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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연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
코로나19가 국내에 유입된 지 1년이 지났다. 이 바이러스의 공습으로 전 세계가 재난 수준의 고통을 겪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고리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위한 제도적 개선과 사회인식의 변화를 요청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아동 문제다. 정인이 사건을 비롯하여 힘없는 아이들이 어른들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건들이 보도되는 요즈음, 평생 아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헤아리며 글쓰기 작업을 해온 권정생 선생(이하 권정생)을 생각해본다.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 시부야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부친을 찾아 어머니도 일본으로 갔고, 권정생을 낳았다고 한다. 권정생은 청소부였던 아버지가 주워온 낡은 동화책을 읽으며 혼자 글을 깨치는 한편, 자신을 살뜰히 챙겨주는 동네사람들을 만나며 사람살이의 정을 누리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말기 공습으로 폐허가 된 도쿄에서 권정생은 가난과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었다. 그러한 고통에 가장 취약한 것이 아이들이었음을 그는 실감했고, 이것은 그의 글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유년기의 기억을 바탕으로 쓴 것이 '슬픈 나막신'이라는 장편동화다. 이 동화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일본 도쿄 혼마치의 한 골목에 거주하는 가난한 아이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중심인물인 준이는 도쿄에서 태어난 조선 이주민 2세로, 청소부 아버지가 주워온 언 고구마를 삶아 끼니를 때울 정도로 가난하다. 이 동네 아이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가난과 질병, 양부모와의 문제, 가정의 불화, 민족차별 등 각자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그 속에서도 우정을 키우며 성장한다. 이 아이들을 두고 권정생 선생은 '슬픈 나막신'이라고 부른다.
1940년대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에서 산다는 것은 민족 차별과 빈곤을 떠나 상상하기 쉽지 않다. '슬픈 나막신'은 민족차별과 반목을 일삼는 어른들을 향해 "아이들은 바르게 자라라고 가르치면서, 어른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비뚤어진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동시에 "그 어른들이 있어야만 아이들은 살아갈 수 있다"는 슬픈 현실을 환기하고 있다. 스스로 살아갈 힘이 없기에 아이들은 학대와 핍박을 당하면서도 그것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 당장 이겨낼 힘이 없는 아이들은 그저 "조용히, 그러나 가장 아프게, 쓰라리게, 기도로써 눈물겹게 싸운다". 이와 같이 전쟁과 가난 속에 방치된 아이들의 눈물겨운 분투는 권정생 동화의 주류를 이룬다.
아이들의 고통은 어른으로부터 비롯된다. 아이를 자신의 소유로 인식하거나 힘없는 존재라서 마구 대하는 데서 비극은 시작된다. 권정생은 '강아지똥'에서 작고 힘없는 어린 존재를 대하는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더럽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비난받던 개똥에게 "너도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것"이라고 축복하던 흙덩이가 바로 그런 어른이다. 길가에 내던져진 흙덩이는 죽음을 예견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자기에게 뿌리를 박고 있던 아기 고추나무가 여름 장마철에 메말라 죽게 된 사건을 두고, 흙덩이는 자기 잘못으로 생각한다. 가뭄 끝에 고추가 말라죽은 것은 흙덩이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 들어온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그것이 성장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른들이 할 일이다. 친부모, 양부모뿐 아니라 학교와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 생명의 '흙덩이'가 될 때, 더 이상 정인이 사건과 같은 기막힌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을 기대해본다.
배지연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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