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70대 노모와 코로나 이산가족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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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31   |  발행일 2020-03-31 제26면   |  수정 2020-03-31
감염 우려에 가족 생이별
뜻하지 않은 이산의 아픔
안타까운 사연 줄이어
코로나 사태 진정되고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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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별일 없나. 마스크는 꼭 하고 일찍일찍 집에 들어가거라."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흔다섯 노모는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를 한다. 특별히 전할 말이 있어서가 아니다. 당신의 아들이 대구에 산다는 이유, 그것은 마치 자식을 전쟁터에 보낸 것처럼 걱정이 끊이질 않는 모양이다.

장남과 함께 울산에 살던 노모는 15년전 경주에 터를 잡았다. 형이 부업으로 운영하는 펜션을 '당신이 직접 관리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부터다. 하지만 노모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펜션이 있는 마을은 경주의 한적한 시골이다. 그곳은 노모가 성장했던 합천의 고향 모습과 매우 닮아보였다. 풍경은 정겨웠고 사람 사는 모습은 살가웠다. 유난히 콘크리트 냄새를 싫어했던 노모는 경주의 그런 풍경과 사람살이가 마냥 좋았다.

경주로 이사하자마자 노모는 펜션 마당 한편에 텃밭을 만들었다. 이웃의 밭을 빌려 소박한 농사도 지었다. 그 보잘것없는 풍경은, 언젠가 장롱 위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낡은 앨범속의 모습, 귀퉁이가 찢어지고 중간중간 나이테 같은 금이 가있던 노모의 고향 모습과 같아 보였다.

경주살이를 시작한 노모는 갈수록 촌로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고추를 붉히는 따가운 햇살 아래서 땀범벅이 된 노인. 그런 모습이 당신이 살아온 이력이기에 노모는 경주의 생활에 만족했다. 필자 역시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지난 15년 동안 노모에게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외로움'이었다. 아무리 경주의 풍경이 당신의 고향 모습을 닮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타향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가족의 부재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노모의 그런 고민을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한때의 속앓이겠거니 하고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달에 한두 번은 경주를 찾았다. 노모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들어드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 두 달 동안 경주에 갈 수가 없게 됐다. 코로나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이산(離散)은 노모를 더욱 괴롭혔다. 마을 경로당은 문을 닫았고, 이웃집 방문도 거의 할 수 없게 되자 외로움은 몸살처럼 노모를 괴롭혔다. 한평생 겪어보지 못한 불길하고 사나운 고요는,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불안한 존재였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하는 전화는 유일한 낙이었다. 유일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모습이 한없이 애처롭고 먹먹할 뿐이다.

코로나 사태가 악화되면서 뜻하지 않은 이산가족이 늘고 있다. 감염 우려 때문에 왕래를 중지하면서 '코로나 이산가족'이 생이별을 겪고 있다.

대구 시민들은 더 심각하다. 치매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 딸이 한 달 넘도록 면회조차 못하는 사연이 있는가 하면, 꿈에 그리던 손주가 태어났지만 여태껏 품에 한 번 안아보지 못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상(喪)을 당해도 조문조차 하지 못했다는 하소연은 안타깝기만 하다.

"별일 없나. 마스크 꼭 하고 사람 많이 만나지 말거라."

노모의 전화는 오늘도 예외없다. 같은 말을 또 하고 또 하지만 "예" "예"하며 가만히 들을 뿐이다. "일하거라"며 당신 먼저 서둘러 전화를 끊을 땐 죄송스럽기만 하다. 외로움과 불안을 혼자 그렇게 고스란히 감당하는 노모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전히 길과 길은 이어져 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서고 앉고 엎드려 울음을 삭이고 있다. 혹시나 '평생의 이산이 될까' 마음을 뒤흔든다. 이산의 통증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가슴 한편을 짓누른다. 코로나 사태가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랄 뿐이다.백승운 사회부 특임기자 겸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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