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한의 사람과 선(線)] 영남의 젖줄 낙동강, 지역민 삶·애환 휘돌아 품으며 1300리길 묵묵히 흐르다

  • 김채한 전 달성문화재단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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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1   |  발행일 2021-06-11 제38면   |  수정 2021-06-1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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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은 곧잘 '영남의 젖줄'로 불려진다. '삶의 젖줄'이라는 의미다. 영남권 전역을 휘돌아 감다 놓았다 망망히 널찍하게 흐른 뒤 을숙도에 잠시 광활하게 머물렀다 남해로 스며든다. 전망대에서 본 예천 회룡포.

영남사람이라면 '낙동강'을 알아야 한다. '낙동강'이라는 이 이름, 유장하면서도 신산스럽고 그러면서도 푸근하고 편하다.

낙동강은 곧잘 '영남의 젖줄'로 불려 진다. '삶의 젖줄'이라는 의미다. 영남권 전역을 휘돌아 감다 놓았다 하다가 망망히 널찍하게 흐른 뒤 을숙도에 잠시 광활하게 머물렀다 남해로 스며든다. 영남사람들의 숱한 정서와 애환, 근대화와 산업화의 명암까지 품으며 배달겨레의 대동맥으로 장엄하게 흘렀다. 오늘의 스마트폰 문화도 과연 낙동강이 저 멀리 비켜 흘렀다면 가능했을까. 이런 우문에 제대로 답할 이가 누가 있으랴. '깃발'의 시인 청마 유치환의 시 '겨레의 어머니여, 낙동강이여!' 앞부분을 읽어보자. '태백산 두메에 낙화한 진달래 꽃잎이/ 흘러흘러 삼랑(三浪)의 여울목을 떠 내릴 적은/ 기름진 옛 가락(伽洛) 백 리 벌에/ 노고지리 노래도 저물은 때이라네// 나일이여, 유프라테스여, 갠지스여, 황하여/ 그리고 너 동방의 조그만 어머니 강, 낙동이여/ 천지 개안(開眼)의 아득한 날부터/ 하늘과 땅을 갈라 흘러 멎음 없는 너희는/ 진실로 거룩한 예지의 젖줄!(하략)'

압록강·두만강 이어 세번째 긴 강
중·러 국경 제외 한반도 최장 길이
태백 '너덜샘' '황지' 발원지 시비

도도히 굽이쳐 흐르는 강물 장관
안동 600년 풍산 류씨 하회 마을
예천 내성천 회룡포 빼어난 곡선
달성 도동서원 앞 아름다운 풍경
정취 취하면 신선이 된듯한 기운
철새 도래지 적시고 남해와 한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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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 앞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황지연못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황지연못. 태백시는 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고서에서 태백시 중심가에 있는 연못인 황지를 발원지로 기록하고 있기에 아예 못을 박아버렸다.

이 시는 63줄의 장시다. 유장한 낙동강을 그대로 들여놓은 시다. 청마는 당당하게 낙동강을 유프라테스강 등 세계 4대 문명발상지와 비견했다. 울컥 울분 같은 응어리를 풀어 줬던 나훈아의 노래 '테스형'에 앞서 청마도 아무런 연관도 없으련만 유프라테스의 '테스강'에다 낙동강을 오버랩시켰다. 듣는 우리는 그저 감개가 무량하고 솔깃해진다. 청마는 죽순 동인으로 활약하는 등 대구와도 무척 인연이 깊다. 1963년에는 대구의 출판사인 '평화사'에서 산문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를 펴냈다. 대구 백초원이라는 작업공간에서 머릿글을 쓴다고 책에 적고 있다.

세상의 어느 강인들 고독하지 않으리. 외롭고 외롭지만 강물은 쉼 없이 흐른다. 공자도 강변에서 이런 탄식을 했었다. 가는 자도 이와 같을까? 밤낮으로 흘러 쉬는 일이 없구나(逝者如斯夫 不舍晝夜).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강물의 흐름을 보고 인간의 무상한 삶과 존재를 알아챈 공자는 마치 아득한 훗날에나 언급될 미래의 속도나 트렌드에 대해 말하듯 이런 기록을 남겼으니 분명 선각자다.

20세기를 목전에 두고 미국의 우울한 엘리트 시인 에드워드 알링턴 로빈슨도 '나는 바다보다 강을 더 좋아한다. 우리는 양 기슭을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강이 바다보다 엄청난 이익이 있음을 로빈슨은 발견한 것이다. 늘 한 쪽 기슭뿐인 바다에 비해 양쪽 기슭을 지닌 강. 한 마리 토끼가 아닌 두 마리 토끼 같은 강. 20세기를 코앞에 두고 로빈슨은 '리처드 코리'를 발표한다. 욕망을 자살로 맺으면서도 사뭇 고요한 여름 저녁 양 쪽 기슭을 지닌 강 같은 내면의 목소리를 느끼게끔 한다. '리처드 코리'는 사이먼과 가펑클이 노래로 불러 지구촌 젊은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반전· 인권운동가로 유명한 세계적인 가수 존 바에즈. 올해 여든이다. 그의 '솔밭 사이로 강물은 흐르고'도 실은 매우 뜨거운 노래다. 우리에게도 있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낙동강 그리고 510㎞

다시 낙동강을 들여다 본다. 길이 510㎞가 대체적인 정설이다. 한반도에서 낙동강은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어 세 번째 긴 강이다. 그런데 압록강과 두만강은 일부 구간이 중국과 러시아 국경과 겹친다. 그러니 한반도 내의 강들로 길이를 겨눠보면 낙동강이 가장 길다. 억지가 아니고 현실이다. 그만큼 중요한 강이라는 의미다. 낙동강이 가장 길다 해서 한반도의 길이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지금껏 이런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다. 700리, 1300리, 1700리…, 길이도 측정하는 방식에 따라 들쭉날쭉했다.

발원지도 그렇다. 학계의 학술적 탐사로는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천의봉의 너덜샘이다. 그러나 태백시는 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고서에서 태백시 중심가에 있는 연못인 황지를 발원지로 기록하고 있기에 아예 못을 박아버렸다. '낙동강 1300리 발원지'라고 쓴 큼직한 입석도 세웠다. 재론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낙동강은 유용한 물길 대부분이 영남권을 훑고 흐른다. 발원지 시비에 대해 경상도가 뭐라 하기는 좀 그렇다. 솔직히 강 하구로부터 물줄기의 중심을 따라 올라가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발원지를 찾아 발원지로 삼으면 된다. 학술적 용어로는 이를 '최장발원지'라고 한다. 이런 잣대를 적용한 낙동강 탐사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너덜샘을 발원지로 치지만 행정은 여전히 뒷짐이다.

◆예천 삼강주막 주모

강이나 땅이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곡선이다. 특히 '곡강(曲江)'은 자연의 묘리를 감추고 있다. 자연이 하자는 그대로 곡선으로 물길이 생긴다. 물길 따라 흐르다 보면 산도 만나고 들과 언덕, 숲, 절벽도, 바위도 만난다. 그러니 굽이진다. 그래서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라고 했다. 황하도 그렇고 아마존이나 나일강도 그렇다. 낙동강이 그렇듯 세계 유수의 강들 모두 하늘에서 보면 구불구불 굽이치는 모양이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낙동강의 곡선은 빼어나다. '물돌이동'이 대표적이다. 풍산류씨 후손들이 600년 이상 대를 이어 오는 동성촌락 전통 명문마을 하회(河回). 낙동강이 온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하회탈춤, 선유불꽃놀이, 별신굿탈놀이 등 굵직하면서도 자상한 선의 굴곡들이 잘 드러나는 민속놀이가 눈길을 잡는다.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과 하회탈 등이 국보다.

예천 회룡포.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고 있는 이곳의 곡선도 빼어나다. 전망대 정자에서 바라본 건너편은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 대은리 마을이다. 멀리서 보면 나른하고 졸음을 몰고 오는 풍광이지만 그 정취에 취하다 보면 신선이 된 듯 청량한 기운이 감돈다. 낙동강에 보부상들과 소금배가 엄청나게 들락거리던 시절이 있었다. 삼강주막은 한양으로 연결되는 물류의 거점이었다. 세월이 변해 나룻배 대신 다리가 생기고 대형할인매장 때문에 주막도 무용지물, 그 시절 흥청거리던 꾼들의 모습은 간데없고 주막을 휘감는 세 물줄기(三江·낙동강·내성천·금천의 물길) 강물에 드리운 낙동강의 노을만이 옛 정취를 엿보게 해준다. 2005년 마지막 주모 유옥연 여사는 타계하고 대신 그 공간은 경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다. 막걸리 축제와 주모 선발대회를 열어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지만 뭔가 1% 부족한 풍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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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풍천면 부용대에서 본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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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명호면 범바위전망대에서 본 낙동강.

◆도동서원 앞 낙동강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 앞 물돌이도 꽤 유명하다. '소학동자'로 불리던 명유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하는 도동서원은 굽은 물살과 함께 도학과 덕행을 숭상하고 있다. 특히 도동서원의 전체적인 건축 구성과 배치형식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 중 가장 규범적이고 전형적이며 완성도와 공간구성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낙동강은 도동서원까지 오면서 곳곳에 아름다운 강의 곡선미를 선사한다. 그러나 강물은 도동서원에 도착하기 전 가실성당(경북 칠곡군 왜관읍 가실 1길 1번지) 인근에서 강폭은 아주 도도한 흐름과 함께 넓고 깊어진다. 가실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고색창연하고 아담한 성당으로 프랑스 신부가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지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천주교가 박해받던 초기 시절 한적한 곳이라 길이 좋을 리 없었다. 한동안 멀리서 오는 신자들은 육로 대신 낙동강 배편을 이용했다.

고속버스를 타고 오듯 배를 몰아 이곳으로 왔다. 지금도 신자들 사이에서는 낙동강 물길을 고속도로라고 부른다.

가실성당에서 조금 아래쪽에 화원 사문진 나루가 있다. 낙동강 뱃길의 최대 수상 물류 기착지다. 194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국으로 물자를 유통 시켰으며 특히 1900년쯤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문물의 상징인 피아노가 유입된 곳이다. 이를 기념해 해마다 10월 첫째 주 '100대 피아노 콘서트'가 열린다. 지난해부터는 아쉽게도 코로나로 인해 열리지 못하고 있다. 100대 피아노가 연출하는 고혹한 선율은 넘실거리는 율동을 가진 낙동강의 흐름과 너무나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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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한(전 달성문화재단대표이사)

다시 낙동강은 삼량진을 도도하게 지나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 을숙도를 푹 적시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남해와 한 몸이 된다. 그 물길의 속내는 지금까지 1300리를 흘러오면서 온갖 상념들을 곳곳에 실어 날랐을 것이다.

'간위적막(艱危寂寞)'. 젊어서부터 시로 이름난 청나라 신함광이 한 말이다. 인간에게 하는 말이겠지만 '시련과 적막의 시간이 필요 하다'는 뜻이다. 앞만 보고 흘러온 낙동강이 바다로 가서 다시 낙동강이 되기 위해서는 구만리 장천의 시간을 인고해야 될 것이다. 구름과 비가 되고 알맞은 바람의 등에 올라가 저 태백의 너덜샘에 다시 떨어지기를 기원하는 말이기도 하다.

<전 달성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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