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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준성 <한국재활음악치료학회장> |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어 보듯 기억 속으로 천천히 침잠하여 유년시절 나의 자아와 마주서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내 유년시절은 지독히도 가난했지만 또 눈부시게 따스했다. 그 시절 아련한 기억들은 지금도 내 마음에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가슴을 훈훈하게 어루만져 준다.
내 고향은 의성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해질녘, 산 그림자를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넓은 들판이 나오고 그 들판을 가로질러 또 한참을 걸으면 멀리 아담한 집 두 채가 보이는데 벽은 노을빛으로 물들고 굴뚝으로는 모락모락 연기를 내뿜는 오래된 풍경화 속에 있을 법한 그 집이, 바로 우리 집이었다. 의성 읍내에서 1시간30분 정도는 족히 걸어야 하는 거리에 집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남자만 4형제였다. 그중 셋째로 자란 나는 평범한 아이였다. 학교에 다녀오면 큰형과 작은형이 오기를 기다리며 동생과 자주 놀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싸우기도 정말 많이 싸웠다. 우리 집에는 전기와 수도가 없어서 늘 냇가에서 세수를 했다. 당시 냇가는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그 시골 골짜기에 우리집과 아랫집, 이렇게 단 두 집만 있었는데 그 집에 또래 친구가 있어 항상 어울려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대부분 고무신을 신고 다녔는데 특히 근처 못에서 물이 방류될 때면 우리 형제들과 내 친구는 고무신으로 배를 만들어서 놀곤 했다. 물위를 동동 떠가는 고무신을 바라보며 누구의 고무신이 가장 빠른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물위로 작은 그림자를 만들며 떠가는 고무신을 따라 우리는 무리를 지어 달리곤 했다. 그러다 목이 마르면 또 그 고무신으로 물을 떠먹기도 했는데 항상 허기를 느끼던 기억이 난다.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달구던 여름엔 동무들과 냇가에 모여 물장구를 치고 자맥질을 하며 놀았다. 우리집 과수원에서 물놀이를 하다 허기가 지면 과일을 따먹고 원두막에 누워 매미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청하곤 했다. 또 어느 때는 뱀을 잡기도 하고 못을 뾰족하게 갈아서 낚싯바늘을 만들고 그것으로 고기를 잡으러 몰려다니곤 했다. 비록 가난했지만 정말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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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https://www.yeongnam.com/mnt/file/201411/20141113.01019074034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