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비발디의 '사계'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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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31   |  발행일 2020-01-31 제38면   |  수정 2020-01-31
새소리·폭풍·눈·수확…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얻은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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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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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기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나 라스코 동굴의 벽화 등 수많은 벽화들이 발견되면서 선사시대의 인간이 지속적으로 동물을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과 관계를 맺으며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사시대의 유목민들은 농업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으므로 사냥에 의존했고, 그들에게 사냥의 성공 여부는 생존의 문제이며 그들의 생활 철학과 종교는 자연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자연이 주는 기쁨과 고통을 경험하며 기쁨은 더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기 바라는 염원을 갖고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자연관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진화했고 그것은 예술의 진화와 연결된다.

'사계'를 작곡한 비발디가 살았던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자연관을 갖고 있었을까? 비발디는 167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태생이므로 17~18세기 이탈리아의 상황을 잠시 들여다보자. 중세 시대의 암흑기를 지난 유럽인들은 르네상스 문화 운동을 만나게 되었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르네상스는 눈부신 과학 기술의 발전을 이루며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코페르니쿠스(1473~1543, 폴란드의 천문학자)의 '지동설'과 같은 새로운 발견은 신의 영역이었던 자연을 인간이 정복할 수 있다는 자연관으로 변화시키고 교회 중심의 신본주의 사상에서 이성적, 과학적 세계관으로 옮겨놓았다. 비발디가 살았던 베네치아는 항구 도시로 유럽 무역의 중심지가 되어 경제적 부흥기를 누렸고, 이런 풍요는 자연과 예술에 대한 동경으로 연결되었다. 베네치아 회화의 창시자라 일컬어지는 조르조네(1477~1510)를 필두로 한 많은 화가들의 풍경화가 베네치아 상류층의 후원으로 제작되었고, 18세기 경에는 '전원 문화'가 유행하여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인들은 인간의 지성으로 자연을 인식하고자 하였고, 바사리의 "예술은 대개 자연의 모방"이라는 표현처럼 당시의 예술은 자연에 의존하고 있었다. 음악에서 이러한 경향은 '감정의 표현'으로 발현된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은 작곡가나 연주자 자신의 감정 표현이 아니라 '청중 편의 감정'에 중점을 둔 것으로 청중을 감동시키기 위해 감정의 여러 측면을 음악적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바로크 시대 음악 미학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 같은 음악은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의 표현, 다수의 청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성이 중요하므로 당시 작곡가들은 많은 기법을 발전시키고 또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였는데, 그 중에서 묘사적 음악이 상당히 인기를 끌었다. 비발디는 1718~1720년에 만토바 궁정에서 활동하였고, 여기서 작곡가는 청중들이 특히 이 묘사적인 음악에 크게 매료되는 것을 경험한다. 새의 지저귐, 바람, 폭풍우, 사냥 등이 주로 선호되는 주제였고 이런 점이 '사계'(1725년에 완성)를 작곡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비발디의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제목의 4개의 곡, 그리고 각 곡이 3개의 악장으로 나눠져 총 12개의 곡으로 구성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작곡가는 여기에 사계의 변화를 노래한 소네트를 첨부하여 자신의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였다. '사계'의 소네트는 창작자나 창작 시기가 알려져 있지는 않고 비발디의 선택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다소 추상적인 기악 음악에 텍스트를 사용하여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을 목적으로 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발디는 악보에 소네트를 세세하게 기재해 연주자가 정확히 자신의 의도를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야 청중들이 작곡가의 의도를 잘 느끼며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곡인 '봄'의 1악장 악보에는 '봄이 왔다'라는 시의 도입부가 적혀 있다. 그리고, 바이올린 독주의 첫 부분은 '새의 노래하는 소리(Canto de gl' Uccelli)'라는 지시문으로 시작하여 연주자는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연상할 수 있도록 연주한다.

현악 오케스트라가 이것을 모방하고 또 여러 파트의 연주자가 이 부분을 입체적으로 연주하게 배치하여 여기 저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처럼 들리게 하였다. 이처럼 소네트를 첨부하여 봄은 새소리, 산들바람, 시냇물 소리, 천둥과 번개 등의 자연 묘사를 통해 봄의 환희를 표현하였다. 여름은 뜨거운 무더위, 폭풍, 자연 재해를 묘사하면서 자연의 숭고함과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가을은 수확을 기뻐하는 농부들의 축제, 사냥 장면, 도망가는 짐승들, 뿔피리 소리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겨울은 추위나 눈보라 같은 위압적인 자연 현상을 표현하기보다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자연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당시의 자연관을 읽을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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