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인터뷰] 노상철 단국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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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7 08:11  |  수정 2017-05-27 08:12  |  발행일 2017-05-27 제22면
“우리나라 노동자 작업환경 참담…기업, 정보 공개않아 제대로된 역학조사 힘들어”
“유해물질 피해 근로자 産災 年 7천건 불과
의료기록 등으로 추정해보면 최소 100만건
20170527

“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사망 사건과 메르스 사태 때 보여준 삼성의 모습에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중시하는 기업 윤리를 느낄 수 있습니까.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엔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돼 있습니다.”

지난 24일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노상철 충남농업안전보건센터장(단국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을 만났다. 경주 출신인 노 교수는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 백혈병 사망사건, 2006~2007년에 걸쳐 노동자 15명이 돌연사했거나 암 질환 등으로 사망한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 사망 사건 등 직업병과 관련된 여러 역학조사와 산업재해 심사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최근에는 농약 안전 문제와 충남 화력발전소 주변 주민 건강문제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유해물질 피해 근로자 産災 年 7천건 불과
의료기록 등으로 추정해보면 최소 100만건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과·보상에 8년 걸려
사용물질 정확한 정보는 여전히 공개 안해
中企는 상황 더 열악해도 실태파악도 못해

産災 신청땐 해고 우려해 아파도 참고 다녀
기업·대도시 중심구조, 국민 무관심도 한몫
선진국은 관련기업 불매운동으로 엄격 징벌
처우개선 위한 사회적 합의 이뤄야 할 시점”

◆“직업병 발생원인 찾기위해 기업 협조가 필수적”

노상철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한마디로 ‘참담하다’고 표현했다. 특히 기업들이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제대로 된 역학조사를 벌이기도 힘들다. 노 교수는 “2007년 고 황유미씨의 백혈병 사망 이후 삼성 측의 사과와 보상이 나오기까지 8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그럼에도 삼성반도체 사용물질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여전히 비공개 상태”라고 주장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역학조사 당시 삼성반도체 내의 사용 물질에 대한 물질안전보건정보(MSDS)를 삼성반도체 측으로부터 받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물질들엔 어김없이 ‘영업기밀(Trade Secret)’이란 표기 아래 전혀 알아볼 수 없게 돼 있었다. 반면, 미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애플의 경우 홈페이지를 통해 모든 제품에는 인체 유해 물질이 포함돼 있지 않음을 증명하는 확인서를 볼 수 있다.

노 교수는 “직업병 발생 원인을 찾으려면 정보 공개와 기업 협조가 필수적인데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이런 부분이 이뤄지지 않는다. 제도적 뒷받침이 안 되는 건 말할 것도 없다”며 “삼성 정도의 대기업이 이 모양인데 다른 중소기업들의 작업환경은 훨씬 더 열악하고 실태 파악조차 힘들다”고 우려했다.

산재 인정도 쉽지 않다. 노 교수는 “산재 요건 자체가 아주 엄격하기도 하지만, 노동자들도 산재 인정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산재 신청을 하면 회사에서 해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파도 참고 계속 일하는 게 낫다는 노동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국민 무관심이 근본 원인”

노 교수는 이같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국민의 무관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선 전주(전봇대) 감전 사고로 해마다 수십명이 죽는다. 한전의 하도급업체 직원이 작업 중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유는 안전을 확보하지 않고 작업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 교수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 주변 전기를 완전히 끊고 전주 수리 작업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하면 주민들이 온갖 불만을 토해 낸다. 노 교수는 이를 두고 “우리 사회의 잔인한 단면”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노 교수의 지적은 전주 전기공사 시 안전문제로 지적돼 온 ‘직접 활선공법’을 의미한다. 활선공법은 전기가 흐르는 상황에서 작업할 수 있는 공법으로, 공사 시 정전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까지 25년간 도입됐다. 하지만 활선공법으로 인한 감전 사고가 적지 않게 발생하면서 한전은 새로운 공법 개발에 착수한 상태다.

현재 한전은 전기공사 단가계약 업체들에 전선에 직접 접촉하지 않는 ‘바이-패스(By-pass Cable) 공법’을 사용토록 지시했다. 바이 패스 공법은 지상에 바이패스케이블을 설치해 전기를 바이패스 케이블로 우회시킨 후 작업하는 공법이다. 하지만 직접 활선 공법이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다.

노 교수는 “외국 선진 기업들의 높은 윤리 의식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 제도는 결국 소비자라는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유럽 같은 선진국은 기업 윤리를 저버리는 기업들을 국민이 불매운동 등으로 단호하게 징벌한다. 하지만 백혈병 사건으로 삼성전자의 매출이 줄었다는 얘길 들어본 적 있는가. 내부 고발자는 오히려 왕따 당하는 게 우리나라”라고 지적했다.

농민들의 작업 환경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노 교수는 “요즘 하우스 농사를 많이 짓기 때문에 제철 과일인 딸기나 수박 등을 1년 내내 먹을 수 있다. 농민들이 1년 내내 일해야 한다는 의미도 된다”며 “하우스에서 자란 농작물은 비바람과 병충해를 이기고 자란 건강한 농작물이 아니라 농약에 의지해서 자란 농작물”이라고 말했다.

노 교수는 “결국 소비자는 안전하지 않은 음식을 소비하고 농민들은 과로와 농약 사고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형성된 것”이라며 “이 악순환의 최종 수혜자는 농민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농협, 농약을 판매하는 글로벌 기업들, 그리고 판매·유통을 담당하는 상인들”이라고 꼬집었다.

◆“직업병은 우리 모두의 문제”

화력발전소 문제도 심각하다. 노 교수는 “현장에 가보면 화력발전에 쓰이는 석탄이 언덕처럼 쌓여 있다. 이 때문에 인근 주민들의 집은 시커먼 먼지로 가득하지만 지난 30년간 정부는 물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노 교수는 “화력발전소나 원자력발전소와 같은 유해 시설이 왜 노인들이 많이 사는 농촌 지역에 설치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가령 세월호의 희생자가 경기도의 단원고가 아닌 서울 강남이나 압구정의 학생들이었다면 배를 건져올리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라며 약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노동자·농민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희생 위에 존립하고 있는 이 현실에 대해 고민해야 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며 “의사로서 역학조사나 산재심사 등에 참여해 보면 우리나라의 제도가 기업들과 대도시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점을 느낄 때가 많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노 교수는 특히 직업병은 일부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는 “작업 환경으로 발생하는 직업병은 우리 사회에 ‘탄광 속 카나리아’의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옛날 광부들은 탄광 속의 카나리아가 죽으면 산소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즉시 탈출했다. 따라서 직업병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 자체가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인 셈이다.

노 교수는 “노동 현장엔 유해 물질이 많아 접촉성 피부염에 걸렸거나 피부 껍질이 벗겨진 노동자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도 1년에 산재로 인정받는 건수는 7천 건에 불과하다”며 “반면 의료진료기록과 직업 등을 가지고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산재로 추정되는 건수가 1년에 최소 100만 건 정도”라고 주장했다.

노 교수는 “노동자, 농민들이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있는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서 이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시점이 왔다”며 “국민의 힘으로 정권 교체를 이룬 것처럼 국민이 행동하지 않으면 비윤리적 기업들과 그들을 방관하고 있는 정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지속가능한 노동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아래에서부터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 노상철 교수는 = △1968년 경주 출생 △황남초등·문화중·경주고 졸업 △한양대 의과대학 산업의학 박사 △대한직업환경의학회 실행이사 △충남농업안전보건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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