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살아있다, 유아인..."충분히 재미있고 가치 높은 좀비물, 그동안 왜 피해다녔는지 모르겠다"

  • 윤용섭
  • |
  • 입력 2020-07-03   |  발행일 2020-07-03 제39면   |  수정 2020-07-03

22
사진제공=UAA

'꼭 살아남아야 한다.' 가족이 모두 여행을 떠난 빈집에 홀로 남겨진 준우는 아버지의 절박한 메시지를 접한 후 어안이 벙벙해진다. 때맞춰 TV에선 뉴스 속보가 긴박하게 이어지고, 아파트 베란다 창문 밖은 사람들과 좀비떼가 어지럽게 뒤엉킨 아비규환의 상황. 곧이어 와이파이, 문자, 전화 등 모든 것이 끊기고 좀비가 창궐하는 아파트에 혼자 고립됐다고 생각한 준우. 랜선 만남에 익숙했던 그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불안과 공포 속에서 생존을 위한 나름의 방법을 모색한다. 유아인이 연기한 영화 '#살아있다'의 준우는 현실에 맞서기보다 순응하며 생존을 도모하는 인물이다. 일촉즉발의 재난상황을 속시원히 해결해 인류의 평화를 지키는 재난영화 속 영웅의 모습이 아닌,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남느냐가 관건인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충분히 재미있고 가치가 높은 이런 장르를 그동안 왜 피해 다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유아인은 그 아쉬움을 달래듯 준우 캐릭터에 디테일을 덧입혀 극한의 위기에 내몰린 인간의 절박하고 막막한 상황을 생생한 연기로 펼쳐낸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는지 인터뷰 내내 미소가 끊이지 않는 그다. 배역을 감당하는 배우가 아니라 배역으로 자신을 창조해가는 유아인의 행보에 더욱 힘이 실렸다.

▶'#살아있다'는 생존과 고립을 다룬 영화다. 한국형 좀비물인 '부산행' '킹덤'과 비교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화를 본 분들 대부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영화라며 좋아해 줬다. 나 역시 정통 좀비물의 장르적 특성을 잘 계승하면서도 배우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차별화됐다는 점을 좋게 봤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청년의 모습부터 그가 극단적인 상황을 마주했을 때 드러나는 다양한 감정 변화, 그리고 전반부를 오롯이 나 혼자 책임져야 했던 부분까지 모든 게 도전이자 숙제였던 작품이다. 확신은 있었다. 좀비 영화들은 많지만 '#살아있다'처럼 연대성이 강한 작품은 없었다는 점에서다. 군더더기 없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한편 새로운 생명력이 느껴질 만큼 인물 내면 깊숙이 들어간 점도 좋았는데, 이야기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독특한 균형 감각이 돋보인 작품이다."

▶평소 좀비물을 좋아하나.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특히 이런 장르에서 느껴지는 영화적 체험과 쾌감을 좋아한다. 이 작품을 선택한 것도 개인적인 기호나 취향 혹은 내가 그리고 싶었던 배우 유아인의 모습이 설령 관객과의 괴리감을 형성할지라도 보다 과감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과가 흥행으로 나타나는 것 못지않게 현장에서 느끼고 싶었던 유의미한 성과들을 보인 점도 나에겐 소중하고 특별했다."


좀비 창궐한 아파트에 생존위한 고립
절박·막막한 상황 다양하게 감정 변화

코로나 현실과 맞물리며 관객 공감대
처음 접한 장르지만 내모습 점검 기회
부담·책임감 느끼고 싶어 작품 선택



▶의도치 않게 작금의 현실 상황과 맞물린다. 그 점 때문에 장르 영화임에도 관객들이 공감을 하면서 보는 것 같다.

"상상의 결과물인 좀비가 현실적이진 않지만 이를 통한 고립과 생존이라는 점에서 현 상황을 은유적으로 또 의미적으로 비교하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영화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코로나가 반갑다거나 고맙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튼 어떤 시기에 개봉하는냐가 참 중요한데 '#살아있다'는 시의성에서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졌다."

▶연기 외적으로 책임져야 할 부분도 많고, 영화 초반 상대 배우의 리액션 없이 블루스크린 앞에서 많은 분량을 혼자 소화해야 했다. 부담스럽진 않았나.

"처음 접한 장르와 작업이라는 점에서 일단 모호하고 불안한 지점이 있다. 게다가 영화 초반을 이 정도로 많이 혼자 끌고 가는 건 요즘 같은 상업영화 구도 안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시도들이 부담으로 작용한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그 부담과 책임감을 느끼고 싶어 이 작품을 선택했다. 예술적이고 진지하지 않더라도 이 작품의 컨디션 자체가 나 스스로를 점검하고 돌아볼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다. 나는 한국영화가 배우를 트레이닝시킬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처럼 대역배우가 보편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 상대배우와 계속 호흡하면서 진정성 있게 사실적인 연기를 풀어낼 수 있다. 블루스크린 작업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상상과 비주얼 라이징에 기반해야 하는 만큼 스킬풀한 뭔가를 필요로 하는 작업인데 솔직히 그로 인한 생소함과 두려움보다는 내가 그 장르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03
사진제공=UAA

▶감독에게 아이디어 개진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인물의 외모부터 스타일링, 어떤 태도로 작품에 임할 것인지에 대한 내 생각과 의견은 언제나처럼 피력했다. 신인 감독님과의 작업을 기대하면서 내가 어떤 적극성을 가져갈 수 있을지를 스스로 시험해봤다. 본 촬영에 앞서 집에서 리허설처럼 찍은 영상을 보내준다거나, 현장에선 다른 배우들과 더 많이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예전 같으면 무척 조심스러워 했을 부분인데 한번 뛰어 넘고 싶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경한다는 이유로 소통을 안하고 닫아 버리는 것보다 영화를 공통된 화두로 삼아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사실 배우들끼리 연기 이야기를 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데 그런 부분까지 공감대가 잘 형성됐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임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아무래도 신인 감독이고 다른 현장보다 선배 배우들이 적다 보니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그만큼 많아졌다. '내 할 일만 잘하자' '나에게 집중하자'는 게 예전의 내 마음가짐이었다면, 이번에는 연기 외적으로 많은 부분을 관여하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개진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조심스러웠다. 창작자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내 의도와는 달리 '아 다르고 어 다르게' 상대방에게 왜곡돼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엔 내 진심이 이러하니 좀 시원하게 소통해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는데 분위기가 나쁘진 않았다."


신인감독과 허심탄회하게 의견 나눠
아집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시도 만족

소년성·순수함 오랫동안 지키고 싶어
예능 출연도 먼저 제의…'마녀 2' 욕심



▶디지털에 친숙한 또 다른 청춘을 대변한 준우는 지금껏 유아인이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현실적인 구석이 있다.

"내가 같은 세대 젊은이들을 표현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모두가 미완의 존재이지만 청춘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법한 찬란함, 빛,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 확실히 과거 시기에는 존재했다. 솔직히 그런 것들을 담아낼 수 있는 대표적인 배우로 인식되길 바라며 집착한 것도 사실이다. 그건 개인적인 기호나 욕심보다 배우라는 측면에서 그려내고자 했던 목표와 지향점이 훨씬 더 강했다는 얘기다. 지금은 그런 강박이 많이 허물어졌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나의 자존감과 연결된다. 이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내가 연기한 많은 인물들이 현실적인 보편성과 그 시대 젊은이들의 모습을 함축적·은유적으로 내포하고 있고, 이를 시적언어로 사용하는 캐릭터들이었다. 반면, 준우는 그냥 현실에 존재할 것 같은, 옆집 청년 같은 인물이다. 기존의 은유적이고 진지한 접근보다는 일단 나부터 편해지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관객들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필모(Filmography)를 통해 상상되던 이미지들을 나 스스로 깨버리고 싶었던 욕망이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살아있다'가 유아인에게 배우로서, 자연인으로서 뭔가 의식의 전환을 마련한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렇다. 배우로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용기와 기회를 준 동시에 내가 품었던 아집을 과감히 버릴 수 있게 해줬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만 그런 건 아닌데 자주 환멸을 느낀다. 그런 감정이 턱 끝까지 차게 되면 이를 해소할 돌파구가 필요하다. 영화 '버닝'을 만나면서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었는데, 이후 과도기를 겪고 난 지금 어떻게 나를 플레이하고 어떤 순간들을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을 좀 크게 하게 됐다. 기다리기만 해선 안되고 나 먼저 유연해질 필요가 있었다. 내가 이제껏 고수해왔던 기준을 무너뜨리고, 선입견을 해체하고, 나의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을 만났다."

▶서른 중반의 나이지만 여전히 꾸러기 같은 천진한 소년성을 유지하고 있다.

"본래 태생이 그렇다.(웃음) 꾸러기까지는 아니지만 워낙 장난을 좋아해서 친구들 사이에선 가장 재밌고 웃기는 아이로 통한다. 그런 애인데 배우 유아인의 그림(이미지)은 그렇지 않다. 내가 피터팬 컴플렉스를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내가 가진 소년성, 순수함 등을 오랫동안 지키고 싶다. 물론 어느 순간 그게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땐 잘가 라고 미련 없이 놓아 줄 거다."

▶예능 '나 혼자 산다'에 출연했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예능 울렁증이 있다. 멋있고 정제된 모습만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에 거기에 부합하지 못하고 잘해 낼 자신이 없어서 그간 예능 출연을 기피했다. 하지만 울렁거리는 그 자체를 보여드리는 것도 꽤 자연스럽고 재밌는 일이겠다 싶더라. 예능에 출연하고 있는 많은 연예인들도 과감하다 할 정도로 자신의 모든 걸 대중에게 드러내고 있지 않나.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다. 내가 어려워하면 대중도 나를 어려워할 것이고, 내가 편하게 다가가면 그들도 나를 편하게 대할 것이다. 그런 기대감들이 작용했다. 무엇보다 '살아있다'와 '나 혼자 산다'가 잘 어울리지 않나.(웃음) 이처럼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연결고리가 생기고, 기회가 주어졌는데 굳이 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출연도 내가 먼저 제안했다."

▶또 다른 장르물에서의 모습을 기대해도 되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고 싶다. 내가 다소 진지한 이미지로 비치고 있는데 좀비물과 마찬가지로 히어로물을 무척 좋아한다. 재미적인 측면을 떠나 그런 영화들이 갖는 의미와 관객들에게 주는 힘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아직은 한국영화의 한계가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만 그 안에서라도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다. '엑스맨' 같은 슈퍼히어로물도 좋지만 보는 내내 부러웠던 '마녀' 같은 영화에서 플레이(연기)하는 내 모습이 정말 궁금하다. '마녀2'를 만든다면 꼭 참여하고 싶을 정도다. 영화 관계자들도 유아인을 달리 활용하려는 시도를 해줬으면 좋겠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우호성의 사주 사랑(舍廊)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