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9단 77세 정동안 무공수훈자회 경북지부장 "전교생을 유단자 만들었죠"

  • 문순덕
  • |
  • 입력 2020-08-05   |  발행일 2020-08-05 제12면   |  수정 2020-09-08
주경야독하며 태권도 배워
베트남전 시범단 근무하기도
제대후 고향서 생활하던 중
금오공고 훈육감 요청 받아
태권도로 학생들 생활지도

2020072801001122200048361
정동안 무공수훈자회 경북지부장이 국기원 태권도 9단 고단자회 연수 교육을 받고 있다. <정동안씨 제공>

정동안(77) 무공수훈자회 경북지부장은 태권도 9단이다.

정 지부장은 고향이 경남 거제도로 부모가 객지에서 생활해 어린 시절 할머니와 생활하면서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고등학교 입학금이 없어서 진학을 포기했다. 한 해를 쉬고 있을 때 서울에서 인쇄소에 일하는 동네 친구의 소개로 서울에 취업했다. 서울에 가면 공부할 수 있으리란 꿈에 2년 동안 착실하게 근무를 했지만, 인쇄소가 너무 바빠 공부를 할 수 없어서 서울 생활을 접고 경남 진해로 내려왔다.

그는 친구의 도움으로 진해 신문지국 수금사원으로 취업한 후 충무상업고 야학에 다녔다. 주경야독한 것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데 등불이 됐다고 한다. 그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태권도 도장을 찾았고, 도장에서 운동할 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는 체중 미달로 입대에 두 번 불합격하고 세 번째에 해병대 하사로 입대했는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배운 태권도 덕을 톡톡히 봤다. 정 지부장은 그것이 인생의 나침반이 될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입대해 1965년 청룡부대 파월 장병으로 베트남에서 1년 동안 태권도 시범단으로 근무하고 귀국했다. 1966년 말에 하사관 교관이 돼 1년 근무 후 1968년에 장교시험에 응시, 소위로 임관하여 김포에서 기동대장, 포항에서 수색소대장으로 근무하다가 1970년 중위로 두 번째 베트남전 근무를 했다. 1971년 귀국해 신병훈련소 작전보좌관으로 근무하다가 1972년 중위로 제대를 하고 결혼을 했다. 제대 후 고향 거제도에 내려가서 3년 동안 예비군 중대장, J.C 청년회, 새마을지도자, 조기축구회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헌신적으로 일했다.

구미 금오공고에서 생활지도를 할 훈육감이 필요하다는 전갈을 받고 1976년 4월부터 1천200명의 학생을 훈육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평상시에는 학생들에게 아버지·형과 같은 이미지로 대했지만, 태권도를 가르칠 때는 엄격했다고 했다. 어려웠던 그 시절, 학생들이 학업과 태권도를 겸비해 사회에 진출하면 도움이 될 것을 생각하고 '전교생을 태권도 유단자로 만들자'라는 계획을 세워 목표를 달성했다. 정 지부장은 "태권도를 통해 생활지도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고 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2000년 6월 교직 생활을 마감한 후 구미재향군인회에 일을 맡아서 지금까지 해 오고 있다. 퇴직 후 구미재향군인회장, 무공수훈자회 구미지회장, 대구경북 해병대 장교회 회장, 구미태권도협회 회장, 경북태권도협회 고단자 심사위원,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봉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평생 태권도를 사랑하면서 살아온 그의 삶은 훈장과 표창장이 말해준다. 인헌무공훈장, 국무총리 표창을 비롯해 교육부 장관·국방부 장관 표창, 국기원 원장 표창, 구미시 문화상(체육 부문), 자랑스러운 태권도인상 등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가족 모두 태권도 유단자다. 정 지부장은 2007년 태권도 공인 9단, 장학사인 큰아들은 5단, 은행원인 둘째딸은 3단, 체육 교사인 막내아들은 7단 등이다.

정 지부장은 "1만1천68명을 태권도 유단자로 만든 것이 평생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문순덕 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시민기자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