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길을 지키는 사람들(1)…코로나로 텅 빈 김광석길 "그래도 이곳은 내 삶의 터전"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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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18   |  발행일 2020-09-18 제33면   |  수정 2020-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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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길을 사랑하는 삼총사(왼쪽부터 서태경·배필선·최재관씨)가 웃음을 띄며 김광석길을 걷고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지난 13일 오후 7시쯤 수성교 동쪽 끝 골목입구부터 조성된 350m 길이의 벽화길. '김광석길'이라 불리는 이곳 안으로 들어갔다. 길 양쪽으로 60여개나 되는 다양한 가게가 즐비했다. 온갖 낙서와 김광석 스토리가 입혀져 있다. 김광석을 모르는 사람도 이 벽만 정독하면 김광석이 어떤 존재인지 알도록 시시콜콜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지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270석이 마련된 야외공연장은 텅텅비었다. 관광안내소는 문이 닫혀 있었다. 14일 오전 11시쯤 이 길을 다시 찾았다. 거리 어딘가에 설치된 여러 개의 스피커에서는 김광석의 노래가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이날 역시 거리 안에서 마주친 관광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흔하게 이뤄졌던 버스킹은 없었다. 평일 낮이라는 시간적 한계가 분명히 있었지만 예전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찍 문을 연 한 커피전문점 안으로 들어갔다. 타지에서 온 관광객 3명이 앉아 있을 뿐 다른 손님은 없었다. 김광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김광석 스토리하우스도 인적이 드물었다. 김광석 거리를 벗어나 방천시장으로 갔다. 이곳 역시 휑했다. 곳곳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구 3대 전통시장이었던 방촌시장
 도심공동화 겪으며 쇠락의 길 걷다
 인디503 이창원 대표 등 30여명 나서
 벽화·미술품 설치로 '김광석길' 조성

 지난해 관광객 140만명이던 이곳에
 젠틀리피케이션에 코로나까지 강타
 김광석길을 정말 사랑하는 삼총사는
 오늘도 통기타를 메고 노래 부른다


14일 오후 7시쯤, 대구시 중구 방천시장의 깡통라이브 맥주집. 20여평 남짓한 가게 안에는 10여명의 손님들이 각종의 술을 마시고 있었고 가게 한편, 달랑 의자 하나 있는 무대에서 이 맥주집의 배필선(50)사장이 통키타로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다. 간혹 손님들의 신청곡을 들려주기도 하지만 주레퍼토리는 김광석의 희트곡들이다. 기자가 가게 안에 자리잡을 때 배 사장이 부른 노래는 김광석의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이었다. 마지막 소절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 내 곁을 떠나갔다네". 곧이어 무대에 오른 가수는 '노래하는 화가'라는 닉네임을 가진 서경태(50)화가. 가게 안에 전시된 유명인의 그림이 모두 서 화가의 작품이다. 서 화가는 외모(?)와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로 김광석의 노래를 맛깔나게 불렀다. 이날은 그나마 손님이 많은 날이다. 새벽까지 영업해도 몇 테이블 이상 손님을 받지 못할 때도 많다. 배 사장은 "아시다시피 올들어 코로나19는 김광석 길에 직격탄을 날렸다. 대구 사람들보다 외지 관광객이 김광석길 손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관광객이) 거의 끊어졌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버티려고 한다. 이곳은 내 삶의 터전이자 대구를 위해 살려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 화가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음악이 좋아 이 곳으로 왔고 미술과 음악을 병행하며 이곳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정말 버티기 힘들다. 코로나의 영향이 이처럼 클 줄은 몰랐다. 그래도 배 사장처럼 이곳에다 뼈를 묻을 생각이다. 난 이곳을 너무 사랑한다"고 말했다.

◆김광석길로 변신한 우범지대, 전국 관광명소가 되다

김광석길은 방천시장 모퉁이에 있다. 신천제방을 따라 개설된 시장이라 하여 방천시장이라 불리며 1945년 광복 후 일본·만주 등지에서 돌아온 이주민들이 호구지책으로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이 시장의 시초였다. 1960년대 방천시장은 싸전과 떡전으로 명성을 얻고 한때는 점포 수 1천개가 넘는 대구의 3대 대표 전통시장 중 하나였다.

그러나 도심공동화와 대형마트, 주변 백화점 등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2009년 접어들면서 고사하고 있던 방천시장에 반전이 일어난다. '방천시장 별의별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2011세계육상대회를 앞두고 주요 마라톤코스인 방천시장 일원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시작된 이 사업은 방천시장의 빈 상가를 지명도 있는 지역작가들에게 예술창작 공간으로 제공했다. 시장환경개선을 시도한 예술가와 상인 간 일촌 맺기, 시장나들이 마중길 만들기, 주말야시장 등 13개의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 사업은 지금의 김광석길이 태동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2011년까지 방천시장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시장상인, 예술가상인이 중심이 돼 전통시장의 새로운 형식 제시와 문화예술장터로의 변신을 꾀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이때 김광석벽화길을 중심으로 한 김광석길이 조성됐다.

다시 김광석길 조성 당시로 돌아가자. 김광석길 조성에는 문화기획사인 '인디053'의 이창원 대표, 조각가 손영복씨 등 30여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벽화 등 50여점의 공공미술 작품이 설치됐다. 골목 자체가 거대한 포토존으로 변했다. 이로 인해 시장 뒷골목이면서 우범지대이던 옹벽뒷길이 김광석길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 관광객은 급증했다. 그해 4만3천800명이던 연간 관광객이 이듬해 10배 이상 늘어난 47만7천여명으로 집계됐고 2015년에는 84만1천여명으로 또다시 급증했다. 증가세는 이후에도 가팔랐다. 2016년 100만명을 넘긴 관광객 수는 2019년 140만명을 훌쩍 넘어 버렸다.

김광석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김광석길은 근대골목투어와 김광석 음악 투어를 연계했다.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방천문화예술협동조합 등이 등장하면서 주민을 위한 사랑방이 생겼고 일자리도 창출됐다. 무엇보다 공방, 갤러리, 체험시설, 아트숍, 뮤지컬, 무용 등 문화예술 창작 공간 조성 및 버스킹 공연으로 새로운 예술거리가 조성된 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터진 대박도 김광석길 성공에 한몫했다. 방천시장에 문을 연 식당들이 관광객을 불러 모은 것이다. 대한뉴스, 대구막창, 가족 등이 주인공이다. 김광석길의 성공은 2015∼16년, 2017∼18년, 2019∼20년 한국관광 100선 선정, 2015 K-스마일부문 한국관광의별 선정, 2015년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수상 등으로도 화답했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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