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한국사회의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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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3-20  |  수정 2015-03-20 07:56  |  발행일 2015-03-20 제17면
[문화산책] 한국사회의 여성
해인 <스님>

우리 선조들에게 딸은 어떤 존재였을까. 이 땅의 많은 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슬픔을 원죄처럼 안고 살아왔다. 한국의 많은 여인들이 가부장적 문화,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의 피해자로 기구한 삶을 이어온 것이다.

지금은 희석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아들을 선호하는 문화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딸이 태어나면 그 자체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한 밑천으로 볼 뿐이었다. 아들의 성공을 위해 딸의 헌신적 희생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부모와 가족에게 과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들의 삶은 어떠한가.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로 맹목적이며 일방적인 사랑을 퍼붓는다. 반듯하고 단단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허약하고 나약한 존재로 자랄 뿐이다. 아들 역시 이 땅의 어긋난 성문화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희생자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비루한 삶의 흔적은 그 이름에서 잘 나타난다. 요즘은 딸들의 이름도 의미를 담아 예쁘게 짓지만 40대 이상의 이름 중에는 인권 침해에 가까운 것도 많다. 아들을 낳고 싶은 소망을 담은 ‘말자’라는 이름은 마치 아들을 출산하기 위한 부적처럼 보인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정조를 목숨보다 귀중하게 지키라는 뜻의 ‘정숙’, 고분고분하게 복종하라는 뜻의 ‘순자’, 아들을 연달아 출산하라는 뜻의 ‘연자’, 아름답게 보여서 시집 잘 가라는 뜻의 ‘애자’ 등도 여인들에게 지워진 멍에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힘으로 허물을 벗은 매미만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절대긍정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가 여성에게 길들인 병든 감각을 극복해야 한다. 극락세계나 천당은 저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순간이 극락이고 천당이다.

이 땅의 모든 여성은 인간이자 여자이고, 어머니이며, 본인이 되고 싶은 모든 것이다. 구태여 왕자 따위를 만날 필요도 없다. ‘자기계발의 꿈’이라 할 ‘개명’을 해야 한다. ‘이름을 바꾸는 개명(改名)’과 함께 ‘운명이 열리는 개명(開明)’도 해야 한다.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호주제도는 폐지되었고 재산권도 남자들과 동등하다. 한국 여성에게 문제는 법적인 예속이 아니라, 정신의 예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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