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옥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한밤중에 일어나 물 한 잔 마시다가 휴대폰에 눈이 갔다. 폴더를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돌아가신 K선생님의 성함이 떠 있었던 것이다. 망자의 이름으로 아들이 보내온 문자메시지였다. 아버님 돌아가신 후 유품 정리와 연락처 확인에 인사가 늦었다면서 지난번 문상에 감사를 표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넋을 잃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왜 그의 이름을 본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었을까. 그는 결코 남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온화하고 유머러스한 젠틀맨이었다. 달포 전에만 해도 행사장에서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 않았던가.
"잘 지내시죠?"
"그럼요. 잘 지내지요. 아픈 것만 아니면요. 아픈 거 이건 좀 재미없어요."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도 우리는 모두 서운함 중에 안도감을 느꼈다. 숙환으로 오랫동안 고생을 해온 데다 연세도 90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이 된 출판기념회 행사장에서는 사회자가 노래 한 곡을 청하자 청년처럼 가볍게 뛰어나와 흔쾌히 한 곡을 불러젖혔다. 백년설의 '대지의 항구'였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그가 노래할 때 우리는 거의 슬프지 않았다. 목소리가 하도 카랑카랑하여 환자인 것도 잠시 잊었다. 음정과 박자까지 정확하여 우리 모두 열심히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섬뜩함이라니! 이승과 저승의 거리는 그리도 먼 것인가.
폰을 닫고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거실을 어슬렁거렸다. 정면 거울에 황망한 내가 허깨비처럼 서 있었다. 자다 일어나 머리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신체 중 머리카락은 소속이 애매하다. 심장이나 뇌와는 출신성분이 아예 다르다. 붙어 있을 때는 내 것이되 떨어지면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일 때는 학처럼 도도하다가도 떨어지면 잉여에 불과하다. 잉여이되 저 스스로는 놀랄 만큼 수명이 길다.
손을 들어 머리를 대충 쓸어 넘겼다. 기다렸다는 듯이 죽은 머리카락이 몇 올 손바닥에 묻어 나왔다. 무슨 연유에선지 밤사이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간 것들이었다. 나의 뜻은 아니었다. 온전히 자기 의지였다.
어쩌면 나는 매일 떨어진 머리카락만큼씩 죽어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세상 만물이 유한하니 이를 피할 수 있는 생명체는 지구상에 없다. 진시황도 알렉산더대왕도 석가모니도 피하지 못했다. 죽음은 이렇듯 삶에 바짝 붙어있는 것이었다.
다시 폰을 열어 망자의 이름을 들여다본다.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던 그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쯤은 무사히 자신의 항구에 도착했을까. 쉬지 않고 쉬지를 않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항구를 찾아갔을까.
망자를 대신한 아들에게 답장을 쓰기 시작한다.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다가 결국 하나마나한 인사 몇 마디로 말을 맺는다. 폰을 닫으니 이제는 삶이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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