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한 마리의 모든 것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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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8-26   |  발행일 2016-08-26 제33면   |  수정 2016-08-26
일두백미 (一頭百味; 한우 한 마리에 100가지 맛)
20160826

소(牛). ‘농업이 천하대본(天下大本)’이던 시절, 소는 그 대본의 근간이었다. 황소 같은 일소가 없으면 농사는 언감생심. 소는 또 다른 식구였다. 식구를 잡아먹을 수는 없었다. 어쩌다가 늙어 죽은 소가 생기면 마을에서 공동으로 도축해 나눠먹었다. 평상시에는 개·돼지·염소·닭 정도만 잡아 먹었다. 개로 끓인 ‘개장(보신탕)’, 소고기로 대신하면 ‘육개장’, 닭이 들어가면 ‘닭개장’이 되었다.

서민들은 고기 구경을 하기 힘들었지만, 일부 미식가 양반들은 탐육(貪肉)의 식감을 더 곧추세웠다. 몽골이 육식문화를 고려에 전파하기 시작한 13세기부터 국내에도 구이문화가 발흥한다. 특히 소의 심장(염통)을 얇게 저며 양념간장으로 간을 해 구운 ‘우심적(牛心炙)’은 사대부에게 최고로 인기였다. 고려 때는 ‘설야멱(雪夜覓)’도 유행한다. 설야멱은 송나라 태조가 ‘눈 내리는 밤(설야·雪夜)’, 신하이자 친구인 조보를 ‘찾아가(멱·覓)’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데서 유래한다. 설야멱은 소고기를 굽다가 찬물에 살짝 담갔다가 다시 익히는 구이법이다. 이렇게 하면 겉이 타지 않고 속까지 잘 익는다.

있는 자의 야금야금 구이문화는 결국 무분별한 도축과 소 절도 등으로 이어진다. 결국 농사 지을 소가 모자라는 지경에 이른다. 태조 7년(1398)에는 소 도살을 금지하는 ‘우금령’이 내려진다. 저절로 죽은 소만 신고 후 세금을 내고 매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금령이 무색할 정도로 한양에는 수십개의 푸줏간이 성업한다. 물론 가난한 민초에겐 소고기는 오랫동안 ‘불가능의 음식’이었다. ‘이밥(쌀밥)에 소고깃국을 한번 실컷 먹어보는 것’, 그게 6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 서민의 바람이었다.

◆대구, 화려한 소고기문화의 본고장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소고기 관련 식당은 어딜까.

1902년 서울 종로에 등장한 ‘이문설렁탕’이다. 거기는 ‘대한민국 설렁탕 1번지’다.

일제강점기 서울 유명 냉면집에는 한국식 불고기인 ‘너비아니’가 잘 팔려나갔다. 6·25전쟁 직후 대구는 서문시장·북성로·섬유공장 호경기에 힘입어 사장들을 겨냥한 구이문화가 다양한 스타일로 전개된다. 57년 등장한 중구 계산동 ‘계산땅집’은 한때 전국에서 단위 시간당 가장 많은 불고기를 팔았다. 계산땅집을 벤치마킹한 숱한 불고기집이 도심 곳곳을 파고든다. 그 덕분에 대구는 80년대초까지 전국에서 가장 맹렬한 기세의 불고기 고장이 된다.

1961년쯤 중구 동산동 타월골목 근처에서 오픈한‘진갈비’를 축으로 시작된 갈비골목 덕분에 갈비 신드롬이 일어나고 그 전통은 섬유회관 옆 ‘국일갈비’까지 이어진다. 70년대 북구 고성동 ‘대창가든’과 신암동 ‘신성가든’으로 이어진 등심 시대, 90년대 ‘비원’과 2000년대 ‘안압정’ 등으로 갈비살 시대가 열린다. ‘너구리’ ‘송학’ ‘녹양’ ‘묵돌이’ ‘극동’ 등의 뭉티기, 영천 ‘영화식당’ 등에 힘입은 육회, 그리고 동인동찜갈비, 다양한 따로국밥(소피가 들어간 대구식 육개장) 등으로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다양한 소고기문화를 갖게 된다.

◆이젠 소고기 권하는 사회

1950년대까지만 해도 개인이 알아서 도축했다. 서울의 경우 61년 서울 마장동에 현대화된 도축장이 설립된다. 대구에서는 64년쯤 현재 신흥산업이 성당동 못 근처에서 도축업을 시작한다.

70년 경운기, 트랙터 등이 등장하면서 일소의 역할이 많이 축소된다. 식용으로 사육되는 육우가 대량 방출된다. 이젠 수입육의 등장으로 인해 저급육에서부터 고급육까지 주머니 사정에 맞춰 다양한 육질을 즐길 수 있다. 바야흐로 ‘소고기 권하는 사회’다.

2014년 OECD 보고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9번째로 소고기를 많이 소비하고 있었다. 돼지고기까지 합쳐 1년 소비량이 50㎏을 넘어섰다. 이렇게 전국민적으로 소고기를 즐기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소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다.

베일에 싸인 도축 과정은 물론, 한우 구별법, 열번 들어도 돌아서면 헷갈리는 부위별 명칭, 등급판정법, 들쭉날쭉한 1인분 가격…. 소껍질, 우족, 내장, 소뿔 등 내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소. 잘게 해체하면 모두 39파트로 소분할 된다. 소만큼 숱한 얘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가축도 별로 없을 것 같다. 이제 소 한 마리에 얽힌 숨은 사연을 찾아가 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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