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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재 <칼럼니스트> |
움베르토 에코나 보르헤스의 도서관과 내 기억 속의 도서관은 전혀 다른 곳이다. 내 기억 속 초등학교에는 도서관이 없었고, 대신 아이들이 집에서 가져온 책으로 만든 학급문고가 있었다. 만화책 가져와도 되는지 묻는 녀석이 꼭 있었다. 만화책도 없는 학급문고, 아이들의 관심은 보름을 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에는 도서실이 있었는데 자물통이 채워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거기서 학교의 긴 역사를 짐작게 하는 책들을 ‘구경’했다. 시립도서관에도 가끔 갔다.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하는, 매점 우동이 맛있고 입장료가 싼 공립 독서실이었다. 도서관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얻을 때도 있었고, 시간만 낭비했다는 자책이 들 때도 있었다.
대학교 도서관도 일찍 가야 자리 잡을 수 있는 독서실이었다. 다만 중고생이 없을 뿐. 참고자료실, 정기간행물실은 개가식이었지만 대출이 안 됐고, 일반도서는 폐가식으로 운영됐다. 목록만 보고 대출신청을 하다 보니 엉뚱한 책을 빌리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목록함은 십진분류법에 따라 정리해 놓은 것과 저자명·서명을 가나다순으로 정리해놓은 것 두 종류가 있었다. 길쭉한 나무서랍을 빼면 그 속에 노란 카드가 빼곡히 들어있었다. 오래된 책의 목록 글씨는 철필로 긁어 등사한 것이었고 최근에 들어온 책은 전동타자기의 예쁜 글씨였다. 나머지는 종이에서 활자막대의 힘이 느껴지는 기계식 타자기 글씨였다.
어느 대학 도서관에서는 흥미로운 반개가식을 봤다. 서고의 벽을 철망으로 만들고 책등을 밖에서 볼 수 있도록 거꾸로 꽂아놓았다. 철망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원하는 책을 밀어놓고 창구로 가서 대출 신청하는 방식이었다.
도서관 갈 일 없는 시절을 한참 보내고 난 뒤, 다시 도서관에 갔더니 미로의 문은 열려있었다. 웬만한 책은 개가식으로 운영되는 자료실에 다 들어있었다. 이 책 저 책 마음대로 뽑아 볼 수 있었다. 나무로 만든 목록함 대신 검색용 컴퓨터가 졸고 있었다.
요즘 가끔 찾아가는 도서관의 종합자료실, 서가와 벽이 만든 막다른 골목에 이런 글이 붙어있었다. ‘경고. 이곳에서 혐오감 주는 행위 하는 자 발견 시 퇴실 조치함’ 약간의 의문과 감탄을 느낀 다음 순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글귀 하나가 떠올랐다. 내 청춘시절 도서관 자료실 벽에 붙어있던 표어. ‘자료의 절취는 문화의 말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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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도서관의 추억](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10/20141014.01023080054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