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서천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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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07  |  수정 2014-10-07 07:47  |  발행일 2014-10-07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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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재 <칼럼니스트>

두어 달 전 충남 서천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 개원한 국립생태원에서는 세계의 기후대별 대표 동식물을 직접 만나볼 수 있었고, 시범운영 중인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다양한 해양생태계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장항송림산림욕장에서는 울창한 해송 숲 사이 상쾌한 산책로를 거닐었다. 서천은 이 밖에도 금강하구 철새 도래지,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신성리 갈대밭, 한산모시관 등 다양한 문화·생태관광 자원을 갖추고 있었다.

이름만 겨우 들어봤던 낯선 고장 서천으로 나를 이끈 것은 우연한 인연이었다. 그 인연으로 서천은 아는 사람의 고향이 되었고, 나는 난생 처음으로 서천 땅에 발을 디디게 된 것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활동하다 수년 전 귀향한 출판기획자이자 번역가인 홍민표씨다. 그는 서천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문화예술창작공간 장항미곡창고 운영에 힘을 쏟고 있다.

서천군 장항읍에 있는 미곡창고는 일제가 경기, 충남지역의 쌀을 배로 실어가기 위해 지었다. 서천군은 수탈의 상징이었던 창고를 리모델링해 주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콘크리트 기둥은 품고 있던 조약돌을 군데군데 드러내기는 했으나 아직 끄떡없어 보였다. 미곡창고라는 명칭도 미술, 음악, 창작, 연구를 뜻하는 美曲創考로 재치 있게 바꿨다.

내가 찾아간 날은 미곡창고의 첫 프로젝트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다. 그날 공연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중고제 판소리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공주 출신 소리꾼 박성환씨의 무대였다. 그는 스승인 고(故) 정광수 명창을 찾아갔을 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스승이 서편제나 동편제 소리를 배우지 왜 철지난 중고제를 배우려 하느냐고 하자, 그는 “나도 금강 변에서 태어났소!”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가 부러웠다. 내 입에서 “나도 팔공산 자락에서 태어났소”라는 말이 나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서천의 문화예술인 몇 분과 소곡주를 마셨다. 술이 좋아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어느새 취해 못 일어난다는, 그래서 ‘앉은뱅이술’이라고도 불리는 서천의 가양주다.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슈~”하는 충청도 농담을 오리지널로 듣고 맘껏 웃었다.

서천에서는 귀농인협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도 했고, 타 지역 출신 예술가들이 많이 와서 살기도 한다고 했다. 소곡주 핑계를 대고 눌러앉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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