名品, 난 만들어 쓴다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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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7-09-15  |  발행일 2017-09-15 제면
비싸고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물건 뜻하던 명품
최근 나만을 위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 변화
이화선 사진가, 직접 만든 가방으로 ‘명품族’ 삶
20170915
사진작가이기도 한 이화선씨가 사진작업을 하는 그의 사무실 한편에 놓인 재봉틀로 가방을 만들고 있다. 뒤로 그가 직접 만든 가방들이 보인다.

이화선씨는 젊었을 때부터 유달리 가방을 좋아했다.

“백화점 옷매장을 둘러보면 다른 친구들은 이 옷이 예쁘다, 저 옷이 멋있다고들 하는데 저는 옷보다 가방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천가방부터 가죽가방, 저렴한 가방부터 고가의 명품가방까지 한때는 참 많이 사모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을까 싶은데 그때는 멋진 가방을 보면 그렇게 사고 싶었지요.”

그래서 그의 집 옷장 서너칸은 아직도 가방이 한가득 들어 있을 정도로 많다. 메지 않아 버린 가방이 많다는데도 일반여성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은 가방을 가지고 있다. 이뿐 아니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의 작업실에도 수십 개의 가방이 있다. 마치 가방가게에 온 듯 한 벽면에 대형 가방걸이를 설치해두고 수십 개의 가방을 진열해놨다.

하지만 그 가방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일반 가방과는 좀 다르다. 같은 디자인이 하나도 없고 천가방이 많다. 간혹 가죽가방이 있기는 한데 백화점에서 파는 가방과는 달리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투박한 손맛이 느껴진다. 이 가방들은 이씨가 직접 만든 것이다.

“한때는 명품가방을 꽤 많이 샀는데 지금은 일절 사지 않습니다. 예전에 사놨던 명품가방도 거의 메지 않지요. 무거운 데다 똑같은 디자인의 가방들이 많아서인지 예전처럼 명품가방에 그리 애정이 가지 않습니다.”

이 말 끝에 기자 앞에 내놓는 그의 가방을 보니 얇은 천으로 만든 남색 가방이다. 가벼운 데다 튼튼해서 좋다는 그의 말에 직접 메어 봤다. 크기가 제법 컸는데 천으로 만들어서인지 가볍고 착용감이 좋았다. 물론 이것 역시 그가 직접 만든 것이다. 자신처럼 사진을 찍으러 다니는 사람은 캐주얼하면서도 크기가 큰 천가방이 제격이란 말도 덧붙였다.

한양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한 그는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제가 시집갈 때 재봉틀을 사주셨어요. 결혼하기 전까지 재봉틀을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데도 왜 사주셨는지 의아해했는데…. 근데 결혼해보니 재봉틀 쓸 일이 생기더군요.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저는 식탁보, 쿠션, 방석 등 작은 생활용품을 하나둘 만들기 시작했지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피아노가방, 미술가방 등도 만들었습니다. 이것에 재미가 붙어 제 가방까지 만들었지요.”

가방 만들기에 취미를 붙이자 밤을 새워가며 새로운 디자인의 가방을 만들었다. 그즈음 인터넷에 카페, 블로그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가방과 관련한 것도 많았다. 서점에서 책을 사서 보는 것은 물론 카페, 블로그에 회원으로 가입해 가방 만들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했다.

“가방 만드는 재미도 컸지만 가방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비가 너무 싼 것도 제가 가방을 열심히 만들게 하는 자극제가 됐습니다. 가방 크기나 재료 등에 따라 차이가 좀 나지만 몇 십만원씩 주고 사던 가방을 1만~2만원만 들이면 만들 수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가방을 만들다보니 비싼 돈을 주고 가방을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방 만들 천과 부재료를 사기 위해 서문시장을 수시로 다니고 인터넷에서도 재료를 구입했지요. 서울에 있는 가죽파는 시장을 찾아갈 정도로 가방 만들기에 미쳤습니다.”

자신이 만드는 가방은 일반 기성가방과 달리 세상에 하나뿐인 것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는 똑같은 가방은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계속 가방을 만들다보니 어느 사이 자신이 메고 다니기에는 그 수가 너무 많아졌다. 그래서 가까운 지인이나 정성을 표시하고 싶은 분들에게 가방을 하나둘 선물로 주기 시작했다. 큰돈이 든 것도 아닌데 받는 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그의 정성에 감동하고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가방이라는 희소성의 가치를 알아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연스럽게 수제가방 전도사가 되었다.

취재를 간 날도 이씨는 새로운 가방을 만들고 있었다. 일명 ‘키플링 원단’으로 알려진 키플링 가방을 만드는 원단으로 자신만의 가방을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가방을 만들려면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됩니다. 재봉틀로 박은 뒤 잘못되어 박아놓은 실을 다시 풀어내는 과정을 수차례 거듭할 때도 있지요. 우여곡절 끝에 만들다보니 더 애정이 갑니다.”

가방 만드는 데 이렇게 욕심을 내어서일까. 그의 사무실은 마치 가방공장처럼 보인다. 커다란 재봉틀에 여러 가지 원단, 지퍼, 단추 등이 널려있고 사무실 구석구석에 가방이 쌓여있다. 그의 가방은 대부분 실용성이 강하지만 마치 예술작품처럼 공이 들어간 흔적이 역력한 가방도 꽤 있다. 이씨는 예술성이 강한 가방들로 2013년에는 개인전도 열었다.

명품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명품의 사전적 의미는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이지만 우리에게는 영어의 ‘럭셔리(Luxury)’에 해당하는, 값 비싸고 호화로운 물건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는 사치스러운 물건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런 명품을 하나쯤 가지기를 원했고 그 덕분에 백화점의 명품코너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하지만 최근 호화로운 물건으로 오인되었던 명품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값은 비싸지만 많은 사람이 들고 다니는 것, 남들이 명품이라고 알아주는 것이 아니라 이씨가 직접 만든 가방처럼 비싼 것이 아닌 나만을 위한 가치있는 것, 나에게 큰 만족감을 안겨주는 것이 진정한 명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 W2면에 계속

글=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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