가는 년이 ○○ 사랴. 22. 울려는 아이 ○ ○○. ■ 세로열쇠 1. ○ ○의 이슬. 2. ○○은 강경으로 꾸려 간다. 3. ○○가 양지 되고 양지가 ○○된다. 4. ○○○○ 사촌. 5. ○○○○의 새털 (날듯). 7. 건더기 먹은 놈이나 ○○ 먹은 놈이나. 9. ○○ 싸움은 개싸움. 10. ○○ ○ 젓국 먹이듯. 11. ○○을 사도 물소리 들리는 골에 것은 안 산다. 14. ○ ○가 나가면 작은 소가 ○ ○ 노릇 한다. 15. ○○○이 망하려면 당나귀만 들어온다. 16. 팔자는 ○○○○로 간다. 17. ○○이 지척이면 천 리도 지척이라. 19. ○○ 겨자 먹기. 20. ○○과 사돈집은 멀어야 한다. <제639회 당첨자> ▶김은정(포항시 북구 우창로) ▶김정혜(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문성호(대구광역시 수성구 지범로) ▶윤경례(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로) ▶강청화(대구광역시 서구 고성로) ▶이서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전희성(대구광역시 북구 칠곡중앙대로) <상품협찬> ▲ 워터파크 스파밸리 자유이용권 1688-8511 ▲ 교감형 생태동물원 네이처 파크 이용권 1688-8511 ▲ 에코테마파크 대구 숲 이용권 (053)761-7400, 7401 ▲ 팔공산온천관광호텔 입욕권 (053)985-8080 ▲ 〈주〉아모레퍼시픽 아이오페 레티놀 엑스퍼트 0.1% ▲ 청도용암온천 대온천장 초대권 (054)371-5500 ▲ 청도 프로방스 포토랜드 초대권 (054)372-5050 ▲ 〈주〉그린기프트 레디엠 반전립스틱세트 1588-8480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당첨자에게는 협찬 상품 중 한 가지를 우송해 드립니다. <응모요령> ▨제641회 '임무출(한글학회 회원)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해답은 우편엽서를 이용해 3월16일까지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휴대폰 번호를 반드시 적어주세요) ▨보내실 곳 : 대구시 동구 동대구로 441 영남일보 편집국 주말섹션부 임무출의 우리말 알아맞히기 담당자 앞 ▨우편번호 : 41260
[사설] 이재명 구속영장, 국회·검찰·법원 각자의 직업윤리와 소임 요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결국 청구됐다. 나라 전체가 시끄럽게 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제1 야당 대표에 대한 영장청구가 헌정사상 첫 사례다. 여기다 이 대표가 받는 혐의 또한 엄청 방대하고 복잡하다. 이른바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특혜의혹에서부터 성남FC 후원금까지 얽혀 있는 데다 이번 영장에서는 적시되지 않았지만 쌍방울 대북송금, 백현동 개발 비리, 변호사비 대납을 둘러싸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그래서 전대미문이라 한다.당장 야당은 검찰독재정권이 정적 제거에 나섰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대통령 영부인 수사를 흐리려는 의도라고도 했다. 여당은 방탄국회나 열 생각 말고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응수한다.그러면 이처럼 정치적 인화성이 강한 복잡 미묘한 사안은 어떻게 풀 것인가. 답은 국회, 검찰, 법원 모두 각자 위치를 고수하며 직업적 윤리와 소임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치의 사심이 개입되지 않은 합리적 판단이 물 흐르듯 단계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당장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로 넘어온다. 이번만큼은 개개인이 국가기관이라는 국회의원들의 냉철한 판단 즉 투표가 요구된다. 검찰 역시 마찬가지다. 이 대표에 대한 혐의(嫌疑)는 어디까지나 의심이다.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없는 의심을 만들었다면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다. 법원도 비록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관측되지만 체포동의안이 행여 가결된다면 구속수사의 타당성이 있는지부터 판단해야 한다. 종국적인 1, 2심 판결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이 사안은 대한민국이 선진적 국가 시스템을 갖고 있느냐의 여부를 가름할 것이다.
[자유성] 따뜻한 관계
코로나 사태와 취업난으로 서울에서만 13만명의 청년들이 '집콕' 상태에 있다. 전국적으로 은둔형 외톨이 청년은 61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취업 실패와 어려운 가정형편, 따돌림 등이 은둔 청년을 양산하는 원인이다. 은둔 생활이 지속되면 육체적·정신적으로 더욱 취약하게 된다.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소장인 로버터 월딩거(Robert Waldinger) 교수가 1938년부터 최근까지 사춘기부터 늙을 때까지 수천 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는 이를 뒷받침한다.행복하고 건강한 사람들의 특징은 주변인들과 따뜻한 관계(warm relationship)를 유지하고 있는 부류였다. 한밤중에 아프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 언제든지 전화를 걸어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나 친척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 활동의 예리함이나 정신적·육체적 기능이 좋고 우울증, 당뇨, 고혈압 등의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현저하게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적·정서적 결속력이 높을수록 스트레스에 대한 조절기제가 잘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월딩거 교수는 삶의 질을 높이려면 가까운 사이든, 취미클럽에서 만난 사람이든 이너서클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더 개방하고 포용적인 자세를 가질 것을 권한다. 육체적 건강을 위해 매일 헬스장에 나가 신체를 단련하면 근육이 불어나듯이 호감이 가는 주변 사람에게 접근해서 대화를 나누는 횟수를 늘리다 보면 따뜻한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고 한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나 심리지원 등의 공적인 대책에 앞서 자발적으로 정서적 유대감을 강화하는 노력이 더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김신곤 논설위원
[아침을 열며] 위기의 한반도, 유연하고 다양한 대북정책 필요
지난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통일부의 올해 업무보고가 있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올바른 남북관계 구현'과 '통일미래 준비'를 올 한 해 주요 업무 추진 방향으로 제시하고, 이를 위해 '담대한 구상 이행 본격화' '남북관계 정상화 추진' '북한 주민의 인권 향상' '통일미래 청사진, 추진전략 재정립' '수요자 중심으로 탈북민 지원체계 정비' '올바른 통일관·대북관 정립' '대내외 통일 역량 및 기반 강화'를 7개 핵심 과제로 추진해 나갈 것임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주목되는 부분은 '남북관계 정상화 추진'이다. 통일부는 남북대화 돌파구 마련을 위해 민간단체 및 국제기구 등을 통한 대북 직·간접 접촉을 모색할 것이며,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사회문화 교류와 함께 자연재난 공동대응, 농업, 산림, 수자원 협력 등 '그린데탕트'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남북이 함께 참여하는 '남북 간 합의이행 점검위원회'를 구성하고, UN 등 국제기구의 이행 지원을 확보해 '남북 간 합의한 것은 이행'하는 구조도 정착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을 확고히 억제(Deterrence)하고, 제재 이행 강화 및 독자 제재 추진을 통해 북핵 개발 단념(Dissuasion)을 유도하는 한편, 대화(Dialogue)를 위한 노력도 꾸준히 전개할 것'이라며 이른바 '3D 정책' 추진을 재확인해 남북관계 정상화 추진 의지를 퇴색시켰다.북한은 이미 올해 대남관계 및 대외관계에 대해 지난해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밝혔다. 김정은 총비서는 전원회의 보고에서 '대남 전술핵무기 다량 생산' '핵탄두 보유량 기하급수적 증가' '새로운 대륙간탄도미사일 체계 개발' 등을 올해 주요 과업으로 제시했다. 특히 남한이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있다면서 이러한 정세가 "전술핵무기 다량 생산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부각시켜주고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핵무력은 전쟁 억제와 평화안정 수호를 제1의 임무로 간주하지만 억제 실패 시 제2의 사명을 결행하게 될 것"이라면서 '공격용' 핵무기 체계를 강화할 방침을 밝혔다.국제관계 역시 현재 정세를 '신냉전'으로 규정하며 "조성된 정세는 우리 국가를 정조준하고 있는 미국과 적대 세력들의 우려스러운 군사적 동태에 대처해 공화국의 주권과 안전, 근본 이익을 철저히 담보할 수 있는 압도적인 군사력 강화에 배가의 노력을 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북한은 올해도 '핵무력 강화'는 물론 '강 대 강, 정면승부의 대적 투쟁원칙'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올 한 해도 한반도 상황은 '긴장과 위기'의 연속일 것이 분명하다. 특히 인민군 창건 75주년(2월8일),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9월9일), 북한이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이라 칭하는 정전협정 체결 70주년(7월27일) 등 주요 '정주년' 정치 기념일이 있는 올해는 북한이 더욱 한반도 위기상황을 고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그 어느 때 보다 통일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힘에 의한 평화 구현"은 국방부의 목표이며, "'행동하는 동맹' 구현으로 '확고한 대북 안보'"는 외교부의 목표이지만, 통일부는 이와는 달라야 한다. 좀 더 적극적인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정상화를 위한 통일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강 대 강' 대결로는 한반도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 내에서의 유연하고 다양한 대북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박문우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수석연구원, 북한학 박사
[김경호의 삶의 공간이야기] 대구시청사에 대한 단상 (下)…'생태의 보고' 신천이 인접한 부지에 시청사 지어야
그동안 시청사에 대한 세 편의 글을 적었다. 상편에서는 새로운 부지에 신청사를 지을 때 단편의 시청사가 아니라 시리즈의 드라마가 펼쳐질 수 있는 시청사를 상상하였다. 시청사만의 업무를 위한 건물이 아니라 복합적인 문화시설까지 포함된 건축을 제안하였다. 중편에서는 지금 시청사의 건너편 부지에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고 기존 시청사와 브릿지로 연결되어 업무의 효율을 높이고, 주차장의 확보와 중구청과 연계된 교집합 공간의 활용 등을 모색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대구시청이 중심이 되어 동측으로는 중구청과 신천까지의 거리의 축을 연결하여 시청의 업무가 중구청과 신천까지 서측으로는 동성로 축과 교차되면서 경상감영까지 이어지는 길로 제안하였다. 이번 하편에서는 옛 도청 자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어 시청사의 확장성과 각 부서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더욱이 신천변을 따라 일어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안하고자 한다. 하여튼 하나의 고집이 아니라 다양한 안을 통하여 합리적이고 가치적인 시민의 결정과 그 과정 속에서 단합을 꾀하였고 사람 사는 공간을 배우는 자로서 소견을 밝히는 바이다.사람의 동선과 인프라의 상호작용 고려한 길환경공동체 의식을 불어넣는 곳이 좋은 공간시청사는 시민의 쉼터·일터·놀이터가 돼야◆신천과 연동되어야 할 시청사개인적으로 대구시청사는 과거 경북도청으로 사용되었던 산격동으로 옮기길 바랐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환경적인 측면에서 무엇보다 시민들의 접근이 도로만이 아닌 신천으로도 가능하여 좋았다. 신천변을 걸으면서 시청에 접근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웃한 신천변은 대구시만의 매력 덩어리이다. 외국과 비교하자면 노만 포스터의 구 런던시청사가 떠올랐다. 물론 노만 포스터라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이라는 이름값도 있지만 템스강보다 신천이 못하다는 증거는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아무리 생각해도 발견하지 못하겠다. 신천은 편안한 눈높이의 둑과 적당한 폭 때문에 걸으면서 서로를 인지하게 되는 공동체적인 공간의 스케일을 갖고 있는 생태하천이다. 유안진의 '지란지교'처럼 마음만 내키면 신천을 따라 걷고 싶고 그러다가 칠성시장에 들러 보리밥을 먹고 시청 내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느긋하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적당한 벤치에 앉아 노을이 내리길 기다리며 책을 읽는 상상을 해 본다. 비 오는 날에는 다리 밑에서 준비해 온 보온병의 커피를 내리고 헤드셋을 쓴 채 김광석 노래를 들으며 신천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멍하게 바라보는 여유도 갖고 싶다. 바람 부는 날에는 시청의 옥상에 올라 신천을 내려보며 멀리는 팔공산과 앞산을 바라보며 지나온 날과 다가올 날들을 짚어 보고 상상하는 시간도 갖고 싶다. 그런 도시에서 살고 싶다. 그런 대구시가 되었으면 한다.◆시민과 소통하는 청사여하튼 새로운 시장님이 선출되었고 대구 시민의 기대도 클 것이다. 시장의 인사말처럼 대구가 국제적인 도시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해선 대구시의 첫 집인 시청사부터 신중하게 지어야 할 것이다. 옷은 한 사람의 격을 나타낼 수 있지만 집은 주인뿐만이 아니라 집안의 격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이는 대구 시민의 격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대구시청이 시장님을 비롯한 공무원들에게 자부심과 자긍심을 안겨주는 일할 맛 나는 일터가 되어야 하고, 대구시민들에게는 안위를 제공하고 민원을 해결하는 소통의 장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뉴욕시에 '뉴요커'가 있다면 대구시엔 '대구시민'이 있다는 자긍심의 출발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구시민이 길을 나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시청으로 가는 길이 되었으면 한다.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대학원의 데이비드 라커 교수는 CEO의 브랜드 가치가 10% 좋아지면 그 기업의 주식 가치는 24% 증가한다는 연구이론을 제시했다. 그만큼 한 기관의 CEO가 조직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조직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핵심요소가 되고 있다는 얘기이다. 도시도 마찬가지이다. 시청의 CEO인 시장의 이미지가 중요하다. 홍준표 시장이 어떤 이미지로 대구를 대표할는지는 대구시민의 기대와 대구시민 스스로의 격을 갖춤에 있겠다. 세계적인 뉴욕시가 도시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적극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캠페인을 모색하게 되고 찾아낸 해법은 바로 '아이 러브 뉴욕' 캠페인을 통한 도시 마케팅이었다. 1975년 뉴욕이 실시한 이 캠페인은 당시 경제불황의 여파로 뉴욕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고 범죄도 성행하여 관광객 숫자가 급감해 도시 재정까지 문제가 발생한 도시 이미지를 쇄신했고 지금까지도 지속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물론 그 운동의 중심에 '밀턴 글레이저'라는 선한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렇다면 대구시는, 대구시민은 어떤 캠페인을 벌여야 할 것인가?코펜하겐의 도시는 지상 6층 높이 건물 즐비 곳곳 섬세한 배려 돋보이며 도시 전체 어우러져시민에게 안위를 제공하는 소통공간 역할 톡톡 ◆신천은 대구 자부심얼마 전 코펜하겐 BIG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영국 친구를 서울에서 만났다. 그 친구에게 서울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너무 좋다고 했다. 특히 산과 강이 가까이 있어서 너무 좋다고 하였다. 하긴 코펜하겐의 도시는 수평적으로 지상 6층 높이의 건물들만이 펼쳐져 있다. 물론 중세의 교회나 성당이 불쑥 튀어나오는 곳도 있어 시민들은 그 종탑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것을 즐기는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라 했다. 하지만 코펜하겐의 거리와 건축은 훌륭하였다. 곳곳의 공간에 인간적인 섬세한 배려가 있었고, 도시 전체가 디자인되었다는 느낌은 감출 수가 없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노숙자를 한 명밖에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고 만나는 사람들마다 웃으면서 인사하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영국 친구 조너단에게 말하였다. 서울도 좋지만 다음에 오면 대구를 소개해 주고 싶다고 했다. '가장 인간적인 스케일을 갖고 있는 도시가 대구'라고 자랑했다. 특히 어디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신천을 함께 산책하자고 하였다. 그곳에선 수달과 왜가리, 오리 등 다양한 생물을 직접 볼 수 있다고 자랑했다.시골은 전원·초원·농경지에의 접근이 용이하거나 화초나 조류, 동물에의 접근이 마련될 때 비로소 평온하고 안락함을 느낀다고 한다. 도시에서는 인간의 동선과 인프라의 상호작용이 보장될 때에 도시 생활의 장점이 보장된다. 이들 상호작용에는 분단되지 않고 연속적인 활동이 대전제가 되고 그 흐름은 길이 된다. 나는 그 길이 신천이라고 생각한다. 신천을 좋아하고 수달을 비롯해 다른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환경공동체 의식'이 대구시민의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뉴욕의 변신범죄도시 뉴욕을 '범죄 없는 안전한 도시'로 바꾼 배후에는 최고의 존경받는 시장, 루돌프 줄리아니가 있었다. 정체된 도시 런던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어 경제와 문화의 중심지로 돌려놓은 데는 켄 리빙스톤 전 시장의 리더십이 큰 몫을 했다. 브라질의 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환골탈태, 세계적 도시로 만드는 주역 중 한 명이 바로 자이메 레르레르 시장이었다. 이처럼 시장의 리더십과 행정철학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핵심 파워가 되고 있다. 대구엔 홍준표 시장이 있었다는 역사가 남겨지길 필자는 응원한다.앞으로는 빅데이터와 AI의 영역이 넓어짐에 따라 인간이 차지하는 업무의 양은 극소해질 것이다. 자연 큰 규모의 시청사가 아니라 짜임새 있고 효율적인 공간의 디자인이 우선되는 건물이 필요하지 않을까?'결정 난 부지에서 왜 반토막을 내어 매각해야만 하는가? 원초적인 부지의 선정에서 시민 참여단 250명은 옳고 가치적인 판단을 하였는가? 지금도 그 판단에는 변함이 없는가?'에 대한 반복적 자문과 검토가 치밀해야 성공이 보장될 것이다. ◆생태형 시청사 아쉽다지금 대구시의 재정 형편은 매우 빈약하다. 빚은 2조원을 넘겼고 연간 이자만 4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한 가운데 수천억 원이 드는 무리한 신청사를 고집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부담은 오롯이 대구시민의 빚이 될 것이다. 대구의 청사는 대구시민의 공공재로 쉼터요, 일터요, 놀이터가 되어야 한다. 부담스러운 빚덩이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더구나 시의 살림을 주관하는 시장부터 갓 태어난 갓난아기까지 빚쟁이로 살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궁극적으로 대구시민의 일상이 즐거워야 할 것이고 문화예술·의료·복지가 갖춰진 생태도시로 거듭나길 바란다. 그리고 지금의 시청사이든 옮겨진 시청사이든 시청이 자리 잡은 지역의 시민들은 지역의 관점에서만 보지 말 것이며 시청이 큰 선물 보따리처럼 취급되어도 아니 될 것이다. 시청이 세워지고 나서의 어떤 가치적 영향이 지속적으로 생길 것인가를 가늠해 볼 일이다. 대구시청은 대구만의 독특한 시청이 되어야지 어디 시청과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대구란 정체성은 사라질 것이며 대구시민은 대구를 점점 떠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삶의 공간을 들여다볼지 시민 여러분들의 고견도 듣고 함께 토론하는 지면으로 쓰고 싶다. 아삶공 생태건축연구소 소장 a30cokr@naver.com대구 시역을 생태학적으로 부감해 볼 수 있는 필자의 대구 시역 스케치.대구시청사와 연계되어야 할 신천.2019년 덴마크 코펜하겐 방문 때 옛 시청사에서 내려다본 시내 풍경.김경호(아삶공 생태건축연구소 소장 )
[2023 영남일보 문학상] 詩 심사평 "발랄한 상상력 뒷면에 감춘 저항의식…詩 본원적 매혹 느껴"
본심에 올라온 열아홉 분의 작품은 제각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쁘고 단정한 서정시에서부터 종교성을 띤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 폭은 넓었으나,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거나 새로운 전망,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말이 많았고, 사유와 상상력을 자신의 언어로 정련한 작품을 보기 힘들어 아쉬웠다. 산문적인 시의 경우, 시의 내러티브가 전개되면서 의미와 이미지가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하는데, 반복에 그치거나 오히려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 대상으로 남은 것은 '데칼코마니' '흰색 위의 흰색' '유리방' 세 편이었다.'유리방'은 산문시인데 밀도 있는 전개와 예리한 언어감각을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세상 혹은 세상의 폭력에 대한 은유나 상징으로도 읽힐 수 있는 유리방 속 존재들의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시를 읽는 맛을 느끼게 해 주었으나, 현실에 대응하는 시인의 문제의식이 보다 다양하게, 입체적으로 표현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흰색 위의 흰색'은 말레비치의 그림 <흰색 위의 흰색>을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언어 구사가 빼어났다. 묘사와 진술의 능력이 돋보였고 시를 끌고 나가는 힘도 있었다. 그러나 평면적이었다. 눈덧신토끼와 스라소니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구체적 자기 경험과 겹쳐졌으면 시의 깊이와 울림을 더 할 수 있었을 것이다.'데칼코마니'는 경쾌한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정서의 파동을 지닌 작품이었다. 그동안 우리 시가 보여준 거울에 대한 상상력과는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면서 자아·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인식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발랄한 상상력의 뒷면에 감추어져 있는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의식, "이따금씩/ 거울을 볼 때/ 나를 잊어버리는데// 나는 잘 있니?" 같은 질문들, "다른그림찾기와/ 같은그림찾기가/ 다른 말로 들리니?" 같은 유희, 이것들을 한 편의 시에 유기적으로, 또 차분하게 담아내는 능력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두 심사자는 시의 본원적 매혹을 느끼게 해 준 '데칼코마니'를 흔쾌한 마음으로 당선작으로 선정했다.이하석 시인·전동균 시인.(사진 왼쪽부터)
[2023 영남일보 문학상] 詩 수상 소감 "작품, 삶과 같아 언제나 미완"
거기서부터 여기까지,아득하기엔 아린 나날이어서 먼 듯하지만 가깝고 가까운 듯하지만 먼 거리였다.움켜쥐어도 끝내 잡히지 않는 햇살, 그럼에도 햇볕이 드는 곳을 자주 바라보았다. 열리지 않는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듯.빛살을 엮어 만든 밧줄과 같은 인연의 힘으로 여기에 서 있다.고마움과 미안함은 이따금 동의어로 쓰인다.시를 쓰면서 그림을 생각하곤 했다. 그림을 그리며 시 쓰는 일을 떠올렸다.그렇게 저 너머의 시간을 바라보며 걸었다.걷는 것은 견디는 것과 닮았다.작품은 삶과 같아서 언제나 미완일 뿐, 오늘의 뿌듯함이 내일의 부끄럼이 되곤 한다.하지만 등 뒤에 있는 시간처럼 이 또한 성근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여기서부터 저기까지,빛나는 밧줄을 길잡이 삼아 환한 저 너머로 다시 걷는다.제 시의 맨 앞에 계신 이용헌 시인님, 박동기 작가님, 고맙습니다.사랑하는 엄마 아버지 어머니 큰모 삼촌 막모, 그리고 브라더 복문.끝으로 제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2023 영남일보 문학상] 詩 당선작 - 데칼코마니
데칼코마니 한이로(필명) 내 방엔 거울이 하나나는 언니였다가 나였다가서로 다른 옷을 입을 때살짝 삐져나오는 다디단 표정나란히 서면자꾸 뒤돌아보지 않아도 될 거야우리에겐 곁눈질이 있으니까이따금씩거울을 볼 때나를 잊어버리는데나는 잘 있니?학교를 벗어던진 우리는나란히 자전거를 타고횡단보도 위로 쏟아진 자동차들 사이로 뿔뿔이흩어진다반으로 나눠진 마카롱,사라진 쪽이 너라고 생각하겠지바닥에 번진 우리의 그림자를 지우느라붉어지는늦은 오후의 얼굴들간호사가 건네는 푸른 옷을얼굴처럼똑같이 입고 우리는 사이좋게캐스터네츠를 악기라고 말하고 난 뒤의 기분을반으로 접는다다른그림찾기와같은그림찾기가다른 말로 들리니?내 방엔 거울이 하나인데두 개 매번 언니였다가 나였다가입 꼬리 살짝, 올라간다
[제6회 영남일보 구상문학상] 신미나 시인 수상 소감…"소박하지만 진실한 詩 쓰길 다짐 투병 중인 아버지께 기쁜 소식 되길"
"꼿꼿하고, 강직하게 정신의 날을 세우겠습니다."초등학교 입학식 전날, 아버지가 낫으로 연필을 깎아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손이 작아서 날도 짧고, 자루도 한 뼘이 안 되는 낫을 썼습니다. 보통 낫보다 날의 두께가 얇아서 풀이나 잔가지를 쳐내기에 알맞은 낫이었지요. 아버지는 숫돌에 물을 끼얹어 가며 낫을 갈았습니다. 낫이 잘 갈렸는지 눈짐작으로 가늠하더니, 필통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연필 깎는 방법은 따로 있었습니다. 왼손으로 낫을 단단히 쥐고, 오른손 엄지로 연필을 살살 밀며, 부드럽게 돌려 깎았습니다. 연필심이 너무 뭉툭하게 깎인 건 아닌지 살펴보고는 후, 하고 흑심 가루를 불기도 했습니다. 필통 안에 가지런히 놓인 연필을 보면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딸을 응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연장이 낫인 것처럼, 저도 연필을 연장 삼아 살아가리란 걸, 아버지는 짐작하셨을까요? 두 번째 시집을 묶으면서 시의 형식과 구체적인 삶의 내용이 어우러진 시를 쓰길 바랐습니다. 화려한 수사로 덧대지 않고, 소박하나마 진실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는 구상 시인이 몸소 보여주신 윤리 의식과 구도의 자세와도 이어져 있습니다. 구상 시인은 "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언령(言靈)이 있으므로 참된 말만 해야 하고, 글을 쓸 때도 교묘하게 꾸며 쓰는 기어(綺語)의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시인의 말씀을 반석 삼아 꼿꼿하고, 강직하게 정신의 날을 세우고 싶습니다. 수상 소감을 쓰면서, 오래전 아버지의 응원을 다시 받은 것 같았습니다. 미욱하고 더딘 걸음을 격려해 주신 심사위원 여러분과 동료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삶은 고통 속에서도 영롱히 빛나는 신비인 것을. 언어의 고양감에 취하기 전에, 무섭도록 생생한 삶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투병 중인 아버지께 기쁜 소식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신미나 시인은 1978년 충남 청양 출생. 2007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 '당신은 나의 높이를 가지세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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