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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같지만 조금은 다른, 아니 어쩌면 너무나 다른 세 점의 그림이 있다. 한 점은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에서 식당으로 사용하던 긴 홀의 벽화로 있고, 또 한 점은 E. 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 속에 도판으로 있고, 나머지 한 점은 피스퍼즐의 틀 안에 1천개의 조각들로 완성돼 있다. 너무나 다르지만 같기도 한, 이 세 점의 그림은 모두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다. 나는 이 그림을 임의로 원화(原畵), 복사화(複寫畵), 피스퍼즐화라 명명해본다.
안타깝게도 나는 1495~98년에 그려진 그 원화를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현장에서 작품과 직접 교감함으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느낌과 감동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는 화가의 고뇌와 열정도 가슴으로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이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어릴 때 다녔던 교회에서거나 아니면 TV에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문학습작기인 1990년대 중반 서양미술사 책을 통해서였다. 도판을 보면서 그림에 대한 해설을 읽으면서 나는 가슴이 느껴야 할 많은 것을 머리로 대신하며 이해하려 했다. 원화만이 줄 수 있는 여러 감동들 또한 복제판에 의해 조금은 변형되고 변색되어 지식과 정보로 변해있었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면 넘쳐날수록 가슴은 점점 멀어지고 쪼그라들고 머리는 점점 더 커져가고 터질 것 같고 깨질 것 같고 사실, 나는 이 세 점의 그림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엿보려 했다. 현장이 살아있는 원화는 가슴의 시대로 보였고 여러 매체를 통해 전달되고 학습되는 복사화는 머리의 시대로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피스퍼즐화를 통해 나는 가슴도 머리도 아무 상관없는 감각의 시대를 보고 있다.
복사화가 변형과 변색으로 원화를 조금 바꾸는 거라면 피스퍼즐화는 복사화를 조각조각 내므로 원화에도 없는 균열과 금을 만들어 양쪽 모두를 훼손하고 왜곡한다. 이러한 균열과 금은 화가의 열정과 고뇌도, 작품의 느낌과 감동도 그리고 매체가 전하려는 지식과 정보 또한 유희와 놀이로 변질시킨다. 어쩌면 이 시대는 균열이 심할수록, 금이 많을수록 재미있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잔금이 많이 간 거울 앞에서 씁쓸히 서 있다.
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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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피스퍼즐](https://www.yeongnam.com/mnt/file/201503/20150304.01023080127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