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새로운 30대 정치세력의 비전 수립 문제

  •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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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16   |  발행일 2021-06-16 제26면   |  수정 2021-06-16 07:19
정치 전면 등장한 80년대생
정치 주역으로 정착하려면
코로나19 이후 역사적 조건
적극 활용한 정치적 비전을
국민 앞에 제시할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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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원내 102석을 가진 제1야당의 당수로 원외의 30대 청년이 등장한 것은 생각할수록 의미 깊은 일이다. 어떻게 해서든 정권을 되찾고야 말겠다는 보수 야권의 열망이 전략적 지지로 나타났다는 분석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이 현상을 어떻게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치에서 30대 정치세력이 등장했던 것은 크게 두 차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육사 8기를 필두로 30대 청년 장교들이 대거 등장했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2002년 대통령 선거와 2004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80년대의 대학 운동권 세력, 소위 386세력이 대거 등장했던 일이다. 이 두 30대 정치세력은 등장 이후 적어도 20년 이상 한국 정치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각기 전자는 산업화, 후자는 민주화로 지칭되는 나름의 역사적 소명을 수행했다. 87년 이후 한국 정치를 저변에서 규정해 온 구도는 기실 약 40년을 사이에 두고 등장했던 이 두 30대 정치세력의 적대적 공존을 제도화한 것이나 다름없다.

도하 언론은 1980년 중반에 태어나 2000년 중반에 대학을 다닌 새로운 30대 정치세력의 등장을 앞의 두 30대 정치세력이 유지해 온 적대적 공존 구도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에 동의하거나 반대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지금 등장한 이 세 번째 30대 정치세력이 앞의 선배들처럼 과연 한국 정치를 규정하는 주역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객관적인 조건으로 보자면, 5·16의 청년 장교들이나 386세력은 앞선 세대의 역사적 잘못을 비판하면서도 스스로는 무고함을 주장하고, 나아가 그 역사적 성과를 고스란히 누렸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피식민과 분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전자는 앞선 세대의 무능과 부패를 비판하면서도 냉전체제가 고착된 이후의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편승할 수 있었다. 또 군사정권의 강압 통치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과거가 없었던 후자 역시 앞선 세대의 비겁과 위선을 비판하면서도 88올림픽의 성공 이후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흐름에 뛰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두 30대 정치세력을 한국 정치의 주역으로 만든 핵심 요인은 오히려 주관적인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이들은 모두 서로 다른 시대적 환경 속에서 각각의 역사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정치적 비전을 수립하여 국민 앞에 제시했기 때문이다. 5·16의 청년 장교들은 동아시아의 냉전체제를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수출주도형 산업화의 비전을 내세웠고, 386세력은 자본의 금융화와 대중적 소비 욕망의 분출을 두려워하지 않는 포스트 모던 자본주의의 대세에 맞추어 적극적인 세계화와 정보혁명의 비전을 내세웠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 정치의 전면에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30대 정치세력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객관적인 조건은 상당히 유사한 측면이 있다. 경제성장의 둔화, 사회적 양극화, 고령화와 저출산, 사회문화적 갈등 증폭 등 신자유주의적 포스트 모던 자본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면서도 이를 초래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동시에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의 우위를 한껏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당연히 주관적인 측면, 즉 과연 이들이 신자유주의가 한풀 꺾인 코로나19 이후의 역사적 조건 속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정치적 비전을 수립하여 국민 앞에 제시할 수 있느냐에 모인다. 개인적으로는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를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인물놀음보다는 이 새로운 정치적 비전에 대한 평가를 중심으로 치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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