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길을 지키는 사람들(2)…생기 잃은 이 길, 삼총사는 색과 향기로 거리를 채운다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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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8   |  발행일 2020-09-18 제34면   |  수정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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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운영하는 깡통라이브에서 연주하고 있는 배필선 사장(왼쪽). 김광석길 상설공연장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는 최재관 싱어송라이터(가운데). 노래하는 화가 서경태 화가. KS공연예술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김광석 길에 남은 삼총사

김광석길이 조성된 이후 거리가 되살아나면서 건물 임대료가 덩달아 크게 올랐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청년 예술인들이 대부분 이곳을 떠났다. 하지만 그 일부는 그들만의 색으로 거리에 문화와 예술의 향기를 채워가고 있다. 싱어송라이터 최재관(51), 깡통라이브 사장 배칠선, 화가 서경태 등이 바로 그들이다.

1989년 MBC대학가요제 대구동상에 입상하면서 프로페셔널의 길로 들어선 최 싱어송라이터는 20여년을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으며 2017년에는 정규 1집 앨범을 발표한 실력파 통기타 가수다. 김광석과 여러차례 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 생명의 전화 산격복지관에서 모금공연을 진행하고 있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 대구지역 네군데 방송사 라디오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청취자들에게 익숙해졌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청와대 오찬초청 공연에 참가하기도 했다. 최 싱어송라이터는 2009년 김광석길이 조성될 무렵 이 곳으로 들어와 후배 가수인 구본석, 김종락 등과 거의 매일 버스킹 공연을 시작했다. 김광석 거리에 마련된 4곳의 조그마한 공연장에서 공연할 때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김광석길은 사람들로 꽉찼다. 최재관 싱어송라이터는 그때를 회상한다. "지금 통기타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김광석 노래부터 배운다. 통기타를 들고 음악하는 사람들이 김광석길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고 공연한다는 건 그 자체가 기쁨이었다. 정말 행복했다."

배필선 사장은 1989년 스무살 무렵, 직업 가수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룹 '합창의 집'의 코러스로 통기타 스테이지를 시작했다. 1995년 트리오 '블루노트'로 활동하면서 동아기획 러브콜까지 받았지만 팀불화로 팀을 나온 뒤 2003년까지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활동했다. 이후 생업때문에 전업한 배 사장은 2018년 즈음 방천시장에 들어와 막창과 삼겹살을 팔기 시작했다. 생존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한 배 사장은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다고 생업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이 곳에서 장사하면서 노래하는 투잡을 선택했다. 배 사장은 손님이 많을 땐 고기를 굽고 서빙까지 하다가 한 숨 돌렸다 싶으면 곧바로 기타를 들고 공연을 펼쳤다. 그렇게 3년이 흘렸다. 김광석 길 식당 라이브 공연을 활성화시킨 장본인이 됐지만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전국에서 최대 감염자가 발생한 대구는 타의에 의해 고립의 도시가 돼 버렸다. 김광석 거리의 현재 상황은 수치로 증명된다. 대구 중구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지난 1월 한 달간 김광석길 방문객 수는 17만5천292명이었지만 지난 7월 한 달간 4만7천663명으로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같은 기간 근대골목 투어 신청 건수는 67회에서 28회로 줄었다. 배 사장은 임대인과의 재계약을 포기했다. 월세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배 사장은 방천시장을 떠나지 않았다. 비어있던 가게를 찾았고 전보다 적은 돈을 주고 가게를 빌려 깡통맥주집을 차렸다. 그는 지금 그 곳에서 또다시 장사와 가수를 겸업하고 있다. 배 사장은 "코로나 덕분에 깡통맥주집에서 더 열심히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게 됐다. 오히려 전화위복이다"라며 웃었다.

계명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서경태 화가는 2016년 김광석길로 들어와 초상화·캐리커처 샵을 차렸다. 미술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돈까지 벌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내친김에 버스킹에 참여했다. 음악으로도 관광객과 소통하고 싶었다. 서 화가는 "일이 많으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인데 정말 즐거웠다. 왜 그랬는지 모를 정도였다"라며 그때를 떠 올렸다. 그러나 서 화가 역시 샵을 접어야 했다. 코로나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생계를 위해 경북지역의 모 기초단체가 주관하는 벽화사업에 참여하는 등 많은 시간을 타지에서 보내기도 했지만 김광석길을 떠날 생각이 없다.

대학가요제 입상 최재관씨
20여년 실력파 통기타 가수
김광석과도 여러차례 공연

깡통라이브 배필선 사장
방천시장 삼겹살집 문열고
장사하면서 노래하는 투잡
가게 접고 라이브카페 주인

서양화 전공 서경태 화가
캐리커처샵 차리며 입성
버스킹으로 관광객과 소통

김광석길 지키려 뭉치다
대구·전국 예술가들 30명
KS공연문화총연합회 창립
서 화가 회장 맡고 '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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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저녁 7시쯤 텅 비어있는 김광석길 야외공연장.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삼총사, 김광석길을 위한 단체를 만들다

이들 삼총사는 왜 김광석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이 길을 사랑하고 있을까. 김광석을 사랑하는 대구와 전국의 예술가들과 의기투합해 김광석길을 영원히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2018년 지역의 유명 DJ 이대희를 비롯해 30명의 아티스트가 참여한 KS공연예술총연합회(이하 연합회)를 만들고 서 화가가 회장을 맡았다. 'KS'는 광석의 이니셜이다. 서 화가는 "당시 배 사장이 김광석길에 음악, 그림, 사진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많은 만큼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어 음악을 중심으로 미술과 사진전시 등이 어울어진 공연으로 김광석길을 살릴 수 있는 기획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여러 사람들이 이에 동의해 단체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때의 배 사장 기억을 소환했다. "3년전쯤부터 반주기 틀어놓고 라이브 공연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실망하는 관광객이 많았다. 수준높은 관광객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고 김광석을 깎아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연합회를 만든 이들은 상설공연장 앞에서 매일 5명 이상의 뮤지션이 참여하는 버스킹을 했다. 지난해, 상설공연장에서 음악을 중심으로 한 공식공연을 펼쳤다.

그러나 올해 '잠시 중단'이다. 원인은 두말이 필요없다. 코로나19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활동을 재개할 계획이다. 코로나 위기에서 벗어나면 우선 버스킹 중심의 작은 음악회와 작은 미술전시회를 정기적으로 열 생각이다. 2회 공식공연부터는 당초 기획한 것과 같이 음악과 미술을 비롯해 다양한 장르가 합쳐진 공연을 선보이고 싶다. 그리고 해마다 2회 정도씩 인근의 다른 축제와 연계한 공연도 선보이고 싶다. 이밖에도 김광석길을 온전히 살려놓을 수 있다면 몸과 시간을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이들은 소망한다. 돈도 없고 그 흔한 협회 사무실조차 없지만 김광석길을 살리는데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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