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돼지고기 인문학〈상〉 토종돼지 농장 1...대한민국 0.1% 육성 '토종 흑돼지 패밀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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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2   |  발행일 2021-03-12 제33면   |  수정 2021-03-12
조선조까지만 해도 '소보다 귀한 몸'
순수혈통 찾기 나선 경산 '덕유농장'
2015년 '우리흑돈' 복원해 특허 등록
현재 국내 사육 두수의 0.1% 수준
축산과학원, 25%까지 향상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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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부터 축산업에 뛰어든 박복용 덕유농장 대표. 그는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진과 팀워크를 통해 1989년부터 거의 30년에 걸쳐 순수혈통 찾기에 나선다. 축산과학원과 협업해 축진참돈과 듀록종을 교잡해 2015년 꿈에도 그리던 '우리흑돈'을 복원하게 된다. 돈사 앞에서 어린 흑돈을 안고 있는 부부 곁에 가업을 잇는 두 아들이 우리흑돈의 활기찬 미래를 위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번 주부터 돼지고기에 얽힌 별별 인문학을 파고들어가 볼까 한다.

조선조까지만 해도 돼지는 소보다 귀한 몸이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연결해주는 '통과의례육(通過儀禮肉)'인 탓이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당시 고대국엔 말, 소, 돼지, 개, 양, 닭 등 6마리 가축의 중요성을 감안해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猪加), 구가(狗加) 등 관명으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가(加)'는 만주와 몽골계통어의 汗(칸) 또는 남방 사회의 '한(韓)·간(干)·금(今)'과 같은 말로 귀인이나 대인을 지칭한다.

돼지를 뜻하는 한자는 크게 4개가 있다. '시(豕)·돈(豚)·저(猪)·해(亥)'다. 시(豕)는 제사에 쓰이는 돼지를 지칭한다. 가(家)는 시(豕) 위에 움집이란 의미의 갓머리를 올린 건데 돼지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집(家)'이다. 돼지를 길러야 진정한 의미의 농가이며 돼지는 가족의 일원으로 집은 돼지를 기르는 곳이자 사람이 사는 곳이란 의미다.

갑자기 한국 토종돼지의 명맥을 잇고 있는 농장에 가보고 싶었다. 경북 경산시 압량면에 있는 덕유농장(053-818-1667)을 찾았다.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돈사 내부는 들여다볼 수 없었다. 대신 부부와 두 자식이 모두 '우리흑돈 패밀리 사수대'로 활동하고 있다. 돈사는 기능별로 4곳으로 분리해 놓았다. 임신 돼지가 머무는 '임신사', 새끼를 낳는 '분만사', 갓 태어나 어느 정도 몸집을 가질 때까지 머무는 '자돈사', 그리고 출하 직전까지 사육되는 '비육사'다. 어미 돼지는 한 번에 새끼 8~10마리를 낳는다. 새끼들은 25일가량 어미 젖을 빨면서 크다가 자돈사로 옮겨진다. 자돈사에서 1개월 정도 큰 흑돼지는 이어 육성실과 비육실에서 2개월씩 있으면서 다 큰 돼지가 된다. 180~190일, 대략 6개월가량 키운 돼지는 도축장으로 보내진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한국의 명맥을 잇는 토종돼지 농장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덕유농장에 들어왔을 때 여느 돈사와 달리 축사폐수가 발생하는 악취가 거의 감지되지 않았다. 여기선 돈분을 발효시켜 액비로 만드는 힐링순환시스템을 갖춰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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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시 압량면 덕유농장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 우리흑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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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복용 농장주는 1987년부터 축산인생을 걷는다. 하지만 처음부터 토종 흑돼지 복원에 관심을 둔 건 아니다. 그가 농장을 설립했을 당시만 해도 정부도 소비자도 축산인도 그냥 돼지면 됐지 한국 재래의 흑돼지를 특화시키겠다는 마인드가 존재하지 않았다. 덕유농장은 국립축산과학원 연구진과 팀워크를 통해 1989년부터 30년에 걸쳐 순수혈통 찾기에 나선다. 제각기 명명되는 흑돼지 명칭을 수집했다. 그 결과 2008년 토종 재래돼지 '축진참돈' 복원에 성공한다. 또한 2013년 제주도에선 재래돼지를 이용한 '난축맛돈'이 개발된다. 덕유농장은 축진참돈과 난축맛돈을 가교하려고 했다. 재차 축진참돈과 듀록종을 교잡해 2015년 꿈에도 그리던 '우리흑돈'을 복원하게 된다.


검은돼지라 해서 다 같은 게 아니다. 이 종은 시중에서 유통되는 일반 흑돼지와 구별된다. 일반 흑돼지는 외래종 버크셔 품종이고 매년 일정 부분의 종돈을 수입해 생산하고 있다. 우리흑돈은 축산과학원이 엄격 관리하고 개체별 코드번호, 상표권과 제조방법까지 특허등록해 놓았다. 현재 덕유농장 흑돈 사육 두수는 1천700여 마리, 전국 여타 지역에서 사육되는 재래 흑돼지까지 포함해도 국내 전체 돼지 사육 두수의 0.1%가 되지 않는다. 우리흑돈 산업은 이제 첫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박 농장주와 그의 아내 박윤옥, 두 아들(장범·성범) 모두 '흑돈맨'이다. 처음에는 도축한 고기를 위탁유통시켰는데 이젠 두 아들이 2018년 대구 북구 학정동에 차린 농업회사법인 '피밀리(피그패밀리)'를 통해 전국 판매망을 구축했다. 아쉽게도 그 고기를 사용하는 지역 돼지전문점은 아직 없다.

국립축산과학원은 국내 유통 우리한돈 비율을 25%까지 늘리는 게 목표다. 덕유농장 흑돈패밀리도 그 목표를 위해 돈고돈락(豚苦豚樂)할 작정이다. W2면에 계속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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