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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판의 에피소드 하나. 옛날 한 연극인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의 공연 신청을 위해 대구시민회관을 찾았다. 당시만 해도 사전검열 탓에 이것저것 서류가 많았다. ‘재건복’ 차림의 담당 직원이 서류를 건성건성 넘기다가 대뜸 하는 말이 원작자의 도장이 빠졌단다.
그 연극인은 귀를 의심했다. “누구 도장 말입니까?” 그러자 나이 든 직원의 얼굴이 불콰해진다. “젊은이가 말귀가 어둡네. 여기 적힌 셰익스피어라는 사람 도장을 찍어오란 말이야.” 농담으로 넘기기엔 너무 진지하다. “그 사람 없습니다 ” “왜 없어? 어디 갔어?” “죽었는데요” 그 다음이 압권이다. “아, 죽었으면 유족이라도 있을 거 아냐!”
이 얘기는 엄연한 실화다. 이뿐만 아니라, 이런 류의 에피소드는 얼마 전에도 있었다. 가까운 사례를 보자. 개그계의 한 원로가 복(伏)날을 맞아 이웃 청도에서 ‘개나 소나 콘서트’를 개최했다. 실제 개나 소를 데려와야 입장이 가능하다. 73인조 풀 오케스트라까지 등장시킨 이 공연에 경북도지사가 참석을 했다. 반려동물을 위한 이색음악회에 감동한 도지사가 이듬해 전폭 지원을 약속했다.
문제는 다음해의 일이다. 그 원로가 예산신청을 위해 도청에 갔다. 담당자가 서류를 한참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과를 잘못 찾아오셨네요. 개나 소는 축산과로 가셔야 합니다.” 원로가 뒤집어졌음은 물론이다. 후일 그는 “그런 멋진 개그는 평생 처음 봤다”며, 한 수 배웠음을 인정했다.
이 얘기들은 문화예술계 출신의 한 방송국 PD가 실제로 겪었던 에피소드를 책으로 엮은 체험담 ‘슬픈 개그’의 일부분이다. 저자를 밝히지 않은 것은 이 책이 아직 출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출판을 미루고 있을까. 그 이유가 슬프다. 각 에피소드마다 웃기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 없는 진한 페이소스(pathos)가 묻어있기 때문이란다.
슬픈 개그는 최근의 문화 판에도 부지기수다. 다만 예전처럼 관의 무지나 권위주의에서 생겨난 경우는 좀처럼 없다. 요즘의 슬픈 개그는 거의가 돈과 권력에서 비롯된다. 놀라운 것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개그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과 권력 앞에 한없이 약한 문화예술인 스스로가 개그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아마도 슬픈 개그는 영영 출판되지 못할 것 같다.
노병수<동구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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