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의 스위치] 지진 피해구제 이끌어낸 이강덕 포항시장

  • 이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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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28 07:34  |  수정 2021-08-12 15:33  |  발행일 2021-04-28 제13면
"촉발지진 결론 났는데 그 누구도 사과 안 해…檢 수사마저 지지부진"

이강덕포항시장
이강덕 포항시장은 최근 진행되는 포항지진 피해와 관련, "(지진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졌는데도) 지열발전 사업에 참여했던 사업자인 넥스지오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과 그 편에 섰던 전문가들이 사과 한마디 안 하고 있다. 검찰수사도 진척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이강덕 포항시장이 전국적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포항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1세대 1인 코로나 진단검사를 시행한 것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주목받은 것은 포항 지진의 '극복 과정'에서였다. 포항시는 지진 발생과 원인 규명, 그리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정부를 향한 투쟁과 포항지진특별법 제정 및 개정에 이르기까지 온갖 어려움을 돌파하고 드디어 지난 16일부터는 지진 피해구제 지원금을 지급할 수 있게 됐다. 강진의 악몽을 완전히 떨쳐내고 다시 도약의 길로 나서고 있는 이 시장을 19일 포항시 서울사무소에서 인터뷰 했다. 이 시장은 포항시의 청사진을 꼼꼼히 설명하면서 "다음 세대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역설했다.

人災라 들었을때 충격 커…현장 돌며 번민의 나날
정부, 지진 발생 1년4개월 지나서야 '촉발' 인정해
1가구 1인 코로나 검사로 '조용한 전파' 차단 성과
공직자, 역사적 평가 두려워하고 매사에 헌신해야


▶하마터면 자연재해로 묻힐 뻔했던 포항지진의 원인을 밝히고 피해 구제 지원금도 지급하게 되었다. 소회가 남다르겠다.

"지진 당시 진앙지 주변에서 열린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땅이 흔들려 순간 전봇대를 쳐다봤다. 넘어지겠다 싶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내가 피하는 모습을 보이면 더 큰 사고가 나겠다고 판단했다. 크게 흔들리는 게 멈추자마자 바로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그때 제일 잘한 것이 수능 시험을 연기하도록 김부겸 행안부 장관과 협의한 것이다. 처음에 자연에 의한 것인 줄 알았던 지진이 '지열발전' 때문이라는 제보를 받았을 때는 충격이 컸다. 고려대 이진한 교수와 부산대 김광희 교수가 제시한 과학적 데이터와 증거를 접하고는 확신을 가졌고, 바로 정부에 정밀조사단 구성 등을 촉구했다. 이후 시민, 사회단체, 지역 국회의원 모두가 하나 되어 포항지진특별법을 제정하였다. 함께 노력해 주신 모든 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어려운 점이 많았겠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경우 지진피해를 겪어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응급구호, 피해조사, 원인규명, 피해구제 등에 대한 구체화된 매뉴얼이 없는, 그야말로 백지상태여서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흥해 지역 주민들이 시멘트 기둥과 철골이 깨지는 듯 건물에서 쩡쩡 소리가 난다고 호소해서 대형건물 지하를 일일이 직접 조사했다. 위험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고양이처럼 무릎을 꿇고 들어갔다. 현장을 직접 돌아보니 건물이 너무 허술했다. 혹시 전도되면 어쩌나 수많은 번민의 나날을 보냈다. 선례가 없는 상황에서 피해주민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지원금 지급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그 과정에서 삭발까지 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런 사건은 당국에 의해 은폐된 사례가 많다.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데도 정부는 지진발생한 지 1년 4개월 지나서야 공식적으로 '지열발전에 의한 촉발지진'임을 인정했다. 곧이어 대국민 사과와 향후 대책이 먼저 나오는 것이 순리였지만 소송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는 것이 다였다. 그것도 장관이 아닌 차관이 나섰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일각에서는 삭발을 말렸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데 무모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의회 의장과 저는 정부에 결연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한편으로는 정부는 사과하지 않지만, 시민을 무한 보호해야 하는 시장으로서 사과의 맘을 삭발에 담고 싶었다."

▶아쉬운 점은 없나.

"지열발전 사업에 참여했던 사업자인 넥스지오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과 그 편에 섰던 전문가·과학자들이 사과 한마디 안 하고 있다.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데 검찰수사도 진척이 없다."

▶전국 처음으로 1가구 1인 코로나 검사를 한 것은 성과가 있었나.

"지난해 코로나19 발생 이후 우리 시는 전국 최초로 민관합동 방역체계를 구축하는 등 선제적 대처로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 하지만 설 명절을 앞두고 확진자 증가 추세를 보였다. 진단검사를 통해 발견되지 않았다면 '조용한 전파'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됐다. 검사를 시작한 날 갑자기 추워져서 비난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포항시민들이 정말 협조를 잘 해주셔서 확진자수를 뚝 떨어뜨릴 수 있었다."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포항시의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나.

"포항은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나노융합기술연구원과 같은 세계 최고 수준의 R&D 기관과 포스텍·한동대 등 수준 높은 교육 환경에서 배출된 우수한 인재 등 풍부한 연구개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 '첨단산업 육성의 최적지'로 평가 받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강소연구개발 특구' '차세대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자유 특구'로 선정되는 등 4차 산업혁명 선도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아울러 4세대 방사광 가속기 등 첨단과학 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바이오·헬스케어산업 생태계 구축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또한 친환경 그린에너지인 수소연료전지발전 클러스터를 조성해 핵심부품 국산화와 연료전지 부품산업 집중 육성, 전문인력 양성 등을 통해 수소산업 생태계도 적극 구축해 나가고 있다."

▶연구중심형 의대 유치는 어떻게 되고 있나.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연구 인프라와 탁월한 인적자원을 갖춘 포스텍이 의대를 유치하면, 의료격차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급성장하고 있는 바이오 신약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이 구축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바이오와 신약, ICT 기술과 접목해 선진적인 의료기술을 겸비한, 아직까지 국내에 없는 스마트 병원을 포항이 보유할 수 있게 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정부가 전향적으로 처리해주길 다시 한번 촉구한다."

▶'바다'가 또 하나의 도시경쟁력이 될 듯한데.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지난해 9월 영일만항을 모항(母港)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일본 마이즈루를 취항한 국제카페리가 관광객 유치의 중요한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완공된 국제여객부두와 함께 올해 착공 예정인 국제여객터미널이 완공되면 해양관광 활성화 및 대규모 해외 관광객 유치의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평생 공직의 한길을 걸어왔다. 이 시장의 공직관을 한마디로 말하면.

"헌신이다. 대학 다닐 때부터 배운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평가를 두려워해야 한다. 현직에 있을 때도 평가받겠지만, 진정한 평가는 자리를 물러난 뒤에 나온다. 사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나, 정말 객관적으로 헌신 했나, 미래를 예측해서 제대로 주춧돌을 놓았나 이런 것들을 평가받게 될 것이다. 공직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세상을 살 수 있도록 매사 헌신해야 한다."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나.

"고향은 경외스러운 곳이다. 포항은 (나의) 꿈이고 희망이다. 다음 세대를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고 박태준 포철 회장은 당시 우리가 어떻게 철강 산업을 하느냐고 반대가 극심했는데 나름 확신을 가지고 현실성 있는 대책을 찾아서 결국 포철을 만들었다. 그만큼 거창하지는 않더라도 포항을 위해 해야 할 일을 한, 헌신한 공직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은.

"해경청장으로 취임할 때 당시 이미 앞으로의 모든 것은 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일할 수 있도록 해준 포항시민께 너무도 감사한 마음뿐이다." 


논설위원 yrlee@yeongnam.com

◆이강덕 포항시장= △1962년 포항출생 △장기중, 대구 달성고, 경찰대(1기) 졸업, 고려대 석사·동국대 박사과정 수료, 목포대 명예박사 △경북지방경찰청 차장·경기지방경찰청장·대통령실 치안비서관·해양경찰청장 역임, 포항시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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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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