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돼지고기 인문학<상> 토종돼지 농장 2...국내 사육 흑돼지 87%는 수입種…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어야 '우리흑돈'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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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2   |  발행일 2021-03-12 제34면   |  수정 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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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돼지'라 해서 다 같은 게 아니다. 이 종은 시중에서 유통되는 일반 흑돼지와 구별된다. 일반 흑돼지는 외래종 버크셔 품종이고 매년 일정 부분의 종돈을 수입해 생산하고 있다. 덕유농장 우리흑돈은 국립축산과학원이 엄격관리하고 개체별 코드번호, 그리고 상표권과 제조방법까지 특허등록해 놓았다.

세계에 유통되는 돼지는 300여 종. 현재 한국에는 얼추 6종의 돼지 종자가 있다. 1903년 도입된 요크셔, 1905년 도입된 버크셔와 듀록, 1950년대 도입된 햄프셔, 62년 도입된 랜드레이스, 그리고 지리산권, 김천, 제주도 등지에서 사육되는 흑돼지다. 인정받는 국내 3대 흑돈가가 있다. 경산 '덕유농장'·경남 함양 '복있는 농원'·제주 '늘푸른 농원'이다. 덕유농장은 '피밀리', 복있는 농원은 지리산함양흑돼지의 '까매요'란 브랜드로 유통시키고 있다. 늘푸른 농원에 가면 복원돼 한정 사육되고 있는 토종흑돼지를 체험하고 농원 내에 있는 '연리지가든'에서 구워 먹을 수 있다.

덕유농장 박 대표 두 아들(장범·성범)은 가업을 이었다. 장범씨는 경북대 축산학과와 대구대 축산물처리과정을 졸업한 후 동생과 함께 유통전문회사 피그패밀리를 대구 북구 학정동에 설립해 전국을 겨냥한 전자상거래를 하고 있다.

토종돼지란?
흑색에 성장 느리고 체구 작아
일제강점기 거치며 설자리 잃어
코·발 등 '6白' 버크셔, 토종 아냐
'우리흑돈' 품종 등록 법개정 추진
경제성 낮다는 현실적 과제도

국내 3대 흑돈가
'우리흑돈 복원' 경산 덕유농장
'피밀리' 브랜드로 전국 판매망


지리산 흑돼지의 본향은 함양
복있는 농원 '토종種豚場' 지정
'까매요' 브랜드로 가공품 유통

제주 한경면의 늘푸른 농원
체험하고 구워 먹을 수 있어

제주도 돼지고기는 왜 비쌀까
86년 우도돼지 5마리로 번식
돼지열병 청정화 선언 이후
2002년부터 제주산만 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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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래흑돼지 복원에 성공한 우리흑돈계 3인방. 왼쪽부터 경산 '덕유농장' 박복용, 경남 함양 '복있는 농원' 박영식, 제주도 '늘푸른농원' 김응두 대표.

◆토종돼지 수난과 영광

1920년대 편찬된 농업기술편람에 한국재래돼지는 '모색은 흑색이며 성장이 느리고 체구가 작다. 하지만 고기 맛은 조선 사람의 입맛에 적합하다'고 기술돼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우리 토종돼지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게 된다. 1927년 조선총독부가 편찬한 '권업모범장 성적요람'에 따르면 '조선 재래돈은 성숙이 늦고 비만성이 결핍돼 경제가치 중 최열등이라 개량이 필요하다'고 지적됐다. 비만성이 우수한 수입개량종은 버크셔로 하루 체중 증가량은 850곔, 토종은 하루 체중 증가량이 500곔, 새끼도 토종은 6마리, 개량종은 10마리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을 거쳐 영국, 미국, 덴마크 등지에서 들어온 돼지를 축으로 한국형 돼지산업이 시작된다. 이로 인해 한국 토종돼지는 일제강점기 거의 사라지고 만다. 2009년 국산 돼지고기 브랜드가 탄생하게 된다. 바로 '우리돼지 한돈'이다. 이걸 선진포크, 도드람 등 3개 업체가 국내 유통을 책임진다.

우리한돈에 비교적 가까운 건 수입된 버크셔로 한국화된 것이지만 엄격하게 말하자면 '재래돼지'라고 하긴 어렵다. 우리흑돈은 몸 전체가 새까맣다. 반면 버크셔는 몸은 까맣지만 코, 발, 꼬리 등 여섯 군데가 흰색이라 버크셔를 '육백(六白)'이라 부른다.

농촌진흥청 산하 국립축산과학원 양돈과가 주도해 1988년부터 재래흑돼지 복원에 나선다. 'K-흑돼지 띄우기 프로젝트'다.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일본 가고시마 흑돈과 스페인 이베리코를 추격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2008년 재래돼지 '축진참돈' 복원에 성공한다. 2013년은 제주재래돼지 기반 '난축맛돈'을 개발하고 급기야 2015년에는 내륙재래돼지 기반 '우리흑돈'이 개발된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았다. 흑돈의 생산성이 높지 않고 상대적으로 비싼 흑돼지라서 별로 반응을 하지 않았다. 현재 제주 연리지가든 흑돈 1인분 가격은 2만원이다.

이런 와중에 급성장세를 보이는 스페인 이베리코 돼지고기를 대체할 국산 고급 돼지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국립축산과학원이 지난해 여름부터 국내 기술로 개발한 흑돼지 품종을 전국에 보급하기 시작한다. 국내에서 사육 중인 흑돼지는 2018년 기준 약 19만 마리며 대부분 수입품종에 의존하고 있다. 2018년 한국축산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흑돼지 농가의 수입품종 활용 비율은 87%에 달했다. 생산비 대비 고매출을 올리기 위해 농장주들은 우수 종돈을 찾아 3단계 3원 교잡돈까지 생산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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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축산과학원과 손을 잡고 우리흑돈에게 인식표를 심어주고 종돈 특허까지 받아낸 경산 덕유농장 입구 전경.

◆흑돈은 과연 순토종?

아직 우리 흑돈이라긴 1% 부족한 게 있다. 흑돼지 혹은 흑돈 품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흑돼지에 대한 개념 정의와 품종 얘기는 조금 복잡하다. 아직 국내 축산계는 버크셔 품종인 일반 흑돼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한때 듀록, 랜드레이스 같은 흰 돼지에 까만 점만 있어도 흑돼지로 유통될 정도였다.

축산과학원이 우리흑돈을 개발했지만 이 역시 품종등록은 아니다. 스페인산 이베리코나 일본 가고시마 흑돈 역시 일종의 '돈육 브랜드'일 뿐이지 돼지품종이 아닌 것처럼.

그간 정부 연구기관과 학계도 흑돼지에 관해 명확한 정의를 못내리고 있었다. 일본은 1990년대에 버크셔 품종을 '순수 흑돼지'로 정의했다. 지리산 흑돼지와 제주 흑돼지 등이 있지만 역시 고유 품종은 아니다. 와중에 최근 희소식이 전해졌다. 종축개량협회와 축산과학원 등이 우리흑돈의 품종 등록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고 곧 결실을 볼 것이라는 소식이었다.

국내 흑돈의 경우 제주도 흑돼지가 최강세를 보이고 그 뒤를 지리산 흑돼지가 잇는다.

전남 남원, 경남 산청이 '지리산 흑돼지'를 브랜드화해 소비유통에 앞서갔지만 정작 지리산 흑돼지의 본향은 경남 함양이다. 함양에 또 한 명의 '미스터 흑돈'이 살고 있다. '복있는 농원'을 운영하는 박영식 흑돈영농조합법인 대표다. 그는 지리산 함양 흑돼지의 명맥을 잇는다. 그는 축협에서 20여년 근무하다가 1995년부터 토종 돼지 사육에 나선다. 그의 농장은 전국에 보급하는 토종 돼지 종돈장(種豚場·씨를 받는 돼지를 기르는 곳)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고품격 흑돼지고기와 가공품 시장 확장을 위해 '까매요' 브랜드를 출시하며 유통과 직영에 뛰어들었다.

◆돼지문화의 끝판왕 제주도

1950년대까지 국내에서 원형이 유지된 가장 토종스러운 돼지는 '똥돼지'란 별칭을 가진 제주 흑돼지 정도였다. 제주 흑돼지는 '돗'이라 했는데 삼국지 위지 동이전과 이익의 성호사설에 언급돼 있을 정도로 역사적 연원이 깊다.

특히 제주도는 예부터 돌담을 두른 재래식 화장실에 돼지를 함께 기르는 '돗통'을 집집마다 뒀다. 이 돗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외래종 돼지와의 교배로 순수혈통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제주축산진흥원은 1986년 인근 우도 등에서 토종 흑돼지 5마리를 확보해 수백 마리로 개체 수를 늘렸다.

제주시 한경면에 가면 제주 토종 흑돼지를 사육하고 그걸 옆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 농원형 식당이 있다. 바로 '연리지가든'인데 주인 김응두씨는 제주돼지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다. 보통 서양 비육돈이 180일 정도의 사육 기간에 120㎏ 정도로 성장한다. 이에 반해 재래종 흑돼지는 다 자란 성돈이 고작 80㎏ 정도에 불과하다. 이나마도 300일에서 길면 400일 정도는 길러야 한다. 심지어는 성돈이 60㎏ 정도가 될까말까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제성의 논리로 본다면 경쟁력이 없다. 다행히 되살아난 제주 흑돼지는 2015년 천연기념물 550호로 지정된다. 현재 제주축산진흥원에서 한정 사육 중이다.

제주도는 참 별난 돼지고기 요리가 즐비하다. 돔베추렴(보쌈류), 돗수애(돼지순대), 돔베고기(돼지수육), 돗새끼회(암퇘지 자궁 속의 새끼돼지로 만든 회), 고사리육개장, 작빼국(돼지갈빗국) 등이다.

제주에서 돼지고기 가격이 비싼 이유가 있다. 제주지역에는 다른 지역 돼지와 돼지고기 부산물 반입이 일절금지돼 오로지 제주산 돼지고기만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1999년 12월 '돼지열병 청정화'를 선언한 이후 2002년 4월부터 반입금지 정책을 시행, 제주에서는 제주산 돼지고기와 일부 냉동 수입육만 유통된다.

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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