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호롱불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4-12-04  |  수정 2014-12-04 08:03  |  발행일 2014-12-04 제22면
[문화산책] 호롱불

중학교 다닐 때 대한민국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의 술 때문에 집을 팔아야 했다. 순식간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거처할 곳을 찾다가 산꼭대기에 땅을 사서 그곳에 직접 집을 지었다. 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촛불이나 호롱불을 켜고 생활을 했다. 자고 일어나면 코 안쪽이 시커멓게 되던 기억이 난다. 여름엔 더워 문을 열고 잤는데, 머리맡으로 뱀이 지나는 것을 보고 놀랄 때도 여러번 있었다. 그래도 밤하늘의 별은 얼마나 영롱하던지 집 앞 평상에 누워 별을 헤아리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 되어서야 다시 산 밑으로 이사를 했다. 비록 가난한 생활이었지만 산속에 살면서 즐거웠던 추억도 많았다. 산골짜기와 능선을 앞마당처럼 뛰어다니며 산토끼나 노루 등을 잡아서 구워먹기도 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도 하고 가을엔 이런저런 열매를 따러 다니느라 옷이며 신발이 엉망이 되곤 했다.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난 운동을 제법 잘했다. 원래 초등학교 때는 씨름을 계속 했는데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운동을 못하고 있는 터에 때마침 육상부를 뽑았다. 육상부원을 모집한다는 얘기를 듣고 갔는데 한 10㎞를 돌아 등수 안에 들면 육상부가 되고 육상부가 되면 장학금을 준다고 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먹고 살기도 힘든데 효도할 수 있는 길이 뭘까 고민하던 중 육상부가 되면 장학금을 준다는 소식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처럼 내 귀를 열어주었다. 내가 그 어린 나이에 고민을 하다 육상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각반에서 몇명씩 육상부를 선발했는데 내가 우리 반에서 1등을 해 당당히 육상부원이 되었다. 등록금이 해결된 것이다.

단거리 선수가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나보다 더 빠른 친구가 있어 장거리 선수가 되었다. 마라톤까지 연습을 했다.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좋았지만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정말 많이 맞았다. 코치에게도 맞고 선배한테도 맞고 어느 때는 하도 많이 맞아서 엉덩이가 찢어지고 피멍이 들었다. 피가 나서 팬티와 엉덩이가 붙어 있었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 몸으로 어두워져가는 하늘에 풀벌레 울어대는 논길을 지나고 달빛을 친구삼아 집으로 갔다. 옛날 산속에 살 때 엄마가 켜놓은 산꼭대기 호롱불빛은 그때 나를 집으로 인도해주곤 했다.
황준성 <한국재활음악치료학회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