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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갑(甲)질’을 없앨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일까. 역지사지(易地思之), 자리를 바꿔 보면 달리 볼 수 있겠다.
평생을 무엇인가 이루기 위해서, 또 지키기 위해서 숨 가쁘게 살았던 한 기업인의 죽음에 세상이 술렁이고 있다. 그의 생애가 죽음보다 더 슬프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많은 시간 ‘갑’만 보고 관계를 맺는다. 생존을 위한 목적, 수단인 그런 아슬아슬한 허(虛)한 관계를 말이다.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실패가 잠시도 쉼이 없다. 주가가 오름과 무관하게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중소기업 부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남을 것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을은 수주)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갑질의 사회’, 그들은 처음부터 공생이니 동행이니 하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너무도 많은 ‘을’을 입맛대로 고르기 바빴기 때문이다. 갑은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과도한 을의 경쟁이 문제라고 본다.
노랫말처럼 ‘허공 속에 묻힐 그날’에 우리는 무어라 말할까. 내 사랑하는 가족, 조직, 사회를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다들 그렇게 말할 것 같다. 최소한 사사로이(?) 자신만을 위해 살지는 않았다고 말이다. 그렇게 단언하면 할수록 왠지 더 궁색해 보일 것 같다. 너무도 완벽해 틈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노련한 변(辯)은 때로는 천박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목눌근인(木訥近仁)의 가르침에 ‘아!’ 하고 감탄한다.
저마다의 공간은 넓게 세우고, 천장을 높이며 여유를 둔다. 그래야 가슴이 트이고 시원하게 보인다. 그러면서 세상 공간은 좁아지고 가려지고, 틈 없이 막혀 버린다. 답답하게. 길가에 걸린 생태계 보호를 위한 행사 현수막, 수년 사이 건축물을 신축한 곳에서 주최하는 행사였다. 나날이 좁아지는 공간에서 밤엔 아름다운 조명을 받으면 그 생물이 잘 보존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왠지 혼란스럽다. 성직자들이 경쟁처럼 세우는 성전과 도량이 너무도 많고 크다. 갑질에 대한 콤플렉스처럼 보여서 마음이 힘들다. 부유한 성자보다 마음 큰 성자의 실천이 그립다.
회향(回向), 되돌림은 결국 비움이 아닐까. 허공 속에 묻어야만 될 이야기와 약속, 그것들이 슬프지 않도록, 내가 빌려 쓴 그 모든 것은 되돌려야 할 때를 대비해서 항상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도 몰래 행한 갑질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반성하기. 그것이 습관이 된 그런 세상, 채움보다 빈 공간이 많은 세상 되기를 염원한다.
이광동 <상주귀농귀촌정보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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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허공 속에 묻힐 그날에](https://www.yeongnam.com/mnt/file/201504/20150420.010230805330001i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