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딸·며느리 “우린 茶人가족”…대구 다도박물관 만든다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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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수정 2017-09-15  |  발행일 2017-09-15 제면
[김수영기자의 ‘脈을 잇는 사람들’] 韓다도대학원 대구분원 박선우 원장과 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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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다도대학원 대구분원에서 박선우 원장 가족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딸 김성현, 손녀 김영현, 박 원장, 손녀 김영원, 며느리 도영애, 손자 김경우.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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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 원장이 가족과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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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김성현씨가 외국인학생을 대상으로 다례교육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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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도영애씨가 태교다례를 시연하고 있다.

누군가는 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티 파티는 영혼의 온천 같은 역할을 해준다. 차를 마시는 동안 우리는 근심과 일을 잠시 잊는다. 바쁜 사람들도 업무를 잊는다. 스트레스는 어느새 사라지며 감각은 깨어난다.”

<사>한국다도대학원 대구분원 박선우 원장(65)은 대구를 대표하는 차인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차를 즐기기 시작해 98년 ‘청운다례원’을 열고 본격적으로 차 지도자 활동을 시작해 대구와 경북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차인이다. 현재도 한국다도대학원 대구분원을 총괄하면서 후진양성에 진력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전국을 돌아다니며 우리 차의 우수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쁜 그가 2년 전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빠짐없이 하는 일이 있다. 남들이 보면 별것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바로 딸, 며느리와 함께 차를 마시며 다례를 교육하는 것이다. 딸 김성현씨(36)와 며느리 도영애씨(35)가 박 원장의 대를 이어 차인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30여년 차와 함께한 어머니의 삶 이어
10여년 ‘제자의 길’ 공대생 출신 며느리
4년前엔 피아니스트 딸도 서울서 귀향
2011년 문 연 다도대학원 대구분원서
茶 지도자로 다례교육 등 차문화 전파

월요일 저녁이면 茶談…교육 겸한 소통
손주까지 3代 자연스러운 화합의 시간
시민들과 차 역사·우수성 나누고 싶어
최근엔 다도박물관 건립 위한 부지 매입

“아주 급한 일이 없으면 무조건 모여서 한두 시간 차를 마시고 교육도 합니다. 딸과 며느리에게 다례를 가르치기 위해 마련한 시간이지만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는 귀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편도 시간만 나면 와서 듣습니다.”

오랫동안 차인의 길을 걸어왔던 그는 많은 후진을 양성했지만 10년 전 며느리가 제자로 들어왔을 때 기분이 남달랐다. “어느 날 아들이 결혼할 여자라며 며느리를 데려와 인사를 시켰습니다. 4년 동안 사귀었다며 소개시켜 주는데 두말 않고 결혼을 승락했습니다. 며느리의 얼굴이 참 고왔지요. 예쁘기도 했지만 고운 품성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박 원장은 늘 믿음이 가는 행동을 해온 아들에 대한 신뢰가 컸기 때문에 며느리 될 사람도 당연히 좋은 이를 데려오리라 생각했고 그 믿음이 역시 맞았다. 특히 인사를 하러온 며느리와 차를 마시며 “다례를 한번 배워 보겠느냐”고 물었을 때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배우고 싶다”고 말한 며느리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고와 보였다.

“그래서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되니 태교다례부터 배우라 했고 결혼 전부터 시간날 때마다 와서 배웠습니다.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것이 불편할 텐데 전혀 그런 내색없이 잘 따라했지요.” 이런 박 원장의 설명에 며느리 도씨는 “공과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다례를 배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애할 때 남편에게 어머니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다례를 배우는 것이 크게 낯설지 않았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인 차인의 길로 들어설 결심을 하게 됐다. 시어머니가 차인의 길을 걷는 데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화답했다.

도씨는 사범과정, 다도대학원은 물론 차지도자가 되기 위한 최고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사과정까지 마치고 시어머니가 이끄는 다도대학원 대구분원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며느리가 차생활에 푹 빠진 것을 보면서 역시 차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 박 원장은 딸에게 다시 한번 과감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인 딸 김씨는 중학교 때 호주로 유학을 가서 피아노를 깊이 있게 공부한 뒤 귀국해 서울대 음악대학원을 졸업했다. 교수를 목표로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활동했으나 인연이 쉽게 닿지를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박 원장은 4년 전 딸을 불러 속내를 털어놨다. 남편의 반대가 거셌지만 그는 딸에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밝혔다.

“네가 오랫동안 피아노 공부를 했으니 교수가 되면 가장 좋겠지만 세상이 바람대로만 되지는 않는단다.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보다는 그저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인데 너에게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한다. 강요는 하지 않지만 어머니의 가업을 시누이와 함께 이어갔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이 말에 딸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다시 고민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고 내가 원하는 삶인가.’ 처음에는 어머니의 말씀이 그렇게 가슴에 깊이 와닿지 않았는데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니 어머니의 판단이 현명하다는 답에 이르게 됐다.

딸 김씨는 “어머니가 예전부터 외국에 나가실 때 저를 데리고 가서 통역 등의 일을 시켜 차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또 어릴 때부터 늘 차를 마시고 다례를 가르치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에 이에 대해 친근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로 살 거라 믿었기 때문에 내가 차인의 길을 걸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늘 어머니를 자랑스러워하던 김씨는 문득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어머니에 대해 기억하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녀에게 최고로 자상한 엄마였지만 김씨에게는 차인으로서 활동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 기억에 강하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입니다. 늘 인자하고 목소리 높여서 저희를 꾸중한 적이 없었지요. 좋은 어머니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국을 대표하는 차인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를 따라 외국에 나가서 활동하시는 모습을 보고는 집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내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멋진 한국의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차인으로 살아가는 어머니의 멋진 모습이 좋았고 어머니를 도와 가업을 이어간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 한국의 전통문화인 차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그래서 김씨는 어렵지 않게 모든 것을 접고 대구로 내려와 어머니에게 다례를 배웠다. 그 역시 며느리 도씨처럼 차 지도자가 되기 위한 모든 과정을 마쳤다.

박 원장은 딸과 며느리가 있어 든든하기도 하지만 아직 이들의 배움이 짧은 상태라서 걱정도 많다고 했다. 제대로 차생활을 하려면 10~20년을 배워야 되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박 원장의 설명이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딸, 며느리와 함께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다례를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교육이 목적이지만 이를 통해 가족 간에 소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더욱 좋다.

“개인주의가 확산되다보니 가족이 만나도 같이 놀거리를 찾지 못해서 밥만 먹고 각자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많지요. 같이 있어도 대화를 하기보다는 TV 등을 보면서 각자의 세계에 빠져듭니다. 하지만 차를 마시면 자연스럽게 대화의 시간이 길어지고 어린 아이들도 같이 즐길 수 있습니다. 손주들도 어릴 때부터 차를 마셔서 3대가 같이 차를 즐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 원장의 말에 며느리 도씨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차를 마시다보니 일반 음료보다 차를 더 좋아한다. 때때로 직접 차를 우리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다례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기회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이날 인터뷰 때도 박 원장의 손녀 김영현(8), 손자 경우(7), 손녀 영원(5)이 동석을 했는데 차 마시는 것을 아주 즐거워했다. 영현양은 “차맛도 좋고 차를 우리는 것도 재미있다”며 “집에서도 아빠, 엄마와 자주 차를 마신다”고 했다.

딸 김씨도 가족들이 모여 같이 차를 마시는 시간을 귀하게 여겼다.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평소 마음 속에만 넣어두고 하지 못했던 말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도 깊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박 원장은 이런 딸과 며느리 덕분에 다도대학원 대구분원이 더 탄탄해질 수 있었다는 말도 했다. 2011년 문을 열었는데 현재 100명 가까운 학생이 수업을 듣고 있다. 차 교육을 하는 곳이 많은데도 매년 이 정도의 학생 수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딸이 대구분원 실장을 맡아 살림을 잘 살아주고 있고 며느리는 강사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요.”

이런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박 원장은 최근 차와 관련한 더 큰 그림도 그리고 있다. 다도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부지는 매입해 놓은 상태다. 취재를 갔을 때 다도대학원 2층 건물에 가득 들어차있는 세계 각국의 찻잔을 비롯해 차와 관련한 물건을 보고 앞으로 이를 어떻게 관리할지 걱정이 살짝 들었는데 박 원장의 계획을 들으니 이해가 됐다.

“강원도, 전라도 등 여러 지역에 다도박물관이 있는데 아직 대구에는 없습니다. 30여년간 차생활을 하면서 모아온 차 관련 자료가 엄청나게 많은데 창고 속에만 머물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민들이 함께 보면서 차의 역사와 우수성을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딸과 며느리가 저와 같은 길을 걷고 있으니 제가 만들어놓으면 애들이 잘 이끌어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 원장의 말에 딸과 며느리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가 그동안 활동해온 모습을 봐왔고 차생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힘이 닿는 대로 어머니를 돕고 싶다는 의지도 보였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닙니다. 차에는 우리의 정신, 역사가 모두 담겨있습니다. 이런 차를 딸, 며느리와 함께 즐기고 계승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입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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