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우리에게 불혹의 나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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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31  |  수정 2014-10-31 07:44  |  발행일 2014-10-31 제18면
[문화산책] 우리에게 불혹의 나이는?

‘나이 40세가 되어서는 미혹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이는 ‘논어’의 ‘위정편’에 언급된 말로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공자가 40세에 이르러 직접 체험한 것으로, 자신의 학문과 수양에 대해 회고하며 남긴 말이다. 세상살이에 혼돈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더라도 40세가 되면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림 없이 삶의 입지를 세워 묵묵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도 ‘나이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는 40세가 되면 철이 들어 회환과 성찰로 불혹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내 나이도 마흔을 넘은 지 오래건만 수많은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을 보면서 과연 불혹의 나이가 몇인지를 생각해본다.

남보다 뛰어난 스펙을 위해 10대를 책상 앞에서 보내야 하며, 대학 입학과 함께 취업경쟁 속에 살아남더라도 겨우 턱걸이 한 셈밖에 되지 않는다. 30세가 넘어서 뜻 맞는 이성과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룬다고 여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젊은 가장은 바쁜 업무로 가족과 따뜻한 대화 한번 할 수 없으며, 스펙을 만들기 위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헌신적 모성이 되었다.

가족과의 식사는 적은 가족 수에 집안 상차림은 오히려 낭비라며 외식문화에 내어주고, 손님에게도 예약한 식당에서의 대접이 훨씬 우아하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웃 노인이 생을 마감해도 관심이 없다. 이토록 바쁘게 휩쓸려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거늘 어떻게 40대에 불혹을 맞이할 수 있으며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겠는가?

이제 늦기 전에 되돌아가야 한다. 사회가 원하는 성공이 아닌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자. 아내와 남편은 서로를 향하고, 또 창문을 열고 이웃의 모습에도 관심을 기울여보자.

물질적 풍요를 채우는 것에서 벗어나 넉넉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인간은 만족하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늘 갈망한다. 그리하여 매 순간 수많은 유혹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가 공자 같지는 않더라도 유혹되지 않기 위해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은가? 나의 불혹의 나이는 몇이겠는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볼 일이다. 지원<팔공총림 동화사 사회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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