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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라라 혁명광장에 세워진 체 게바라의 높이 25m의 거대한 청동상. 그 아래에 '승리할 때까지 영원히'란 구호가 적혀 있다. |
◆체 게바라의 메카 산타클라라(Santa Clara)
바라데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아침 일찍 체 게바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타클라라로 향했다. 혁명의 도시 산타클라라로 가는 길에는 끝없이 넓은 사탕수수밭과 길게 뻗은 길 위로 마차와 쿠바를 상징하는 올드 카 그리고 모터사이클이 뒤섞여 달린다.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체 게바라의 삶을 바꿔버린 특별한 여행을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떠오른다. 그는 이 길을 지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었을까.
39세에 잠든 '혁명의 아이콘'
총탄 자국 그대로 남은 도심
이곳서의 전투가 전세 역전
청동상 자리잡은 기념관과
박물관·무장열차 기념공원
그의 영혼은 이곳에 영원히
시가지 곳곳에 티셔츠 판매
죽어서도 쿠바 돕는 혁명가
쿠바사람이 사랑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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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열차 기념공원은 게바라가 쿠바혁명의 결정적 승기를 잡은 마지막 전투현장으로 기념비와 열차 탈취에 사용한 불도저, 전복된 정부군 화물열차가 전시돼 있다. |
덜커덩거리며 3시간을 달려 인구 25만명의 체 게바라의 성지 산타클라라에 도착했다. 쿠바의 상징적인 인물인 체 게바라가 잠든 산타클라라는 혁명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쿠바 혁명과 체 게바라를 찾아 떠나는 여행자라면 꼭 찾아야 하는 곳이다. 아직까지 마차를 타고 다니며 옛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체 게바라와 혁명사상을 기리는 사람들의 마음만큼은 뜨겁다. 꼭 찾아야 할 명소로는 체 게바라의 청동상이 자리 잡은 기념관으로 체 게바라 박물관과 추모관도 이곳에 있다. 비달 공원, 무장열차 기념공원 등이 있는 산타클라라는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낭을 민박집 카사에 풀고 산타클라라 시내 구경에 나섰다. 희뿌연 매연이 가득 찬 아바나와 달리 산타클라라의 공기는 청량하다. 자동차 대신 우마차나 세 바퀴 자전거를 주요 대중교통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층 더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다. 담백하게 쿠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매력적인 곳이다.
체 게바라를 찾아 나선 여행자에게는 분명 추억의 공간이 될 산타클라라 기차역은 인디펜시아 골목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보인다. 영화 '체 게바라'에서 승리 후 아바나로 진격 중에 민간인 차를 뺏어 탄 부하에게 걸어가라며 슬쩍 미소를 보이던 게바라의 익살스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역 앞 벤치는 수업이 끝난 학생들의 차지가 되어 있다. 역으로 들어선 낯선 여행자에게 조용히 다가온 역무원으로부터 열차정보를 얻고 대합실 의자에 잠시 앉아 승리의 순간을 그려 보았다.
역 광장에서 마차를 타고 산타클라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도심 언덕에 올랐다. 올라가는 길이 꼭 옛 우리 동네 뒷산을 올라가는 듯 차가 다니는 길도 좁아 언덕 중앙에서 마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갔다. 비포장 길과 계단이 정겹고 아기자기하다. 언덕 위에는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조형물과 쿠바국기, 7월26일 정신이 새겨진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산타클라라도 꽤 큰 도시 같다. 쿠바의 혁명이 완성된 곳, 도시 곳곳에 혁명의 흔적이 남아 있어 더 쿠바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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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독립전쟁 중에 전사한 비달(Vidal)장군의 이름을 따서 지은 비달광장 주변은 아직도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리브레(Libre)호텔과 고풍스런 카리다드극장, 학교, 도서관, 시청, 박물관 등 산타클라라의 주요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
◆영원한 승리를 위한 체 게바라 기념관(Memorial Museum Che Guevara)
뜨거운 햇살도 잊고 오토바이 릭샤를 타고 전 세계 청춘들이 열망하는 아이콘이 되어 열광적인 추종자들의 메카가 된 체 게바라 기념관을 찾았다. 야자수 나무들이 주위를 둘러싼 혁명광장에 도착하자 체 게바라의 대형 동상은 그가 이 도시에 입성할 때처럼 팔에 깁스를 한 채 장총을 들고 수통을 차고 있었으며 푸른 하늘을 등지고 초연한 게릴라의 모습으로 산타클라라를 응시하고 있다. 맑은 눈에 검은 베레모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이 눈길을 끄는 체 게바라의 거대한 동상이 나를 맞았다. 높이 25m의 동상 하단 흰 대리석에 '승리할 때까지 영원히'라는 게바라가 1965년 당시 게릴라전을 떠나며 남긴 말이 이제는 그를 기리는 구호로 새겨져 있다.
1987년 세워진 체 게바라 기념관은 사후 30년 만에 쿠바로 돌아온 체 게바라와 그의 동지들의 유골이 안치된 곳이다. 체 게바라 기념관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체 게바라 동상과 공원, 추모관 그리고 박물관이다. 동상과 공원은 넓은 광장 위에 조성되어 있으며 추모관과 박물관은 동상의 뒤쪽 지하에 마련돼 있다. 오른쪽은 박물관이고 왼쪽은 묘소가 있는 추모관이다. 체 게바라와 관련된 기념물을 전시한 박물관과 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추모관이다. 이 두 곳은 모든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정숙한 분위기의 체 게바라와 그의 동지들을 상징하는 불꽃이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다. 기념관에는 체 게바라의 일생을 볼 수 있는 사진과 사용했던 총기류와 군복, 전쟁 중에 쓴 편지와 많은 소품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된 유물은 그의 피와 혁명의 열정 그리고 번뇌가 깃들어 있는 체 게바라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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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라라의 명물이 된 마차는 여행자들의 또 다른 즐길 거리로 한층 더 체 게바라시대로 회귀한 느낌이자 쿠바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어 매력적이다. |
체 게바라 유해가 안장돼 있는 추모관에는 쿠바 민중들을 사랑했던 그의 '혁명 정신은 어떠한 물질적 보상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묘소로 들어가자 정면 앞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고 있고 왼쪽 벽면에는 돌에 새겨진 초상이 박혀 있다. 체 게바라는 중앙에 기둥처럼 약간 튀어나온 초상 뒤에 안장되어 있다. 갑자기 가슴이 울컥하고 찡하게 올라온다. 그의 파란만장했던 일생이 펼쳐진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체 게바라 평전 한 편을 읽은 듯하다. 혁명의 상징이자 청춘의 우상 체 게바라. 그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이곳에 이렇게 있구나. 그는 지금 세계인들에게 혁명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
체 게바라의 매력은 세상에 존재하는 부조리한 권력이나 무력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자유를 향한 열정에 있다. 정치권력과는 거리를 두고 자신이 정한 인생 여정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길을 당당하게 걸었기 때문이다. 붉은 별이 박힌 검은 베레모를 쓴 채 시가를 입에 문 체 게바라는 쿠바 사람들의 진정한 사랑을 받고 그들의 마음속에 늘 39세의 모습으로 살아있다. 소외된 이웃에 무한한 애정을 가졌던 낭만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 이상적인 사회를 향해 열정을 바쳤던 그의 모습은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다.
◆체 게바라의 격전지 무장열차 기념공원
체 게바라의 격전지를 찾아 나섰다. 체 게바라의 격전지인 무장열차 기념공원은 1958년 산타클라라 전투의 핵심인 24명의 혁명군이 400여명이 탄 무장열차를 탈선시켜 전복했다는 곳이다. 그곳에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고, 당시 전투에 사용되었을 불도저가 있다. 또한 1쿡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무기와 사진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기념열차가 있다. 공원 바로 옆 철길에는 공원을 관람하고 있는 동안 열차가 천천히 지나간다. 마치 체 게바라가 이끄는 혁명군 부대가 펼친 역사적 순간의 감흥이 조금은 되살아나는 듯했다.
이 산타클라라 전투는 혁명의 전세를 역전시킨 역사적인 사건이다. 전시된 열차에 들어가자 노획된 무기들, 승리 후 개선장군으로 기관단총을 메고 트레이드마크인 시가를 물고 산타클라라 중심가를 걸어가는 빛바랜 게바라의 모습 등 생생한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미군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의 무기가 혁명군에게 탈취되어 전시된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밖으로 나오자 당시에 철로를 끊었던 노란색 불도저가 전시되어 있다. 역사를 움직인 불도저다. 이 불도저 이상으로 역사를 움직인 건설 중장비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인 만큼 쿠바의 어느 지역과도 특별한 연고가 없다. 산타클라라가 '체 게바라의 도시'로 알려지고 그가 거기에 묻힌 이유는 쿠바혁명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 전투인 산타클라라 전투를 그가 지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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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라라의 오토릭샤는 이곳의 대중교통으로 여행자들이 빠르고 편리할 뿐만 아니라 목적지를 저렴하게 여행할 수 있다. |
관람을 마치고 산타클라라 중심에 있는 비달공원으로 향했다. 시가지 중심에는 비달 광장이 있다. 그때의 총탄 자국이 곳곳에 선명한 건물 사이로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과 여행자 그리고 행상들로 북적인다. 지금은 쇼핑과 문화의 거리로 리브레 호텔 등에 남은 총탄 자국만이 그때의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광장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인 카리다드극장 건물 뒤편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카페테리아가 몰려있어 여행자의 허기를 달랜다. 흥겨운 리듬의 쿠바 뮤직을 라이브로 듣는 즐거움은 덤이다. 시민들과 여행자의 웃음에 마음을 내려놓은 산타클라라의 밤이 익어간다.
길 건너에는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등 체 게바라를 이용한 각종 상품들을 전시한 가게들이 줄을 이었다. 체 게바라는 죽어서도 쿠바를 살리고 있다. 체 게바라는 여전히 쿠바 제일의 관광상품이다. 체 게바라는 쿠바혁명과 관광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또한 쿠바의 어두운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여행자들에게 쿠바혁명의 순결성과 순수성을 보증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니 쿠바인들이 체 게바라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전 대구시 도시철도건설본부장 ymahn11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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