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귀 기울이지 않아도 온갖 소리들이 들리는 가을이다. 선선한 바람소리, 그 바람에 못 이겨 나뭇잎 지는 소리, 온 거리가 낙엽 구르는 소리, 소복소복 쌓인 낙엽 밟는 소리로 가득하다. 미하일 엔데의 ‘모모’에서 모모는 남의 말을 들어주기를 좋아한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냥 들어주기만 하는데 모모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렇듯 들리는 소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면 내 아이의 소리에도 귀 기울여지지 않을까.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가 다 늦은 오후, 상담실을 찾아왔다. 입술은 피멍이 들었고, 손톱을 물어뜯어서 속살이 발갛게 드러난 채였다. 아이는 대뜸 울기부터 했다. 제 발로 찾아와서 상담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지 소리 높여 울다가 흐느끼기를 삼십여분. 마주앉아서 우는 모습을 마냥 지켜보았다. 왜 우느냐? 울지 마라! 이런 말조차도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편안하게 울 자리가 필요했던 것 같아서였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다 울었느냐고. 눈물을 훔친 아이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무논에 봇물터지듯 쏟아내는 말을 듣는데 정말 모모가 된 기분이었다. 입술은 심리적 불안감으로 깨물어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손톱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죽고 싶다고 했다. 자기는 왕따에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자신을 이해하기보다 무조건 혼내기부터 한다는 것이다. 아이의 꿈은 유명한 애니메이션 작가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배운 적도 없는데 캐릭터 그림을 매우 잘 그려냈다. 오직 학습된 학생으로 생활하기를 종용당한 한 아이는 급기야 목숨까지 포기하고 싶어졌다. 부모는 아이의 꿈을 너무나 하찮게 여겼다. 그 뒤로 여러 차례 나를 찾아와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았고, 나는 하염없이 들어주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의 입술은 아물어갔고, 손톱도 새싹처럼 곱게 자라났으며, 죽음의 그늘 대신 꿈나무가 파릇파릇 커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말하기를 좋아하고 강요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움츠러들고 말문과 귀를 닫아버린다. 아이의 마음은 고운 단풍과도 같다. 예뻐해 주고 어루만져 줄 때 아이는 더 곱게 물들어간다. 깊어가는 가을의 소리를 듣고 만끽하듯이 우리 아이의 소리에도 한번쯤 귀 기울여볼 때다.
황명자 <시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산책] 들어주기](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11/20141104.01023075958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