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정의 소소한 패션 히스토리] 레트로 속의 1950년대

  •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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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09   |  발행일 2021-04-09 제37면   |  수정 2021-04-09 10:14
잘록한 허리에 풍성한 스커트…'나풀나풀' 우아함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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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이미지의 여성 패션. 〈출처: wg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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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2000년대 들어 패션스타일에서 레트로(retro: 복고, 복고풍, 복고주의) 경향은 가장 중요한 디자인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특히 2000년대는 그 이전 시대의 패션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로 가득했던 20여 년으로, 지난 몇 년간은 과장된 큰 어깨의 재킷과 할머니집에서 봤을 법한 인테리어의 카페 등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지나간 시대적 특징이 유희적인 감성으로 해석돼 관심을 끌었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해진 남들과 다른 자기 개성표현, 다변화된 패션트렌드, 새로운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소비시장 등의 영향으로 여러 시대의 복고적 요소가 동시기에 나타나고 있다. 패션에서 복고적 요소는 20세기 중후반의 시대를 빠르게 넘나들면서 단편적인 시기가 아닌 서로 다른 시대의 패션특징이 복합적으로 어울어지고 있다.

전쟁 후 억눌렸던 욕구 터지며
우아하고 화사한 여성미 드러나
화사한 색감과 곡선의 주방가전
행복·안락한 가정 이미지 담겨
젊은세대 감성, 영화에도 표출

패션부터 생활용품·가전까지
1950년대 스타일 지금도 인기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이후의 패션은 현대 패션의 복고스타일로 여러 차례 재해석되고 재유행되었다. 20세기 패션은 약 10년을 주기로 하여 큰 특징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1990년대로 갈수록 변화되는 시기가 더욱 짧아졌다. 그것은 전쟁 이후 급속도로 변화하는 기술의 발전, 사회문화와 사회구조적 변화, 이에 따른 사람들의 사고의 변화 등이 함께 융합돼 나타나는데 필요한 시간이 점차 단축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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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 의상. <출처: Hapers Bazzar>

작년쯤부터 패션잡지나 텔레비전, 거리에서 여성의 패션을 살펴보면 성별 구분이 모호한 넓은 어깨의 재킷 스타일 사이로 허리가 조여지고 무릎 아래 길이의 풍성한 볼륨의 스커트와 화사한 꽃무늬 패션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는 전후(戰後) 1940년대 후반부터 나타나 1950년대 유행했던 여성 패션스타일에서 영감받은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시기의 여성 패션은 전쟁 중의 피폐했던 시기에 표현할 수 없었던 억눌렸던 욕구가 쏟아져 나와 몇 년 만에 찾은 행복한 가정의 모습과 화사하고 우아한 여성스러움의 표현에 중점이 맞춰졌다. 이를 충족시키는 대표적인 신호탄이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의 뉴룩(New look)으로 좁고 둥근 어깨, 잘록한 허리, 무릎 아래로 퍼지는 길이의 스커트로 설명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우리 주변에서 1950년대의 특징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단지 패션뿐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냉장고·전기주전자 등 주방가전제품에서 인기 있는 둥근 모서리, 부드러운 곡선, 그리고 빨강·하늘·연녹색 등 화사한 색감의 디자인은 1950년대 레트로 스타일이다. 1950년대는 기술의 발달로 텔레비전과 라디오 보급의 확산과 함께 당시 많은 가정이 냉장고·식기세척기·토스터기·블렌더 등 주방가전제품을 다양하게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다채롭고 화사한 색감으로 '행복한 집, 안락한 집'의 이미지를 연출하는데 효과적이었다.

1950년대 레트로 스타일이 요즘의 우리 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지만, 1950년대 남녀의 성 역할과 이상적인 모습은 지금의 것과 많이 다르다. 그것은 그 시기 영화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던 할리우드 배우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특히 1950년대는 기성세대를 주축으로 젊은 세대 문화 또한 확산되던 시기로, 그 당시의 이상적 모습이 젊은 배우들의 감성으로 영화에 반영되었다. 젊은 남성의 이미지로는 '이유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 '자이언트'에서 거친 모습을 보인 제임스 딘(James Dean)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말론 브란도 (Marlon Brando), 그리고 유명 가수였던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의 모습에서처럼 남성은 오토바이를 타면서 보다 거친 캐주얼한 스타일로 강한 자아의 모습을 나타냈다.

반면 여성의 모습에서는 배우의 이미지에 따라 다양했으나 헤어스타일에서 액세서리, 잘 차려진 패션이 전체적으로 어우르면서 그 당시 여성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스타일이 대세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의 유명한 배우로 모나코 왕비가 되었던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 '나이아가라'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등의 메릴린 먼로(Marilyn Monroe), 그리고 영화 '사브리나' '로마의 휴일' '퍼니 페이스' 등의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이미지와 패션스타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1950년대가 우아한 여성미가 넘쳐나는 패션스타일의 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프랑스 파리의 고급 맞춤(couture) 디자이너의 활약이 뒷받침되었다. 21세기 현재 패션시장을 주도하는 MZ(Millennials-Z) 세대에게 인기있는 명품브랜드들, 예를 들어 크리스찬 디올, 발렌시아가(Balenciaga), 지방시(Givenchy), 발만(Balmain) 등은 대부분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에 화려한 원단과 새로운 실루엣의 패션을 제시하면서 디자이너의 황금시기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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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레트로 스타일의 가전제품. <출처: smeg.com>

시대적인 사회문화적 흐름과 특징에 따라 패션스타일뿐만 아니라 생활용품 디자인, 이상적인 사람의 체형과 이미지도 다르게 표현되고, 그 시대를 주도하는 세대의 성향도 다르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1950년대 스타일의 빈티지·레트로 스타일을 막연히 이전과 비슷한 레트로 디자인으로만 보지 않고, 약 60년 이전의 패션과 생활에서 디자인 아이디어의 원천을 가지고 와 새롭게 재해석한 것으로 보면서 비교해본다면 조금은 새로운 각도로 디자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복에서 우아미가 대표적이었던 1950년대도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충돌의 심화, 세계 최초 달착륙을 한 우주 시대, 새로운 신기술의 발명 등으로 가득한 1960년대라는 새로운 시기를 맞으면서 저물어갔다.

코로나19라는 예상하지 못한 환경으로 비대면 기술과 온라인 시장의 급속한 확장, 그리고 블록체인, 스마트 헬스케어, 빅데이터, 자율주행로봇 등 새로운 기술들이 일상생활 속으로 확산되고 있다. 편리하지만 다소 따라가기 어려운 기술의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고전소설과 1950년대의 영화를 다시 찾아보면서 일상을 즐기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한희정 계명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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