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인문학술원과 함께하는 [다시 읽는 고전 명작]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묵직한 질문

  • 김성택 교수 경북대 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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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6   |  발행일 2021-11-26 제21면   |  수정 2021-11-26 07:23
19세기 프랑스 배경 다양한 계층의 인물 등장
기득권층서 망명까지 겪었던 작가의 삶과 연관
소설 속 자유·평등에 대한 정의도 다르지만
물질적·정신적 평등의 완성이란 이상 제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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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택 교수 (경북대 불어불문학과)

프랑스 문학과 상상력에 관심을 두고 전공을 선택해 빅토르 위고의 시와 르네 샤르의 시를 연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경북대 불어불문학과에서 프랑스 시, 비평, 상상력과 관련된 강의를 주로 맡고 있으며, 교양과목으로는 '신화와 상상력'을 가르치고 있다.

초현실주의의 세례를 받은 르네 샤르와 폴 엘뤼아르에 관한 초기 논문이 있고, 공동연구에도 관심을 갖고 '타자의 눈에 비친 한국'이란 주제로 프랑스 문헌 속에서 한국과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하였다. 또한 프랑스와 러시아의 문화 비교를 위한 '문화 토포스'에 관한 공동연구의 책임자가 되기도 했다. 이런 공동연구의 결과로 몇 권의 책과 논문들이 생산되었고, 그 후 폴 발레리나 스테판 말라르메와 같은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에 관한 최근 논문도 있다.

학내에서는 인문과학연구소장, 인문학술원장, 인문대학장,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장, 학외에서는 한국프랑스학회장의 임무를 맡았다. 인문학 확산을 위해 외부 강연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공부하고 생각했던 것을 시민과 현장에서 공유하고자 했고, 이를 통해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과 같은 여러 문학작품들이 여전히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들을 제공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인문학술원의 유튜브 강좌 '경BOOK톡'에 '레미제라블' 강의 시리즈가 있다.

고전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은 세월이 지나도 쉼 없이 독자에게 문제를 던진다. 고전은 지금도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도 그렇다. 글의 형식이 좀 오래되었거나 분량이 많아서 지금의 독자들이 직접 읽기가 힘들다 해도 이 작품의 내용은 대부분 안다. '레미제라블'이 빵 하나를 훔쳐 그 때문에 오랜 수형생활을 한 불행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은 다 안다. 주인공 이름이 장 발장이라는 것도 안다. 오래 전부터 짧게 각색한 작품으로 읽거나 만화로 보거나 감독의 시각으로 재해석한 영화로 관람했거나 가슴을 울리는 노래로 엮인 뮤지컬로 즐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레미제라블'을 감상하고 생각하며 감동을 받아왔다.

'좁은 문'으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앙드레 지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가 누구냐?"라는 질문에 "아쉽지만 빅토르 위고라고 해야겠군요"라고 답했다. 흔히 프랑스의 소설은 세련된 문체로 작중인물의 심리상태를 완곡하게 묘사하는 것에 정통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빅토르 위고의 작품들은 웅변적인 글쓰기와 거침없는 상상력을 구사한다. 앙드레 지드는 프랑스 소설의 섬세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빅토르 위고에게 약간의 아쉬움이 남은 것 같지만, 일반 독자들에게는 글의 내용에 있어서나 글의 형식에 있어서나 '낮은 곳에 임하는' 빅토르 위고의 글쓰기가 훨씬 마음에 다가왔던 모양이다. 특히 '레미제라블'의 저자로서 그는 "이 지상에 무지와 가난이 있는 한 이 책이 유용할 것"이라고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이 문학작품이 고전으로 여전히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프랑스의 19세기는 가장 변화무쌍하고 또 그만큼 도전적이었던 세기였다. 이런 시대를 관통하며 역사의 파고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았던 빅토르 위고는 당연하게도 똑 바르게 그어진 선이 아니라 변곡점을 지닌 생애를 보냈다. 시인, 희곡작가, 소설가이자 상·하원의원이기도 했던 그는 영광의 순간도 누렸지만 망명을 해야만 했던 좌절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정치적으로는 왕당파에서 진보적 공화주의자로 노선을 변경하였고, 문학적으로는 낭만주의 작가에서 사회의 낮은 곳을 바라보는 휴머니즘 작가로 변모하였다.

점차 개인의 구원에 대한 관심에서 사회의 구원에 대한 관심으로 시야를 넓혀간 작가가 되었다. 1845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했던 '레미제라블'은 1851년부터 무려 20년간 이어진 망명시기 동안에 완성시킬 수 있었는데, 15년 이상의 제작기간은 이 작품이 수많은 경험과 사유, 그리고 적지 않은 자료의 용광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작가가 알게 된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선량한 신부에 관한 소문만이 아니라 도시 노동자들의 삶에 관한 보고서까지 소설의 구체적인 재료가 되었고, 작가 자신이 직접 겪었던 7월 혁명과 2월 혁명, 그 사이에 있었던 무수히 많은 바리케이드 항쟁들은 소설의 골격을 이루었다. 그리고 "때때로 하층 사회의 위대함을 지켜보지 않은 사상가는 없다"는 작가의 생각은 소설 전체에 생명을 주는 혈관이 되었다.

'레미제라블'의 대단원을 이루는 바리케이드 항쟁은 1832년 6월5일에 시작하여 단 하루 만에 끝났다. 비록 당대에는 작은 사건에 불과하지만, 1830년 7월 혁명 이후에 루이 필립의 입헌군주정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시민들이 그 당시 야당 지도자인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계기로 모여 민주공화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항거이며, 이후 2월 혁명까지 무수한 시민들의 저항을 촉발시켰던 사건 중 하나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은 소설가의 상상력이 개입되기가 용이하기도 했기에 이 사건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들의 입을 빌려서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을 다시 조명하고자 한 것이다.

시위대를 주도한 'ABC의 벗들'이란 비밀결사조직은 그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정치사회운동조직의 하나로 등장하며, 그 지도자인 앙졸라는 자유와 평등이란 프랑스대혁명의 원칙을 다시 살리려는 당대의 젊은 사상가들을 대변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그가 역설한 자유와 평등에 대한 원론적 정의는 귀에 남는다. 자유가 "나에 대한 나의 주권"이라면, 공동의 권리를 형성하기 위해 각각의 주권이 약간씩 양보될 경우에 "개인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그 양보의 동일성"을 평등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그래서 요즘처럼 공정사회가 중요한 화두가 된 시대에 '레미제라블'은 더욱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레미제라블'은 미리엘 신부가 주장하는 평등,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평등, 장 발장이 실천하는 평등을 다 생각해볼 수 있는 평등에 관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동등한 기회의 권리, 동등한 정치행위의 권리, 동등한 양심의 권리, 동등한 인격의 권리 등은 평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이상임을 알려주는 세부항목인 것이다.

민주주의는 '데모스'의 해방을 실천하는 평등의 과정이라고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정의하고 있다. '데모스'란 민중 혹은 '제 몫을 가지지 못한 민중'을 의미하며, 이들이 자신의 몫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데모스의 정치'다. 바리케이드 항쟁도 이러한 정치의 하나지만 장 발장의 운명도 '데모스의 정치'가 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소설의 구성이 빅토르 위고의 진보적 휴머니즘을 반영하고 있기에 더욱 더 그러하다. "출발점은 물질이고 도착점은 영혼이다." 소설 속의 이 말은 "출발점은 물질적 불평등이고 도착점은 정신적 평등이다"로 다시 읽을 수도 있다.

'레미제라블'에서 장 발장과 자베르의 대립은 쫓고 쫓기는 필름 누아르 식의 긴장을 독자에게 주는 소설적 구도이기도 하지만, 장 발장이 '데모스'의 전형적 인물로 읽힐 수 있게 하는 결정적 요소이다. 사회를 유기체로 보는 계급사회인 '아르케'는 정치가 아니라 치안을 공고하게 한다. 시민항쟁이나 범죄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질병이므로 철저하게 감시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자베르 형사를 가장 잘 요약하는 것이 바로 '감시와 경계'라고 작중화자가 말했을 때 우리는 작가의 혜안에 감탄한다. 혹은 자크 랑시에르도 역시 '레미제라블'의 열렬한 독자이므로 이 말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삼았을지 모른다. 한번 흙수저면 영원히 흙수저야 하는 사회체계를 철저하게 수호했던 자베르 형사는 한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범죄자이기는커녕 성인에 가까웠던 장 발장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의 세계가 붕괴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 자체가 이미 자베르 형사에겐 몰락이자 죽음이다.

정치와 치안의 대립처럼 '레미제라블'은 오늘날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민주사회가 공론의 장으로 올려야 할 주제들을 여전히 독자들에게 던져줄 것이다.

김성택 교수 (경북대 불어불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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