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도가의 정신문화 가치…욕망 가득한 세상에 전하는 ‘생명존중사상’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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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8   |  발행일 2019-11-08 제34면   |  수정 2019-11-08
[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정윤근 홍익인간생명사랑회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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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근 홍익인간생명사랑회 공동회장은 매주 목·금·토요일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 내 서당체험관인 구산의숙에서 관람객을 위해 서예, 역사 등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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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근 홍익인간생명사랑회 공동회장의 집필실 한 쪽 벽에는 한민족 국운융성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세계역사연대기 포스터가 부착돼 있다.

드디어 나는 시인이 되었다. 시적 가치가 사회의 모순을 보게 만들었다. 군부독재란 모순과 싸우게 된다. 사람과 싸우는 건 얼마나 허망한가. 하지만 잘못된 구조와 싸우는 건 명분있다. 나는 술잔에서 조금씩 벗어난다.  1987년 6월 항쟁. 내 피도 들끓었다. 부산지역 데모대들은 자갈치시장 쪽 남포동파출소를 부수면서 시청으로 항진 중이었지만 경찰 저지선은 넘지 못했다. 하지만 6월이 지나고 정부는 국민에게 무릎을 꿇었다.  대청동 공원은 뒷날 ‘민주공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부산시는 그 운동 참여자의 증언을 수집했다. 많은 이들이 증언을 보냈다. 하지만 나는 동참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나는 ‘아직 민주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고를 쓸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지금도 내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법을 무시하는 또 다른 법의 질서가 반민주적으로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불끈해진 민주화의 혈기는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와 함께 현실로 퇴각하고 있었다.  글솜씨 덕인지 이런저런 출판일에 많이 간여를 한다. ‘월간 바다’와 시사평론집 ‘열린소리’를 냈고 출판사까지 차린다. 이념서클이 아닌 내 방식의 공부방도 꾸렸다. 그때 공부하러 들어온 후배가 바로 훗날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주동자인 문부식과 김은숙이다. 대통령이 되는 노무현 변호사도 지척에서 보게 된다. 


詩문화운동은 정신문화 운동으로
어긋난 명예·권력 환멸, 삶 방향 터닝
20여년 무림의 인생 정리한 시집 발간
도가 서적 독파, 지리산 도인들과 교류


1975년 지방의 첫 시(詩)전문 문학지라 할 수 있는 ‘남부의 시’를 창간한다. 지금은 ‘부산시인’으로 제호를 바꿔 부산시인협회가 계간지로 발행하고 있다. 나는 시인협회 사무국장이었다. 월간지 열린소리 창간호 특집으로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었다. 이적 잡지로 찍혀 자진 폐간된다. 그때 친일문학론을 쓴 임종국 선생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가 실린다. 이후 여러 민주세력과 교류했지만 그들의 어긋난 욕망, 명예, 권력 등이 정치적으로 희화화되는 것을 보면서 환멸을 느끼게 된다. 나는 정신세계로 삶의 방향을 터닝한다.

20여년   무림계의 삶을 정리한 시집을 96년에 펴낸다.  ‘티끌세상 하늘보기’란 시집이다. 모친 변석수 여사를 위해 고희연을 겸한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지금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고는 있지만 언제 출판 될지는 모르겠다. 시집 제목은 정해 놓았다. ‘왕궁(王宮)과 누항(陋巷)’.

그 무렵 도가(道家)에 관한 다양한 서적을 독파하고 관련 인사들과 교류한다. 지리산은 한국 도가의 정맥을 이어오고 있는 곳으로 여러 도인이 살고 있다. 그 무렵 연정원을 만든 봉우 권태훈 선생의 도학에 관심을 가지고 ‘단학요결’을 통독하고 그 수련법을 체득하였다. 경남 하동군 지리산 삼성궁의 궁주인 한풀선사도 부산 시절 조우하게 된다.


IT맨 활동
80년대초 韓전자공업회 월간지 기자
과학정보 섭렵…전자산업 미래도 고민


서울 남산 아래 회현동에 무역회관 건물이 있었다. 80년대 초 무역회관 13층 남쪽 창가에서 바라보이는 남산의 봄 진달래꽃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 무렵 나는 한국전자공업진흥회 자료조사실 월간지 기자였다. 대한민국 전자공업 발전의 초석이 된 잡지다. 당시 상공부와 관련된 단체였는데 전국에서 올라오는 전자업계의 현황, 해외 동향 정보들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일이 내 임무였다.

5년간 수많은 과학 정보들을 섭렵하면서 한국 전자산업의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 이후 ‘학생과학’ 편집장도 6개월간 맡았다. KBS가 주최했던 국제우주박람회도 취재했다. 아폴로 우주선 부선장이었던 리차드 고든 2세의 방한이 이루어졌다. 우주공학자였던 조경철 박사를 단독 인터뷰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 무렵 일본 과학정보의 입문서 역할을 했던 시리즈물 50여권이 전파과학사에서 출판된다. 그 정보를 학생과학에 많이 게재했다.


전라도 동이학교 시절
동학 2대 접주 전봉준의 고향  ‘정읍’
생명살리기운동 전개‘동이학교’설립
일반인에 역사교육·유기농산물 재배


90년 후반 나는 부산을 떠나 전라도 내장산 정읍으로 거처를 옮긴다. 전북 정읍은 백제가요 정읍사의 고향. 동학의 2대 접주 전봉준의 고향이다. 내장산 옆에 북쪽으로 작은 산이 하나 붙어 있는데, 그게 삼신산이다. 삼신산 북쪽 골안에 갱정유도의 도인들이 은거해 살았다. 그 산 아래 오부 능선쯤에 ‘온조우(溫祖宇)’란 이름의 국조전이 있었다. 주인은 박문기. 온조우에는 역사 이래 통치자들의 명패가 걸려있다. 환인을 시작으로 조선 임금 이름까지.

박문기는 ‘대동이’라는 역사서를 쓴 농사꾼 역사가다. 그의 할아버지는 정읍에 본부를 둔 보천교(교주 차경석)의 간부였다. 신정리가 바로 그의 고향이다. 박문기는 나와 몇 년간 교류하면서 ‘동이(東夷)학교’를 함께 만든다. 산 아래 넓게 꾸려진 백학관광 농원이 본부였다. 거기서 5년간 교무 역할을 했다. 일반인을 위한 역사학교를 개강하였다.


또한   그곳에서   유기농산물을 재배 생산했다. 생명살리기운동으로 전개하기 위해 ‘한국양명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쳤다. 방문객을 위한 황토방 15개를 운영할 정도로 힐링의 장소였다.


특히 도인 등 숱한 내공파들이 여기서 고담준론을 펼쳤다. 그때 만난 일초 이동엽을 잊을 수 없다. 그는 전주 태생으로 전북대 검도부 주장을 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전주를 떠나지 않은, 문무를 겸전한 전라도의 협객이었다. 몇년전 타계해 전국 도인들이 무척 애도했다. 


서울에서의 대회전
한국 고유의 정신수련 자료 정리·보급
전통자연의학 전파 전국순회 민중의술
민족역사문화운동, 남북행사로 이어져


2003년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국내 정신운동의 한 지평을 연 출판사 정신세계사. 종로구 창덕궁 근처에 있던 정신세계사는 사업을 확장하여 정신세계원을 병행했다. 나는 기획위원이라는 이름으로 원장 송순현과 인연을 맺어 왔다. 월간지 정신세계에 한국양명회 본부를 두고 생명문화운동을 병행했다. 그때 ‘세계기문화축제’에도 참여한다. 그것을 계기로 한국 고유 정신수련에 관한 자료들을 정리·보급할 수 있었다.


이 무렵 전국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민중의술살리기 국민운동본부가 태동한다. 황종국 울산지방법원 판사가 ‘의사가 못고치는 병은 누가 고치나’라는 책을 출판한 직후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민족전통의학의 계승발전이야말로 국내 의학계 변화는 물론 국민건강에도 절실하다’고 주창했다. 그의 인식은 곧, 내 인식이었다.


나는 부산시절 국내 최초의 자연의학을 전문으로 표방한 건강서적 ‘건강만세’의 창간 편집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때 침, 뜸, 자석, 단식, 단전호흡, 죽염 등에 정통한 ‘내림 의학자’들을 기사화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돌팔이 무면허 의료인이었다. 여러 번 고발을 당해서 맘 고생이 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통해 병을 고친 수많은 환자들이 있었다. 우리는 부산 이사벨여고 대강당에서 강호 자연의학자들과 창립대회를 열었다. 나는 총감독으로 광복 60주년 기념 전국순회 민중의술 행사를 열었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지금도 이 활동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존 현대의학계가 통합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자연의학을 대체의학이란 방식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건 대단히 잘못된 처사다. 한민족 고유한 전통자연의학이야말로 우리 의학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2010년 들어서  ‘민족역사문화운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한다. 한민족운동단체연합 공동대표의 한 사람으로 3·1절, 광복절, 개천절 행사 등에 참여 중이다. 천제를 지내는 이 민족행사가 뒷날 남북공동행사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부도 이 세 행사를 세종문화회관에서 거행한다. 우리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행사를 치렀다.


홍익인간생명사랑회
정월절·단오절·칠석절·중양절·수장절
홍익인간생명·다물흥방단과 천제 봉행
삼월삼짇날은 ‘민족방풍대동제’거행


나는 현재 서울 종로 낙원상가 근처에 거처를 정했다. 거기서 한민족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난 천도교 수운회관, 탑골공원과 인사동, 종묘 등이 산재한 있는 낙원동 언저리를 또 다른 한민족의 소도(蘇塗) 중 한 포인트로 믿는다.


나는 지금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나와 뜻을 같이하고 있는 양상규와 함께 홍익인간생명사랑회를 이끌고 있다. 몰생명세상에 생명존중사상을 전파 중이다. 그게 진정한 ‘영성독립운동’이 아니겠는가. 홍익인간생명사랑회는 다물흥방단과 함께 정월절(음 1월1일), 삼진절(음  3월3일), 단오절(음 5월5일), 칠석절(음 7월7일), 중양절(음 9월9일), 수장절(음 11월11일) 맞이 천제를 봉행한다. 삼월삼짇날은 ‘민족방풍대동제’를 거행한다. 일련의 행사에 50여개 단체들이 맘을 보탠다. 대주제는 ‘홍익인간·재세이화·국운융성·국태민안·세계평화’다.   오는 11월 11일 오후 6시 창덕궁 앞 돈화문국악당 공연장에서 열리는 심청가 판소리 공연인 ‘심청, 아버지 눈을 뜨게 해 대한의 산하, 평화세상을 본다’도 우리의 맘이 녹아 있다.


내가 모시는 한 어른이 있다. 다물흥방단의 총재인 구산 목영덕이다. 다물(多勿)은 고려말로 ‘옛 땅을 되찾는다’는 의미. 구산은 선불유도에 회통한 어르신이다. 그밖에 청송 오의권, 태을 삼진인 최돈정 어른도 ‘영적민주주의’를 창도해나가는 분이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은 현재 인류 문명사에 가장 귀한 말이라 생각한다. 원효가 설파했던 화쟁·원융의 실천이 절실한 요즈음이다.


나의 흥은 부산·정읍시절을 딛고 서울 인사동을 주름잡은 숱한 쟁이들과 어울려 훨씬 부드러워지고 배려형으로 익어갈 수 있었다. 만남과 헤어짐, 동반과 배반은 종이 한장 차이 아닌가. 악과 선의 차이 또한 찰나에 불과하다. 나는 늘 51과 49라는 숫자를 대입하면서 산다. 나는 선함 쪽에 서길 바란다. 그러나 악함의 존재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과 함께 가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누군가에게 빚지고 있다. 현재는 과거한테, 그리고 그 어떤 미래도 현재한테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모두 소중하지만 나만 보이면 반드시 비극이 일어난다. 지금 시국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갈 것이다. 그것 또한 작은 애국이길 바랄 뿐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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