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읽는 고전명작] 대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총·칼 무기삼아 원주민 착취, 자신만의 왕국 지배욕망 드러내

  • 허정애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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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6   |  발행일 2021-08-06 제21면   |  수정 2022-02-22 08:15
영남일보는 경북대 인문학술원 HK+사업단과 공동기획으로 이번주부터 '다시 읽는 고전 명작'을 연재한다. '다시 읽는 고전 명작'은 동서양의 고전을 인류 보편적 관점에서 재조명해 독자들에게 '명작'을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자 한다. 필진으로 경북대 허정애 영어영문학과 교수, 김규종 노어노문학과 교수, 김성택 불어불문학과 교수, 이재현 철학과 교수, 윤재석·이영호 사학과 교수, 조헌구 일어일문학과 교수 등이 참여한다.
<이 강의 시리즈는 경북대 인문학술원 '경BOOK톡' 유튜브강좌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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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구권, 원주민과 식인종 동일시
무인도 표류중인 크루소 불안에 떨며
매일 밤 그들을 죽이는 꿈 꾸며 번민

처음 마주친 원주민 강제로 노예삼고
보상없이 통역·농사 등 시키며 지배
문명인과 야만인 이분법적 잣대 눈길
모험·용기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을까


1719년 '로빈슨 크루소'가 '요크 출신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삶과 이상하고 놀라운 모험'이라는 부제로 영국에서 출판되었을 때 수 많은 영국인이 열광했고, 이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작품은 그 당시 실제 난파 사건을 소재로 한 사실주의 소설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작가의 상상에 의한 픽션, 즉 허구인데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크루소의 모험을 마치 실제로 일어난 사건으로 믿었고, 주인공 크루소처럼 무인도로 가겠다고 가출을 하기까지 하는 소년들도 나타났다. 왜 그랬을까?  

 

크루소는 18세 되던 1651년, 편안한 중산층으로 살아가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듣지 않고 집을 떠난다. 그는 배를 타고, 폭풍을 만나고, 해적선에 잡히는 등 천신만고 끝에 브라질에 정착하여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농장주가 된다. 그런데도 17세기 중반 당시에는 불법인 노예 밀무역을 하기 위해 또 아프리카로 항해를 떠나고, 도중에 폭풍으로 배가 난파되어 카리브해의 한 섬에 표류하게 된다. 그때가 26세 무렵인 1659년이다.

그 후 크루소는 그 섬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고 염소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우산을 쓰고, 돌아다닐 때는 늘 소총 1개와 권총 2개, 그리고 칼을 차고, 조끼 주머니에는 화약과 탄환을 넣고, 바구니를 메고 다닌다. 몇 가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농사를 짓고, 염소 등 가축을 키운다. 이렇게 25년을 고립된 삶을 살던 크루소는 섬에서 처음 만난 아메리카 원주민을 프라이데이라고 부르며 노예로 삼고 3년간 함께 생활한다. 그 후 영국 배에 의해 표류한 지 28년 만인 약 54세의 나이인 1686년에 마침내 영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영국은 1640년대부터 해외 식민지 확장이 본격화되었는데 이러한 시기에 영국인들은 크루소의 이야기에서 식민지 정복의 구체적인 매뉴얼을 발견하고 흥분했던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흔히 영국 근대소설이며 모험소설의 효시로 평가된다. 이러한 모험소설의 주인공인 크루소는 지금까지 근면, 도전, 모험, 용기, 신앙, 합리성, 창의성, 인내심을 대표하는 근대 자본주의 인간의 원형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런데 그는 정말 도전과 용기와 모험의 아이콘일까?

소설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는 사실 식인종이라고 세뇌받은 야만인인 원주민에 의해 잡아 먹힐까 봐, 또 섬의 소유권을 빼앗길까 봐, 가축이나 곡식 등 자신의 사유재산을 빼앗길까 봐 오히려 늘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다. 섬에 표류한 지 만 15년째 되는 날, 해변의 모래사장에 찍힌 사람의 발자국은 그를 극도의 공포와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서구의 상상 속에서 아메리카의 원주민은 곧 식인종이기 때문이다. 크루소는 식인 행위를 직접 목격하지 않았으면서도 뼈나 핏자국, 살점 등의 흔적을 서술하고 원주민의 식인 축제를 상상한다. 그는 "늘 무시무시한 악몽을 꾸고, 한밤중에 자주 깜짝 놀라 깨기도 하고, 낮에는 엄청난 번민에 마음이 짓눌리다가 밤에는 야만인들을 죽이는 꿈을 꾼다"고 고백하는데. 이러한 서술은 도전과 용기의 아이콘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광기와 불안에 사로잡힌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로빈슨 크루소'보다 약 50년 뒤인 1762년에 출판된 루소의 '에밀'에서는 청소년기에 처음 읽어야 할 책으로서 '로빈슨 크루소'를 권장한다. 자연 상태에서 탐욕 없이 자급자족 경제를 실천하고, 동료 인간을 착취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크루소는 정말 탐욕이 없을까? 동료 인간을 착취하지 않을까?

크루소는 자신이 표류한 섬이 카리브해 원주민들이 늘 방문하는 익숙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로 간주하고 자신의 소유권을 행사한다. 그는 당시 영국인들이 어디를 가든 작은 영국을 만들듯이 여기에 자신만의 소우주인 작은 영국을 만든다. 자신이 거처하는 동굴을 누구도 침입할 수 없는 튼튼한 요새로 만든 후 그것을 성이라고 부르며, 자신은 그 성의 군주 혹은 영주로 자처한다. 귀족처럼 바닷가 옆에 시골 별장을 만들고, 염소를 기르기 위해 영국에서처럼 인클로저를 만들고, 영국식 푸른 전원과 유사한 푸른 녹지를 발견하고 기뻐한다.

그는 자신의 섬에 사는 프라이데이, 개, 고양이, 앵무새, 그리고 후반부에는 섬에 들어온 스페인인, 프라이데이의 아버지 등을 자신의 백성이라 칭하고 전제군주와 같은 지배권으로 이 백성들의 "교수형, 사면, 구속"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흡족해한다. 상인인 그는 이처럼 계급 상승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낸다. 과연 이러한 크루소를 탐욕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또 원주민을 당연히 노예로 생각하는 크루소는 섬에서 처음 마주친 원주민인 프라이데이를 총과 칼을 무기로 노예로 삼아 복종을 하게 하고,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농사짓기, 통역사, 호위병, 길 안내 등 노동을 착취한다. 뿐만 아니라 야만인을 문명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소위 문명인인 영국의 언어, 종교, 문화를 강제로 프라이데이에게 주입시킨다. 원주민의 고유한 이름은 무시되고, 금요일에 만났다고 하여 영어로 프라이데이라고 이름을 부여한다. 이것은 백인 노예주들이 흑인 노예들에게 부르기 쉬운 이름을 부여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름 외에 그가 가르치는 낱말은 정복과 지배의 관계를 가르치는 "주인님" 혹은 "예" "아니요" 정도로 노예의 노동에 필수적인 언어뿐이다. 그는 또한 프라이데이가 '베나무키'라는 고유한 신을 믿는데도, 그 신을 악마로 규정하고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시킨다. 크루소는 프라이데이의 식인 습관을 제거한답시고 염소젖과 빵 먹는 법 등을 교육시킴으로써 영국 음식 문화를 주입시키고, 옷을 입지 않는 문화를 가진 프라이데이가 불편해하는데도 자신을 기준으로 옷을 만들어 입힌다. 과연 크루소는 프라이데이를 착취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크루소와 프라이데이의 만남은 서구의 문명인·야만인이라는 이분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누가 더 야만인일까? 프라이데이에 의하면 원주민은 평소 식인 행위를 하지 않고, 전쟁 후 항복하지 않는 포로들에게만 식인 의식을 행한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크루소는 동물이든 인간이든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존재는 가차 없이 총살한다. 한 예로 그는 자신이 힘들여 농사지은 곡식을 먹는 새들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세 마리를 총으로 쏜 후 "영국에서 흉악한 도둑들을 처리하듯 다른 새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죽은 새들을 사슬에 매달아 놓는다. 그는 식인 행위를 하는 원주민들에 대한 분노로 살인과 파괴의 충동에 휩싸이다가 실제로 그들을 학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수백만 명의 원주민을 죽이면서 식민주의의 길을 앞서간 스페인인들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비판한다. 크루소는 연민과 자비를 베푸는 기독교 국가인 영국은 스페인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과연 영국인 크루소는 다른가?


허정애 교수 <경북대 영어영문학과>

공동기획 KNU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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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애 경북대 영어영문학 교수

■ 허정애 교수는

 

경북대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에서 '19세기 영국소설' '미국문학개관' 및 대학원 인문카운슬링학과에서 '소통과 공감의 문학연구' '문학과 치유 세미나'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영미소설에 나타난 젠더와 인종 문제를 주로 연구의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대중인문학의 확산을 통한 지역 사회와의 소통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경북대 인문대학장, 인문학술원장을 역임하면서 교육부가 주최하는 인문도시사업(2014~2017년)의 연구책임자로서 '기억과 재생의 인문도시, 대구'를 주제로 시민인문학, 청소년인문학, 교도소인문학을 시작하였고, 현재 경북대 인문학술원에서 개설한 유튜브 강좌 '경BOOK톡'에 '영미소설, 인종으로 읽다'라는 시리즈로 지역민들과 만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20세기 미국소설의 이해I'(공저)가 있으며, 2022년 2월에 경북대 인문대학의 인문교양총서 시리즈로 '영국소설, 인종으로 읽다'를 출간 예정이며, 주요 논문으로는 '제인 오스틴, 노예제, 계급, 인종' '에밀리 브론테의 성취와 한계: 인종적 시각에서 다시 읽는 워더링 하이츠' '마크 트웨인과 젠더'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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