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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한 권의 책을 쓰는 일이다. 당신은 이 장엄한 책의 유일한 독자다. 여생은 원고를 퇴고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으로 그려낸 문양의 품격에 따라, 작품의 격이 결정된다. 천 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 문양을 완성하고,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하여 자유를 획득한 사람은 명장이 되는 것이다.
운명은 여러 연(緣)들이 밀고 당기는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이것들은 때로는 차원있게,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살벌하게 환상을 팔아왔다. 중심을 잃고 남의 정신에 의지해 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주인공인 책에서조차 변방으로 내몰린 채 쫓겨날 수밖에 없다.
역사의 굴레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자만이 인생의 주인으로 살 수 있다. 누구나 한평생 살다 보면 맨발인 시절이 있다. 지하 수십미터까지 곤두박질 칠 때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분연히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지금 우리는 여성들의 열정과 성취의 역사를 확인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인간을 참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자부심’이다. 역사에 대한 긍지를 잃어버리는 것은 곧 죽음이다. 내가 힘이 있을 때 누구도 나의 역사를 왜곡하지 못한다. 능력이 있어야 방어라도 할 수 있다.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방황하며, 늘 상실감과 무기력함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진정 자신의 인생에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면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타인은 나를 불편하게 할 수는 있지만, 나를 불행하게 할 수는 없다. 상대를 억압하는 자는 그 출발점이 공포심이다.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억압당하는 자도 불행하다. 인색함이란 아직 흉함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장차 흉함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짙은 예감의 상태다. 스스로 도우면 하늘도 돕는다.
성현들은 운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에 퇴고를 거듭하여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 가는 ‘입명’(立命)을 주문한다. 서산에 해 질 무렵, 엄마가 자식들을 집으로 불러 모으는 시간. 소꿉놀이를 그냥 두고 집으로 향하듯이, 인연이 다하면 치열했던 한권의 책을 끝내야 한다.
해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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