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교사에서 최고의 멘토가 되다 - 윤일현 지성학원 이사장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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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7-12   |  발행일 2013-07-12 제37면   |  수정 2013-07-12
“헬리콥터형·감시카메라형·불도저형·인공위성형 부모가 아이 망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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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지성학원 이사장은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교육자다. 그는 “현명한 부모가 되기 위해선 부모가 먼저 여유를 갖고 자식을 포용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년은 악동이었다. 여름방학 때마다 동네친구들과 함께 뒷산 잡목 숲에 비밀본부를 만들었다. 비좁고 엉성한 공간이었지만 그곳에는 부모님의 잔소리나 성가신 심부름도 없었다. 거기서 가끔 참외나 수박 서리를 하기도 했다. 그곳은 일탈이 주는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했고 아웃사이더의 관조적 여유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유토피아였다. …(중략)…모든 위대한 시인이나 사상가들은 이 아웃사이더들의 감정을 문학과 철학적 사색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아웃사이더들은 체제 안의 순응자인 인사이더들이 보지 못하거나 애써 무시하려는 지배질서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조롱했다. 능동적, 창조적 아웃사이더들은 인간성의 폭과 깊이를 넓혔고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이상향을 창조했다. 안과 밖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한 사람. 창조적 아웃사이더만이 자신과 주변을 객관화시킬 수 있다.’(하략)

윤일현 지성학원 이사장 겸 지성교육문화센터장(57)의 저서 ‘부모의 생각이 바뀌면 자녀의 미래가 달라진다’에 나오는 창조적 아웃사이더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공교육과 사교육의 현장에서 ‘교육’이란 화두를 가슴에 품고 지금껏 열정적으로 청소년을 가르쳐왔다. 특히 2006년부터는 한 달에 2회 금요일 오전 학부모를 대상으로 인문학강의를 하고 있다. 또 20년째 매년 겨울방학 일주일에 한 번 무료학습 클리닉을 운영하며 학생과 학부모상담을 해오고 있다.

‘성찰하는 인간’ ‘늘 깨어있기를 갈망하는, 맑은 영혼을 지닌 벌거벗은 교육자’ ‘가장 영향력 있고 열정적인 공교육의 옹호자’ ‘항상 꿈을 꾸고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스승’ 등 그를 두고 다양한 평가가 뒤따른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실패한 교사’ ‘딜레탕트’ ‘전생의 흉악범’이라고 소개했다.

대구지역 최고의 입시전문가로, 아니 이 시대의 청소년과 학부모에게 최고의 멘토로 평가받는 그를 지난 5일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자택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가 바로 ‘창조적 이웃사이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30년 교육인생

87년 민교협 활동하다 지역 첫 해직 아픔
94년 ‘낙동강’시집 내 기고·외부특강 많아

교육문화센터 설립 땐 ‘미친놈’ 소리 듣기도
학부모 대상 인문학강좌 7년만에 150회 돌파


◇ 자녀 교육론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자존감 짓밟아선 안돼
스스로 하도록 돕는 컨설턴트형 부모 돼야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자는 건 즐겁지 않아
자고 난 뒤 남는 시간에 공부하도록 유도해야

독서 즐거움·감동을 맛보지 못한 아이에게
논리·작문 가르치는 건 일종의 죄악이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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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 이사장과 부인 추태귀 교수(경북대 섬유패션디자인학부)가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자택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 이사장은 자택을 ‘힐링하우스’로 꾸며, 책을 읽고 토론하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서가에 책이 무척 많다.

“지하 서고와 학원에 있는 것까지 합하면 수천 권쯤 될 거다.”

-다 읽었나.

“‘다 읽은 책으로 서가를 가득 채운다면 무슨 매력이 있겠는가’하고 움베르토 에코가 말했다.(웃음) 사실 절반 정도도 못 읽었다. 책에 대한 욕심이 많다. 1983년 교사가 된 이후 지금까지 제자가 찾아오면 밥은 안 사줘도 책은 줬다. 1천권 이상 선물했을 거다.”

-어떤 책을 주로 보나. 젊은 시절이 궁금하다.

“고교 시절에는 ‘사상계’를 비롯해 김기림, 정지용, 이태준 등 월북 작가가 쓴 금서를 봤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다. 책에 관해선 잡식성이다.”

(그는 계성고 ‘청맥’동아리 회원이었다. 고교졸업 후 2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영남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재학시절 1979년 10·26사태가 일어나기 전 영남대신문에 ‘눈치와 사사오입의 지성’이란 제목으로 독재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썼다가 학보사 주간교수가 사퇴한 필화사건을 겪었다. 80년 ‘서울의 봄’ 때는 학생운동을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현상수배자가 됐다. 결국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65일간 구금돼 이근안 등에게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다.)

-학생운동 전력이 있는데 어떻게 교사로 임용이 됐나.

“대구에선 직장을 잡을 수 없다고 했다. 83년 포항제철고 영어교사 모집에 응시했는데, 임용되기 전 보안심사위원으로부터 사상검증에 걸려 임용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조용하게 학생만 가르치겠다는 각서를 쓰고 임용됐다.”

(5년간 영어교사를 하면서 학생을 가르치던 그는 87년 전교조의 전신이었던 민교협 포항·영일지구창립공동의장으로 활동하다 대구·경북지역에서 첫 해직교사가 됐다.)

-후회는 없나.

“없다.”

-반골기질이 있는 것 같다.

“할아버지가 면암 최익현의 제자다. 일제강점기 위정척사운동을 하다 집안이 몰락했다.”

-학원강사는 언제부터 했나.

“90년대 초 일신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했다. 임시직으로 들어갔다가 열흘도 안 돼 정식 강사가 됐다.”

(그는 이때부터 재수학원 스타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자괴감이나 회의감이 들진 않았나.

“처음엔 별 생각 없이 시작했다. 먹고살아야 하지 않나. 하지만 재수생을 가르쳐 보니 입시에 실패한 학생이 제대로 보이더라. 공교육·사교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만큼 성심성의껏 잘 가르치고, 배우겠다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걸인이었지만 ‘거리의 선생’이었다. 학원가에 자리 잡고 사는 ‘실패한 교사’였지만 마음속 화두는 항상 ‘교육’이었다.”

-문학 활동은 계속 하고 있나. 시집도 낸 걸로 알고 있다.

“정만진, 배창환 등 분단시대 동인이 중심이 돼 ‘사람의 문학’을 창간했는데 1년 뒤 동참해 지금까지 편집위원을 하고 있다. 김종철 선생이 창간한 ‘녹색평론’에도 함께했다. 94년 밤 늦게까지 재수생을 가르치고 신천에 들러 시로 허허로운 마음을 달랬는데, 그 열매로 나온 게 ‘낙동강’이란 시집이다. 학부모 상담에다 칼럼, 강연 등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시를 쓸 여유가 없다는 게 아쉽다. 신문·방송·잡지 등에 나가는 원고청탁만 해도 한 달에 10건이 넘고 연중 80회 정도 외부특강을 한다. 대상은 유치원부터 노인대학까지 다양하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무료 인문학강의를 7년째 해오고 있다고 들었다.

“교육이 달라지려면 학원이 달라져야 하고 학부모가 달라지지 않으면 교육이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83년 포항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 포항YMCA, 성당 등지서 교육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인문학강의를 처음 시작했다. 2003년 송원학원 내에 교육문화센터를 설립할 때 ‘미친 놈’이란 소리를 들었다. 학원 교실 한 칸 더 만들면 돈을 더 벌 수 있는데 밀어붙였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의 유명학원에서도 벤치마킹하고 있다.”

-강연 내용은 무엇인가.

“강의를 시작하기 전 학부모와 함께 동요를 몇 곡 부른다.(그는 고교 때부터 기타를 쳤다.) 5분의 3은 문학·사학·철학 등 인문학이고, 나머지는 교육관련 해설 등이다. 수강생은 100명쯤 되는데 12일 강연이 150회째다. 지금까지 약 4천명의 학부모가 수강을 했다. 강연을 할 때마다 조그만 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나름 철저히 준비해서 한다.”

-학원 경영은 어떤가. 힘들지 않나.

“학원가에서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게 참 힘들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 괴리가 크다. 학원을 경영하면서 돈벌이에만 집착한 적이 없다고 자부한다. 칼럼을 쓰고 강연을 다니는 것도 스스로를 긴장시키고 교육자로서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과도한 사교육비로 부모의 등골이 휜다. 사교육 폐해가 크다.

“사교육비의 절반은 선행학습에 드는 비용다. 선행학습은 공교육 파괴와 교실붕괴의 주범이다. 선행학습이 소수의 최우수 학생에게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대다수 학생에게는 학습의욕을 떨어뜨리고 자칫 공부를 포기하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절 모르고 시주하는 격’인데, 음식도 학습도 이젠 ‘패스트’에서 ‘슬로’로 전환돼야 한다. 빨리빨리 하다가는 날림과 부실이 생기기 마련이다. 기본개념을 잘 이해하고 곱씹는 사람이 결국에는 이긴다.”

-대다수의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경쟁에 뒤처질까봐 노심초사한다. 어떤 부모가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좋은 부모인가.

“항상 자녀의 주위를 맴돌며 모든 일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간섭하는 헬리콥터형 부모, 더 나아가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감시카메라형 부모, 부모가 모든 일의 방향을 결정해 강압적으로 몰아붙이는 불도저형이나 폭격기형 부모, 자녀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만 대주고 모든 것을 알아서 하라는 인공위성형 부모가 돼선 안 된다. 자녀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항상 자녀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도록 도와주며 자주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는 컨설턴트형 부모가 좋은 부모다.”

-부모의 역할이 쉽지 않다. 항간에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해선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하다는 등 자조적인 이야기가 떠돈다.

“정보는 왜곡되기 쉽다. 엄마의 정보력 대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라’고 말하고 싶다. 기본에 충실하고 실력 있는 학생이 손해보는 교육제도는 없다. 사르트르는 아버지가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이 ‘일찍 죽는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의 권위로 아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억압해선 안 된다. 부모가 인문학적 마인드가 있어야 아이를 덜 괴롭힌다. 인문학은 최고의 직업교육이다. 지나친 간섭보다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한다. 현대는 간접수사학의 시대다. 아무리 옳은 이야기라도 직설적으로 생각 없이 아이에게 함부로 말을 내뱉어선 안 된다. 부모는 북극성과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 북극성은 자신의 불빛을 밝히기보다 주위에 있는 별의 빛을 밝힌다. 사막이나 바다에선 북극성을 보고 길을 간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아이와 비교해 아이의 자존감을 짓밟아선 안 된다.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자는 것은 즐겁지가 않다. 자고 남는 시간에 아이가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 6시간 이상 자게 하기, 아침 굶기고 학교에 보내지 말기, 선생님을 평가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원이나 학교에 다녀온 아이에게 ‘열심히 공부했냐’고 다그치기보다 경상도 말로 ‘디제?’ ‘욕봤다’라고 하든지 ‘오늘 행복했나’ ‘오늘 즐거웠나’라고 말해 보라. 아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 등산을 하거나 함께 책읽기, 함께 식사하기 등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예체능 교육도 예전에 비해 많이 등한시하고 있다.

“인문학 위기와 예체능 과목 경시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 근대에 들어 실용성을 최대의 가치로 삼으면서 인문학이 도외시되기 시작했다. 실용성에 초점을 맞추면 주어진 문제나 목표가 과연 옳은가 하는 가치 판단의 문제는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간과하기 쉽다. 학문의 지나친 실용화와 기능화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재앙적 결과로 나타난다. 예체능 과목 경시도 마찬가지다. 또 개인의 정체성은 가족과 민족, 국가란 환경 속에서 나왔다. 국제화 시대일수록 우리 것과 고전이 중요하다.”

-스마트폰에 중독된 청소년이 많다. 스마트폰 사용이 학업성취에 지장이 있나.

“당연히 지장이 있다. 빌 게이츠가 다보스포럼에서 각국 정부는 교육과 보건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했는데 인터넷과 컴퓨터가 아무리 좋은 교재라고 해도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로 교육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했다. 인터넷 강의는 내가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남의 공부를 구경하는 것이다.”

-두 자녀 모두 서울대 의대와 경제학과에 보냈다. 어떻게 교육시켰나.

“큰 아이는 유치원 때 한글교육을 시키지 않아 초등학교 2학년 때 받아쓰기 시험에서 20점을 맞기도 했다. 둘째는 5학년 때까지 반에서 중간 정도밖에 못했다. 하지만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때까지 참고 기다렸다. 루소에 따르면 아동기에는 ‘감성교육’이 중요하고 소년기, 청년기까지는 ‘이성교육’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했다. 독서의 즐거움과 작품읽기를 통한 감동을 맛보지 못한 아이에게 딱딱한 논리와 형식적인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일종의 죄악이다. 지적 각성과 미적 충격, 감성과 이성 교육의 균형이 필요하다.”

-교육과 교사는 어떤 관계가 있나.

“교육은 교사의 자질과 사기(교권)를 넘을 수 없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교실에서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인성지도도 잘 할 수 있다고 본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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