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감성결핍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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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29  |  수정 2015-04-29 08:05  |  발행일 2015-04-29 제23면
[문화산책] 감성결핍 증후군

저녁 무렵 체육공원 벤치에 앉아있을 때 시간을 물어오는 한 아이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그 아이는 친구에게 돌아가 “우리 20분만 놀자. 학습지 선생님 오실 시간이야”라고 하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감정을 배울 시간이 있을까?’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과도한 교육열로 인해 학습 프로그램대로 움직여야 하는 오늘날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생각하며 혹시 모를 기계화와 비인간화의 병적 징후들을 살펴본다.

개개인의 프로그램이 우선시되는 개별적 프로그램화는 아이들에게 또래와 어울릴 시간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또래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야만 느끼고 배울 수 있는 타자와 다양한 감정을 체득할 기회마저 앗아버린다. 이로 인해 아이들의 감정은 메말라가고 자기중심적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학습프로그램이 중심이 되어 어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므로 자기 주도적이지 못하고 기계 반응적이게 된다. 이는 감각화로 이어져 인간적·정신적 가치보다 기계적·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게 만든다.

‘아기 5호, 그룹사운드 베이비파워, 그리고…’는 이러한 프로그램화의 불안을 담고 있는 시다. 이 시에 등장하는 매니저는 미래의 정자난자 은행에서 음악적 우성인자들을 주문해 상업적 목적으로 다섯 명의 아기를 탄생시킨다. 어릴 때부터 음악교육프로그램으로 길러낸 아기들은 보컬과 악기가 되어 매니저의 주문대로 공연을 하는데 그 기계음을 들은 청중은 하나둘 인어로 변해간다. 공연장 옆에 횟집을 차려놓은 매니저는 그들의 하반신으로 횟집을 운영해 결국 기계화와 비인간화를 극으로 몰아간다.

이 시와 더불어 나는 ‘新토끼전, 동화 속에서 길을 잃다’를 통해 과다한 지식과 지나친 논리로 인해 아이들의 머릿속이 하드디스크와 같은 공간으로 변해가는 것에 대한 불안을 동화가 변질되어버린 기계적 텍스트로 그려보았다. 감성이 풍부해질 시기에 과다한 기계적 학습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독이 될지도 모른다. 시간에 쫓기듯 하는 이성교육과 감성교육은 사실 시간의 부족으로 기계적 두뇌훈련과 반응적 감각훈련에 그칠 따름이다.

나는 아이들의 감성을 좀먹는 과도한 교육열은 대체 누구의 행복을 위한 것인가를 자문해보곤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과 제도적 문제일 때 그 물음은 답을 찾지 못하고 어두워져가는 사회를 더 어둡게 바라보게 한다.
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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