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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준성 <한국재활음악치료학회장> |
난 실업계고교에 진학하면서 1학년 때부터 반장을 했고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전교 학생회장이 됐다. 학생회장으로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은 우리 학교의 고민거리였던 오토바이 사고였다.
정말 이상하게도 스승의날만 되면 오토바이 사고로 학생들이 죽는 일이 매년 반복되었다. 내가 1학년 때도 2, 3학년 선배들이 스승의날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고 2학년 때도 1학년 후배 1명과 2학년 학우 2명이 죽었다. 학교에서는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전교 학생회장이 되면서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한 학생은 단 1명도 없었다. 소중한 생명을 지켜냈다는 자부심에 정말 큰 보람을 느꼈다. 그 밖에도 학생회 임원들과 학교청소와 환경미화도 하고 교내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거나 싸움질하는 아이들을 발견하면 많이 혼냈는데 그 덕에 면학분위기도 조성됐다. 비록 시골에 있는 실업계고등학교였지만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동아리도 만들어서 열심히 활동하다 보니 전교생의 성적이 조금씩 올라가면서 학교 전체가 변화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 학교가 실업계고등학교임에도 불구하고 그해 대학에 많이 합격했고 주변에서는 놀라움과 찬사를 보내주었다.
시골의 작은 실업계고교에서 일궈낸 소박한 기적이었다. 그때 확실히 느낀 것은 ‘실패하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도전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는 생각과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믿음이었다.
난 요즘도 공부(연구)를 한다. 아직 박사(논문) 공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업계고등학교 때 얻었던 그 믿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고교시절은 그런 아름다운 경험이 있고 좋은 친구들이 있어 내 기억 속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로 장식돼 있다. 지금 그 친구들이 대부분 대기업에 다니거나 사업을 해서 성공하는 등 입신양명(立身揚名)했다. 먹구름이 낀 어두운 하늘처럼 회색빛으로 기억되는 중학교 때는 참 많이 힘들었지만 찬연한 햇살처럼 오렌지색으로 기억되는 고등학생 시절은 참 행복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이따금 그때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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