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세기와 21세기의 시간 속도는 분명 다르다. 우리는 현재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함인지 사람들은 뭐든 축약하고 생략시키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인터넷 공간을 살펴보자. ‘그래’나 ‘맞다’는 ‘ㅇㅇ’이 되고, ‘싫어’나 ‘아니다’는 ‘ㄴㄴ’이 된다. ‘ㅎㅎ’ ‘ㅋㄷㅋㄷ’처럼 대부분의 감정 표현이 자음만으로 가능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laughing out loud’는 ‘lol’, ‘thanks’는 ‘thx’, ‘please’는 ‘plz’ 등 영어권에서도 말이나 문자가 줄어지고 생략된다. 언어의 이러한 변화는 시대상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변화의 속도를 부추기고 있기도 하다.
먹을거리도 그렇다. 즉석 조리식품이 넘쳐난다. 앞선 모든 조리과정은 생략되고 뜨거운 물만 부으면 쌀국수가 되고, 잡채가 되고, 비빔밥이 된다. 컵라면은 즉석식품의 할아버지 격이 된 지 오래다. 어쩌면 우리는 물을 붓고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초조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판소리 공연을 한번 살펴보자. 판소리에 눈대목이라는 것이 있다. 판소리의 중요한 대목을 일컫는 말로 춘향가 중 ‘사랑가’나 ‘옥중가(獄中歌)’, 심청가 중 ‘심봉사 눈뜨는 대목’ 등이 이에 해당된다. 판소리 공연 중에는 이렇게 눈대목을 들려주는 공연도 있지만, 판소리 완창은 판소리 한 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데 짧게는 3시간에서부터 길게는 장장 8시간에 달하는 공연이다. 소리꾼에게나 관객에게나 쉽지 않은 무대이지만, 완창 공연은 그 유장한 흐름 속에 말로는 형언하기 힘든 벅찬 감동이 있다.
가끔은 이렇게 인생에서, 생활 속에서 생략된 부분을 메꾸어 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들고 노력이 더 들겠지만, 그만한 기쁨이나 감동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엄빠’는 ‘엄마 아빠’와 다르고, ‘어머니 아버지’는 또 다르다. 건조 밥에 물을 부어 섞어 먹는 즉석 비빔밥의 맛과 채소를 다듬고 계란을 부쳐서 만든 비빔밥의 맛이 같을 수 없다. 효율성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지는 각자가 고민해야 할 문제이겠지만, 삶에서의 너무 많은 축약과 생략은 결국 삶의 기쁨과 감동의 총량마저도 줄여버릴 것이 분명하다.
박혜영 <대구시립예술단 홍보담당>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