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닥친 큰 파도에 "배가 넘어갈지 모른다" 공포 엄습

  •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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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18   |  발행일 2020-02-18 제11면   |  수정 2020-02-18
매일 밤바다 누비는 어업지도선 영덕누리호 탑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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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불법어업 지도선 '영덕누리호' 우병철 선장이 취항 후 최악의 기상조건에서 야간운항을 마친 소감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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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군이 어렵게 한 척 보유한 다목적 어업지도선 '영덕누리호'(56t)는 길이 28.25m, 너비 5.4m의 선체에 워터제트방식 추진기 2대와 최신 전자장비가 장착돼 있다. 지난해 12월4일 강구항에서 취항식을 가진 이후 선장을 포함한 4명의 승선원이 거의 매일 불법어업 지도단속을 위해 영덕 연근해 해역을 운항하고 있다. 최근 대게 불법조업이 잇따르고 있어 해상 단속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영남일보가 영덕누리호에 승선했다.

알파레이더·선박자동식별장치…
10여종 전자장비 조타실서 작동

파고 0.5~1.5m 일기예보와 달리
출항 30여분만에 상황 최악으로
큰 파도에 조타실 물건들 쏟아져

조업어선 거의 없어 단속은 허탕
취항후 두 달여간 선장 포함 4명
불법어업지도 16회 등 활동 분주


◆순조로운 출항

지난 11일 오후 6시 울진해경 강구파출소 앞 계류장. 출항을 앞둔 영덕누리호는 다른 어선에 비해 눈에 확 띌 만큼 당당하고 멋진 모습이었다. 이날 출항계획을 잡은 것은 최근 포항쪽에서 출발한 일부 통발어선의 야간 불법조업이 더욱 심해졌기 때문이다. 누리호의 야간운항이 많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단속운항 경로는 강구항을 출항해 동쪽 방향 20마일 끝까지 직선으로 나간 후 북쪽으로 올라가 다시 돌아오는 역 'ㄷ'자형 코스다. 이날 파고는 0.5~1.5m, 풍속은 4~6㎞/h로 예보됐다. 풍향은 남남서방향이다. 30년 경력의 우병철 선장(61)은 "기상청 예보대로라면 바다날씨가 최근 들어 운항하기 가장 좋은 날"이라고 했다. 영덕누리호에는 우 선장 외 경력 23년의 이인호 기관장(44)과 윤찬영 항해사(29)가 승선했다.

부드럽게 전해지는 디젤엔진 소리를 들으면서 좁은 계단을 통해 선장이 있는 2층 조타실로 올라갔다. 해수면 위 약 4m 높이에 있는 조타실에는 레이더 모니터를 비롯해 디지털로 표시된 각종 전자장비가 즐비했다. 우 선장이 아기 달래듯 조심스럽게 배를 움직여 강구항을 벗어나자 윤 항해사가 키를 잡았다. 선장과 기관장은 속도를 12~13노트로 맞췄고 누리호는 파도거품을 토해내며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조타실에는 알파레이더와 AIS(선박자동식별장치), DGPS플로터(위성항법정보시스템) 등 10여종의 전자장비가 작동되고 있었다.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레이더 화면에는 육지와 누리호, 그리고 주변 12~14마일 내에 있는 7척의 크고 작은 선박이 그림으로 표시됐다.

◆최악 기상상황

출항 후 30여분이 지나자 기상청 예보와 달리 배의 흔들림은 심해졌고 파도가 선체를 텅텅거리며 때리기 시작했다. 키를 넘겨받은 우 선장은 조종석에 엉덩이를 밀착시킨 뒤 두 다리를 좌우로 크게 벌려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운전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기자는 앉아 있지 못했다. 육지에서 만날 수 없는 공포감이었다. 귀항 때까지 양팔을 벌려 벽과 손잡이에 의지해 넘어지지 않으려고 꽉 잡고 버텼다. 우 선장은 "오늘 바다는 일기예보와 많이 다른 것 같다"면서 "겨울철 바다는 변덕이 심해 항상 조심하고 있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울진해역으로 운항 중인 동해어업관리단 소속 무궁화 6호(300t)는 무선통신으로 "오늘 날씨가 나빠 조업 중인 어선이 많지 않다"며 누리호 주변의 바다 정보를 알려왔다. 육지에서 10마일 정도 벗어나자 조타실 밖은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암흑천지(暗黑天地), 아니 암흑천해(暗黑天海 )였다. 안전장치가 많은 최신형 선박이라고는 하지만 파도가 어느 방향에서 배를 때리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누리호는 격렬하게 흔들렸다. 배멀미에 대비해 출항 전 붙이기도 하고 마시기도 했지만 그다지 도움 되지는 않았다. 계속된 거친 파도에 '괜히 따라나섰나' 후회가 순간 밀려왔다.

잠시 후 갑자기 밀려온 큰 파도에 누리호 앞부분이 하늘로 크게 들리면서 곧장 좌우 큰 각도로 휘청거렸다. 덜컹 겁이 났다. 조타실 안에 놓여 있는 서류봉투, 삼각자, 수첩 등이 순식간에 와르르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고 일부는 계단을 타고 1층 선실 복도까지 내동댕이쳐졌다. 조타실 내에 있던 인원은 잠시 중심을 잃었지만 모두가 꽉 잡고 기댄 덕분에 별다른 상처는 입지 않았다. 우 선장은 "겨울바다는 항상 일정하지 않고 한 번씩 큰 파도가 오는데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침착한 어투에 우 선장 얼굴을 쳐다봤다. 기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야간 운항할 때가 주간보다 세 배 이상 더 신경 쓰이고 힘들다"고 태연히 말을 이어갔다.

이 같은 큰 파도를 세 번째 받았을 때였다. '아! 배가 넘어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스러웠다. 무게 중심이 낮은 어선과 달리 누리호의 조타실은 마치 흔들리는 장대 끝에 선 것처럼 사방으로 크게 휘청거리며 몸부림쳤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조타실 뒤쪽에 설치된 작은 위치조명등에서 비추는 후미갑판과 워터제트엔진에서 뿜어내는 바닷물뿐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우 선장은 차분하면서도 바쁘게 자동조타장치와 풍향풍속계 등을 보면서 연신 키를 움직였다. 야간운항하는 비행기 조종사처럼 선장은 조타실의 자이로리피터(방향을 표시하는 장치)와 여러 계기판을 번갈아 보면서 운전했다.

◆허탕 친 단속

이때 위치를 알 수 없는 한 해군기지에서 무선으로 연락이 왔다. 누리호의 출항지와 출항시간, 운항목적 등을 상세하게 물었다. 통신을 끝낸 우 선장은 약 17마일 부근에서 조명을 밝히고 있는 어선의 조업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곧장 키 방향을 바꿨다. 거친 파도를 맞으며 어렵게 접근했지만 조업 중인 어선은 저인망어선 이었다. 방향을 다시 북쪽으로 틀었다. 약 2m 높이의 거친 파도 때문에 서핑을 타듯 파도를 비스듬하게 타고 지그재그식으로 조종해 귀항키로 했다.

우 선장은 "오늘은 예상과 달리 바다날씨가 거칠어 어선 조업이 거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취항 당시보다 불법조업이 의심되는 통발어선 수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고도 했다. 최신 장비를 모두 갖춘 영덕누리호는 레이더 화면에 표시되는 모든 의심선박에 대해 우선 무선호출을 통해 조업상황을 파악한다. 그리고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직접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수백t 이상의 대형선박 경험이 있는 선장과 기관장·항해사였지만 정작 56t짜리 누리호의 흔들림과 야간운항은 쉽지 않아 보였다.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밤바다 야간운항을 위해선 체력은 물론 극도의 긴장을 이겨낼 정신력까지 갖춰야 할 것 같았다. 이들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메스껍고 울렁거리는 속을 참고 달래며 밤 9시30분 강구항에 도착했다. 휘청거릴 정도로 다리가 풀린 느낌이 들었다. 우 선장은 "오늘 날씨가 누리호 취항 후 최악의 바다였다"며 사무실에서 기상청 예보를 다시 확인했다. 여전히 기상청은 0.5~1.5m 파고를 예보하고 있었고 기자는 며칠 동안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다.

영덕누리호는 취항 두 달여간 연안대게통발 등 16회의 불법어업지도와 106회의 안전조업지도를 했다. 지난 2일에는 조업금지구역을 위반해 야간 불법조업 중인 포항선적 통발어선을 적발하기도 했다. 출항 때마다 평균 34마일을 항해하면서 총 756마일을 누볐고, 한 번 출항 때마다 평균 2.4시간을 바다에서 보냈다.

글·사진=영덕 남두백기자 dbn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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