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내로남불'이라는 말

  •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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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21-07-14 07:15  |  발행일 2021-07-14 제면
'네가 하면 로맨스…'로 쓰여

필요한 결단 미루려는 태도

정치적 낭만주의와도 연관

사회 문제에 해결책도 없이

슬며시 회피하는 말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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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2021년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내로남불'을 꼽고 싶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문장을 간단히 줄인 이 말만큼 요사이 한국 사회를 잘 반영하는 것이 또 있을까. 여기서는 잠시 이 말에 담긴 의미의 논리, 즉 말의 저변에 놓인 의미망의 권력 지도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예상보다 깊고 복잡한 의미의 지층들이 존재한다.

우선 '내로남불'이 포괄하는 시대와 문명의 범위가 매우 크다는 점이 눈에 띈다. 로맨스라는 영어와 불륜이라는 한자를 넣어 공간적으로 동서양의 문명을 포괄하고, 시간적으로도 서세동점 시대였던 20세기 이전과 이후를 포괄한다. 사자성어의 틀은 동아시아 배경을 드러내고, 문장 속 단어의 첫 글자를 모은 것은 디지털 시대의 특징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내로남불'은 이러한 공간적·시대적 광범위성을 어떻게 엮어내는가. 크게 두 가지 구도가 잡힌다. 하나는 나와 남, 안과 바깥, 주체와 타자를 나누는 것이다. 로맨스는 안쪽의 주체인 나와 연결되고, 불륜은 바깥쪽의 타자인 남에 연결된다. 다른 하나는 가능성과 한계, 긍정과 부정, 포용과 배제의 구도다. 가능성을 가진 긍정적 포용으로서 로맨스와 한계가 뚜렷한 부정적 배제로서 불륜은 정면으로 대치한다.

이러한 두 구도의 중첩에서 말의 묘미를 자아내는 포인트는 확실히 로맨스라는 단어에 있다. 이 말은 유교적 세계관에 기초한 부정적 평가인 불륜이라는 단어의 대척점에서 마치 이를 대체하는 의미지향인양 내세워지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 '내로남불'은 깊은 의미의 단절을 피할 수 없다. 왜 그럴까.

흔히 낭만으로 번역되는 로맨스는 서구의 근대사회가 합리주의와 시민혁명에 대하여 취했던 여러 태도 중 하나이자 그 태도가 유력했던 시대를 일컫는다. 서구에서 시민혁명의 과학적 합리주의를 비판하는 동시에 그 비판을 제기하는 주체들의 공동기원을 탐사하는 태도는 대체로 고대 로마 문명의 성과에 대한 재음미와 연결되었고, 그래서 흔히 로맨티시즘, 즉 낭만주의로 불렸다. 칼 슈미트가 말하듯 그 정치적 핵심은 필요한 결단을 계속 미루면서 어떻게든 판단유보상태에 계속 머무르려는 태도다(정치적 낭만).

그러므로 서구의 맥락에서 보자면 '내로남불'에서 로맨스라는 말의 반대쪽에는 유교적 세계관을 담은 불륜이라는 말보다 고전적 모더니티, 즉 시민혁명이 내세웠던 과학적 합리주의가 등장해야 온당하다. 하지만 '내로남불'은 이 공백을 짐짓 무시하면서 고전적 모더니티를 뛰어넘어 로맨스와 불륜을 나와 남, 긍정적 포용과 부정적 배제로 대치시킬 따름이다.

이 대목에서 문득 떠오르는 것은 '내로남불'이라는 말의 쓰임새다. 사실 이 말을 던지는 진정한 주체는 대체로 말의 바깥에 존재한다. 이 말은 깎아내려야 할 대상을 향하여 "그럼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냐"라는 단정 또는 질문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내로남불'은 사실 '네로남불'인 셈이다.

말의 전략으로서 이는 말의 진정한 주체를 숨기고, 고전적 모더니티의 논증 부담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는 탁월한 전략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로맨스와 불륜의 사이에, 그리고 나와 남 사이에, 반드시 갖추어져야 할 고전적 모더니티의 요청을 도무지 채울 수 없게 되지 않을까.

2021년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내로남불'이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아무런 해결책도 없이 자꾸 문제 앞으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 이유는 이 기묘한 사자성어에 내포된 의미의 공백, 그리고 이를 슬며시 회피하는 말의 전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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