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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아침저녁 밥상머리와 잠잘 때만 부모님과 함께 했다. 부모님이 바깥일이나 집안일 등으로 바쁜 탓도 있었지만 어린 우리가 더 바빴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노느라고. 내 어린 날은 꿈을 먹고 살았노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밥 먹을 때 말고는 자유 시간이었다. 공부를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다. 저녁 먹고 둘레상에 연년생 언니랑 오빠랑 둘러앉아 시시덕거리며 일기도 쓰고 숙제도 하고 부엉이 우는 밤마실을 다녀오곤 했다. 그 틈새에 부모님이 일절 끼어들지 않으셨다. 언니도 오빠도 친구나 다름없이 일상을 공유하던 허물없던 시절이었다.
얼마 전, 한 초등학생을 상담하며 가정폭력의 실태를 알게 되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너 하나 때문에 밖에 나가서 이 고생한다”고 하는데 아이는 그런 부모 때문에 집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고생을 한다. 집에서 강요당하는 밤늦은 학습에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폭력까지 쓰는 아버지, 거기에 어머니의 잔소리는 또 어떤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까지 감정에 실어서 아이를 구타하는 부모. 결국 극심한 상처가 아이의 몸과 마음에 쌓여가게 되었다. 학원 역시 1등급의 아이를 만들어 내겠다는 일념으로 아이에게 폭력을 썼다. 그 사실을 부모도 알고 있었다. 아이의 성적 향상을 위해 묵인할 뿐만 아니라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올리라는 식인 듯하다. 그 스트레스를 학교에 와서 이상한 행동으로 보여 주던 아이는 결국 학교 폭력의 가해학생으로 낙인찍히게 되고 말았다.
요즘 부모는 너무 바쁘다. 옛날처럼 대가족일 때는 부모의 부재에도 형제끼리 사회성을 키우며 우애 있게 잘 자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자식이 한두 명인 요즘 부모가 더 바쁜 이유는 아이들을 종용하고 채찍질하고 억압하고 잘했을 때 보상까지 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사랑은 없고 책임과 의무만 가중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부모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온 가족이 다 모였어도 서로 웃지 못한다. 아이는 부모 눈치, 부모는 자신에게 부합하지 못한 자식에 대한 원망이나 질타가 난무한다.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옛 이야기 듣는가…(중략)…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한 발 뒤에서 따라가 보는 부모가 되어야만 아이들은 행복하다 할 수 있을 것 같다.황명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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