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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 나도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다. 당시 우리 집에서 중학교에 가려면 산비탈을 내려와 들판을 걷고 신작로를 한참 걷고 달려야 했다. 중학교 입구 조금 앞에는 시장이 있기에 그 시장을 가로질러 가야 했는데 거기에서 내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사건과 만나게 된다. 지금 말하면 지적장애인인데 그때는 ‘바우’라 불리던 불쌍한 사람이 있었다. 입을 약간 비딱하게 벌리고 기울어진 입가로 침이 흘러내렸는데 쉼 없이 흘러내리는 침을 소매로 닦아서 그런지 소매는 늘 시꺼멓게 되어있었다. 냄새가 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놀림감이 되어도 웃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몇 년을 봤었는데 갑자기 보이지 않으니 궁금한 생각과 걱정이 교차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사람이 떠돌아다니다 결국 겨울에 얼어서 죽었다는 것이다. 돌봐주는 사람도 없이 그렇게 비참하게 목숨을 잃다니. 정말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쉽게 지울 수 없어 한동안 우울하게 지냈다. 가족도 아닌데 왜 나에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를 잃고 소외되고 가난한 고아원 친구들, 교회 앞에 앉아있던 거지들, 그리고 결국 불쌍하게 세상을 떠난 어느 지적장애인에 이르기까지 어릴 때부터 그런 사람을 많이 접하고 바라보면서 차츰 나는 소명을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어머니는 늘 우리에게 “항상 기도해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라. 그리고 술, 담배 하지 말고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은 뇌리에 흡수되어 지금도 내 삶의 좌우명으로 자리 잡아 생활의 지침이 되고 있다.
어린 시절 아프고 가난한 이들을 만났고 이따금씩 접한 사건과 어머니의 그 가르침이 자양분이 되어서 그런지 지금 우리 부부는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다. 또한 함께 하늘 아래 가장 귀하고 귀한 장애인(천사)과 함께 삶을 나누고 있다.
황 준성 <한국재활음악치료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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